미국과 중국은 탈동조화 중인가
미국과 중국 간 계속되는 입장차를 고려해 볼 때, 양측 관계의 향배는 어떻게 될까요?
*탈동조화(Decoupling, 디커플링)란 세계적인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로, 한 나라 경제가 특정국가나 세계 전체의 경제 흐름과는 달리 독자적인 경제흐름을 보이는 현상을 뜻한다. 반대로 한 나라 또는 일정 국가의 경제가 다른 국가나 보편적인 세계경제 흐름의 영향을 받는 것은 커플링(동조화 · coupling)라 한다.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습니다. 바로 급성장 중인 중국 영화 산업인데요. 할리우드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가 갑자기 촬영 중단되거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시나리오가 갑자기 불발되는 것이죠. 중국인 영화 제작자들도 관련 영화 작업을 잇따라 접고 할리우드 배우들을 하차에 나섰습니다. 미국 내 중국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고예산 영화 <Over the Sea I Come To You>는 베이징에서 제작 발표회를 가졌음에도 돌연 촬영이 취소됐습니다. 다른 영화들도 상영이 무한 연기되거나 당초 캐스팅된 미국 배우들이 러시아 및 독일 배우들 대체되는 등 몸살을 겪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1950년대 한국전쟁에서 미군과의 전투를 다룬 영화들이 재조명 받는 기현상도 벌어졌습니다. 영화계뿐만이 아닙니다. 이른바 ‘뉴 노멀(new normal)’의 영향을 체감하고 있는 업종 및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G2 경제가 분단의 길을 향해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탈동조화(Decoupling, 디커플링)’라는 것이죠. 마찰 원인 중국과 미국, 이 G2 국가는 40년 넘게 경제적으로 교류를 지속해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에 대해 환율 조작, 강제 기술 이전, 해킹, 지재권 침해, 다양한 비즈니스 이슈에서 상호주의 부재, 중국 내 미국 기업에 대한 시장 접근성 제한, 기술 백도어 및 자국 국영 혹은 공영기업에 대한 불공정한 특혜를 문제삼고 나섰죠. 이러한 이슈들 가운데 대다수는 수년 간 존재하던 것이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미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대중국 강경노선”의 일환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많은 국가들은 세계 양대 경제국가 사이에서 노선을 결정해야 하는 불편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현재 상당한 격차를 두고 중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이며, 미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 역시 중국입니다. 독립 연구 기관인 로디엄 그룹(Rhodium Group)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대중국 투자 규모는 1990년부터 2017년까지 2,500억 달러 이상이며, 같은 기간 중국 기업의 대미 투자액은 약 1,400억 달러입니다. 수많은 중국 기업들이 뉴욕 증시에 상장되어 있으며, 코카콜라, 맥도날드 및 스타벅스와 같은 미국 대형 브랜드들이 중국에서 성업 중입니다. 홍보대행사 APCO Worldwide 중화권 담당 회장 제임스 맥그리거(James McGregor)는 “비즈니스가 양국 관계에서 토대 역할을 하곤 했다”며 “중국과 미국이 많은 문제에서 이견을 갖고 있었고, 양국 시스템이 서로 맞지 않는 점이 많았지만, 비즈니스 및 교역 관계가 묶어주었다. 이제는 양국이 미래 주요 기술 분야 전체에서 직접적으로 경쟁하면서 비즈니스 및 교역 관계가 상당한 마찰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탈동조화 징후를 보이는 모든 업종 중 가장 큰 업종이 바로 기술(Tech) 분야로,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해당 분야 내 교착상태를 기술 냉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중국과 미국은 두 개의 따로 떨어진 세계가 되어 버려 앱,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및 심지어 테크 기업조차 중국 시장이나 미국 시장에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만들어지며 양국 모두에 서비스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미국에서는 중국 최대 통신기업인 화웨이가 지난 5월 사실상 퇴출되었으며, 중국에서는 드롭박스, 페이스북, 구글 등 많은 미국 플랫폼들의 이용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기준 재보정 갈수록 깊어지는 탈동조화 징후는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국가의 중국향 투자는 줄고, 중국의 대미 투자 역시 곤두박질쳤습니다. 또 수많은 미국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중국 외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싶어합니다. 미국 지역의 자산을 매입하려는 중국 기업들은 미 규제당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으며, 중국은 미국의 식품 공급 및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중미 관계는 이미 전략적 협력에서 전략적 경쟁으로 근본적인 재보정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컨설팅 전문기업 트리비엄 차이나(Trivium China)의 공동설립자 겸 경제연구 총괄인 앤드류 포크(Andrew Polk)는 “중국과 미국 모두 실은 탈동조화하고 싶어한다는 걸 사람들이 가끔 잊고 있다”며,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뒷받침해줄 기술을 제공하고 싶어하지 않고, 중국은 자국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다. 