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사스, 그리고 세월호와 둥팡즈싱호
"오늘부터 낙타로 하던 출퇴근 수단을 바꿔야겠다.” 메르스(MERS·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중동호흡기증후군)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쓴웃음을 지으며 하는 조크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낙타나 산양, 박쥐에서 전염되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메르스가 서울에서 확산되는 데 대한 놀라움과 정부의 부적절한 대처를 비꼰 블랙 유머다.
메르스 확산을 보고 있자니 13년 전인 2002년 3월부터 7월까지 전 중국을 공포에 떨게한 사스(SARS·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떠오른다. 당시 사스는 중국 남부 광동(广东)성 허위안(河源)시에서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해 광동성을 거쳐 베이징(北京)을 비롯한 중국 대도시는 물론 국제사회로 확산되어 갔다. 중국인은 사스를 ‘비전형폐렴(非典型肺炎)’, 줄여서 ‘페이디엔(非典)’이라고 불렀다. 메르스가 낙타에서 발원된 것으로 추정하듯 사스가 광동성에서 시작된 것은 이곳 사람들이 살쾡이나 오소리 등 야생동물을 요리해서 먹는 습성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다. 광동성 사람들은 “날아다니는 것에서는 우주선, 네 발 달린 것에선 책상, 물속을 다니는 것에선 잠수함을 제외하고는 모두 요리 재료로 사용한다”고 말한다. 이들 야생동물 사이에 전염되던 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가 유전자 변형을 일으켜 사람에게 감염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사스였다.
당시 중국 사회에서 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것은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국내 공항이나 철도역에 검역시설이 없었고, 부정적인 정보의 전달을 차단하던 중국 정치체제의 결함 때문이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국 외부의 진단이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사스 사태 이후 특히 의료정보를 포함해서 부정적인 정보는 무엇이든 차단하던 당시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극복하는 사례를 남겼다.
2003년 3월 31일 중국 국무원 위생부장 장원캉(张文康)은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까지 중국 내 사스 환자는 모두 1190명으로 이 가운데 1153명은 광동성 주민이고, 12명은 베이징 시민들이며, 산시(山西)성은 4명…”이라고 발표했다. 사스 발생 지역은 주로 광동성에 국한되어 있고, 아직 전국적으로 확산된 단계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발표를 보고 있던 인민해방군 301병원 퇴직 의사 장옌융(蒋彦永)의 마음은 편치가 못했다. 장옌융은 301병원에서 현직으로 일하는 의사 친구를 만나서 “내부 보고에 따르면 309병원에만 사스 환자가 40명에, 이미 사망한 경우가 7명이나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중에 302병원에도 이미 사스 환자가 40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원캉 위생부장의 기자회견 내용은 허위이며, 질병 확산 정보에 관한 그런 허위 기자회견은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해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퇴직 의사 장옌융은 용기를 냈다. 주로 외국으로 뉴스를 송출하는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 채널4와 홍콩 봉황(凤凰)TV 중국어뉴스 채널에 베이징의 사스 확산에 대한 진실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
이 두 미디어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4월 8일 밤, 장옌융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의 베이징 특파원 수전 제이크(Susan Jakes)의 전화를 받았다. 그 다음날 타임의 인터넷판에는 “베이징이 사스의 습격을 받았다”는 특종이 실렸다.
사스의 베이징 확산의 진실을 외국 미디어에 알린 장옌융의 행동은 그전 같으면 감옥을 가는 등 처형 대상이다. 그것이 그때까지 중국 사회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당시 새로 권력을 잡은 칭화대 출신의 후진타오(胡锦涛) 당 총서기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장옌융의 행동을 영웅적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후진타오 당 총서기와 원자바오(温家宝) 총리는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사스 환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병원 현장을 방문해서 의료진을 격려하고 환자들을 돌아보는 모습을 인민에게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6월 중순 중국 정부는 사스의 중국 내 감염이 정지되었음을 선포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의 정보 흐름 차단 노하우는 그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적어도 질병에 관한 한 정확한 정보의 유통을 차단하는 일은 없어졌다. 그리고 전국의 공항과 철도역에 체열감지기가 설치됐다.
지난해 4월 16일 진도 팽목항 부근에서 세월호가 침몰해서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만이 구조되고, 30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가 발생하는 비극이 빚어졌다. 당시 중국 관영 CCTV는 마치 중국 국내 사고인 것처럼 진도 팽목항 현장에 특파원을 보내 구조 실황을 중계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사망·실종자 숫자를 전하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보도 태도를 대체로 유지했다. 서울에 메르스가 확산되고 환자 1명이 중국으로 여행을 가 격리되는 와중에 마치 세월호 사건과 유사한 동방지성(东方之星)호 침몰사고가 얄궂게도 중국 장강(长江) 중류에서 빚어졌다. 난징(南京)을 떠나 충칭(重庆)으로 향해 운항하던 동방지성호는 장강 중류에 건설된 세계 최대의 댐 싼샤(三峡)댐 바로 하류의 후베이(湖北)성 화룽(华容)현 부근에서 침몰, 승객 400여명 가운데 14명만 구조되는 참사를 당했다.
중국 정부는 마치 한국 세월호 비극 때 한국정부의 늑장대응을 배우고 익히기라도 한 듯 동방지성호 침몰사건에 대해 시진핑(习近平)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6월 1일 밤 9시30분 사건 발생 직후 “당과 국무원 관련 부서들은 전력을 다해 한시라도 빨리 구조작업에 돌입하라”는 지시를 하달했고,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는 3일 일찍 현장으로 날아가 큰비가 내리는 구조본부 선박 갑판에 도착해 와이셔츠 어깨가 다 젖은 채 구조작업을 지휘하는 모습을 관영 TV를 통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객선 침몰 후 일주일만에 수색과 인양작업뿐 아니라 전국민들의 애도기간까지 속전속결로 매듭지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중국 지도자들이나 정부가 후진적 질병과 참사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꾸준히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반면 한국 대통령과 정부는 왜 '아몰랑' 여사라는 네티즌들의 비난을 들어야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