양국 간 입장 차의 핵심은 원하는 타임라인이다. 중국은 기술에 있어 스스로 설 수 있는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 보니 느린 탈동조화를 선호하는 반면, 미국은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되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치고 받기 양국간 무역전쟁에서 선제 공격은 2018년 7월 중국산 제품에 34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관세를 1차로 부과한 미국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현재, 중국산 제품에 한해 적용된 미 관세 총액은 5,500억 달러에 이르는 반면, 미 제품에 적용된 중국 관세는 1,850억 달러입니다. 이러한 관세 및 탈동조화 전망은 미 경제에 영향을 미쳤으며, 지난 한 해 월스트리트는 무역 회담에서 진전을 보이거나 갈등이 나타난다는 보도에 따라 매일 같이, 때로는 격렬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의 무역전쟁은 중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경제 성장은 몇 년 간 둔화되고 있고, 기업 및 정부 부채 수준은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으며, 금융 분야는 민간 “그림자 금융” 기업으로 인한 불안정의 가능성을 안고 있고, 민간 투자 여지를 늘리기 위한 구조적 개혁을 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중국 국가통계청에 따르면, 중국 경제 성장률은 2019년 2분기 6.2%에 그쳐, 1분기 6.4%에서 더욱 감소하며 1970년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40년 간 차분하게 유지되어오던 중미 관계가 갑작스레 냉전 상태에 돌입했지만, 잘못을 따지는 것은 복잡한 문제입니다. 지난 9월 중국 신화통신은 “첫 번째 교훈은 중국이 고강도의 압박 전술을 구사하는 미국에 맞서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악관 관세 담당자들이 깨달아야 할 두 번째 교훈은 중국 경제가 현재 진행 중인 무역전쟁에서 초래되는 압박을 충분히 견딜 만큼 강하고 탄력적이라는 것이다”고 전했습니다. 중국 입장은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가져오려면 여전히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탈동조화 과정은 중국과 미국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다른 국가들은 이러한 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Moody’s Analytics)의 최고 APAC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코크레인(Steven Cochrane)은 “중국 및 글로벌 경제의 수요 둔화로 전 세계의 수출 중심 경제와 많은 지역 경제들이 둔화됐다”고 말합니다. 반면 관세 영향을 피하려는 기업들이 중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생산 지역을 옮기면서 필리핀 및 베트남 등 여러 국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코크레인은 “일부 생산 시설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에 베트남이 수혜를 입고 있다”며, “이러한 이전 움직임이 대국인 중국 경제에겐 현재까지 미미한 편이지만, 크기가 작은 베트남 경제에선 성장을 위한 중요한 지원 요인으로, 베트남 내에서 인프라 부담 문제가 발생할 정도이다”고 말합니다.
상호 의존성 과연 탈동조화는 실현될까요? 미국 경제학자이자 전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인 스테판 로슈(Stephen S. Roach)는 미국과 중국이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고, 현 상태를 굳이 칭하자면 상호 의존성의 전형적인 갈등 단계로, 한쪽이 대체로 자체적으로 발생한 문제를 놓고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매튜스 아시아(Matthews Asia)의 투자 전략 담당 앤디 로스맨(Andy Rothman)은 “중국과의 탈동조화는 미국이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정책 옵션이 아니며,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로슈는 해결책은 부분적으로 중국에 달려 있을 수 있다며, 보다 개방적이고 다양한 구조를 이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중국은 국영기업이 경제 활동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모델을 계속해서 고집하고 있다”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다른 많은 국가에선 이를 문제 삼아 중국의 2001년 WTO 가입 규약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과 중국이 상호 의존성의 갈등 단계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논쟁 중 중요한 지점”이라고 말합니다. 앤드류 포크는 “궁극적으로, 대다수 국가들은 글로벌 경제로 인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얻게 될 혜택보다 크다고 주장할 것”이라며, “이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있는 건 비단 미국과 중국 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지구촌 전체가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입장 정리를 하려고 들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