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황제등극 초읽기
25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날 공개된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2차 전체회의(19기 2중전회)의 헌법개정안 건의문 전문(全文)에 국가주석 임기를 제한한 규정을 삭제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3선을 금지한 규정을 없애는 것으로 ‘설(說)’로만 돌던 게 처음 확인된 것이다.
시점이 묘하다. 이 건의문은 지난 1월 18~19일 열린 19기 2중전회에서 통과됐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작년 10월 19차 당대회에서 당장(黨章·당헌)에 삽입된데 이어 헌법 개정안에 들어가는 방안이 2중전회에서 논의됐다고 발표됐지만 임기 조항 관련 언급은 없었다.
한 달 뒤에서야 이를 포함해 당 중앙위의 모든 개헌 건의 내용이 전격공개된 이유는 뭘까. 중국 관영 CCTV는 개헌 건의내용을 하나 하나 모두 낭독했다. 중국에선 당국이 주요 회의 직후 모든 내용을 발표하기 보다는 적절한 시점에 맞춰 뒤늦게 공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개헌안 건의문 공개 전후 일정을 보면 ‘왜 지금’인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시 주석은 전날인 24일 ‘헌법과 전면 의법치국(依法治國·법에 의한 통치)’을 주제로 정치국 집체학습을 주재했다. 시 주석은 헌법의 중요한 역할을 더욱 중시해 헌법 시행을 새로운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의 중요성 띄우기에 나선 직후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노림수를 드러낸 것이다.
집체학습 직전에는 정치국 회의를 열어 26일부터 사흘간 베이징에서 19기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9기 3중전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3중전회가 상반기에 열리는 건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12월 11기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후 40년만에 처음이다. 2중전회에서 개헌안을 집중 논의하느라 다루지 못한 ‘당과 국가기구 개혁에 관한 결정’과 ‘국가 기관 지도자 인사안’이 의제다.
3중전회 폐막후 5일째인 3월 5일 개막하는 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국회)에선 올해 정부업무보고를 비롯 △헌법개정안 △당⋅정 조직개편안 △국가주석에서부터 부처 장관에 이르는 시진핑 집권 2기 내각을 확정한다.
지난해 당장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사상을 삽입시키면서 마오쩌둥(毛澤東) 이후 최고 권력을 가진 중국 지도자가 됐다는 평을 듣는 시 주석은 올들어 △개헌을 통한 집단지도 체제 흔들기 △견제 세력 철퇴 확대 △측근 인사 전진배치 △대대적인 조직개편 등 ‘시황제’’가 되기 위해 4가지 포석을 두고 있다.
이날 공개된 개헌 건의문은 21개 조항의 수정을 건의했다. 역대 최대 개헌이다. 시 주석의 권력집중을 예고하는 내용이 많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조항은 헌법 79조다. “국가주석과 부주석 매회 임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회기와 같으며 연임은 두 회기를 초과할 수 없다.”에서 “연임은 두 회기를 초과할 수 없다”는 부분을 삭제하자고 건의했기 때문이다. 건의문대로 개헌안이 통과되면 시 주석은 2023년 14기 전인대에서 7상 8하(67세 연임, 68세 퇴임) 관례를 깨고 국가주석에 3연임할 수 있게된다.
2012년 당 총서기에 이어 2013년 3월 국가주석에 오른 시진핑이 15년 이상 국가주석으로서 집권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시 주석이 마오쩌둥 시절 형성된 개인숭배의 재연을 막기 위해 만든 규칙을 다시 쓸 만큼 충분한 권력을 쌓았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당장에 당 총서기의 임기 명문 규정은 없다. 때문에 10년 뒤 시 주석이 당의 1인자로만 계속 남고, 정부 최고지도자 자리는 후계자에 물려주는 시나리오가 관측됐지만 국가주석 3연임 금지 규정을 삭제하는 개헌안 통과가 확실시 되면서 시 주석은 당 정 최고지도자로서 장기집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개헌 건의문에는 시 주석의 전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내세운 ‘과학발전관’과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기존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 중요사상’ 뒤에 삽입됐다.
개헌 건의문은 또 “부강, 민주, 문명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부강, 민주, 문명, 조화, 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바꿨다. 시 주석이 19차 당 대회에서 2050년까지 건설하기로 약속한 강국 건설의 꿈이 헌법에도 담기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개헌은 전인대 상무위원회나 전인대 대표 5분의 1 이상의 발의에 이어 전인대 대표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중국은 건국한 1949년 헌법 역할을 한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강령을 만들었고, 이를 기초로 1954년 첫 헌법을 제정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인 1975년과 78년 두 차례 개헌했다.
현행 헌법은 1982년 개정 헌법을 토대로 한다. 1988년, 1993년, 1999년, 2004년 개헌이 이뤄졌다. 2004년 개헌에서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3개 대표론이 추가되고, 국가가 공민의 합법적인 수입, 저축, 주택과 재산의 소유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유재산권이 들어갔다.
이번 개헌은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의 1인권력체제가 빚은 문화혁명의 오류를 막기 위해 도입한 집단지도체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는 5가지 기둥으로 구성돼 있다. 당의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회에서 업무 분장, 세대교체, 학습, 시찰, 의사결정 등을 집단체제로 진행하는 게 그것이다.
시 주석은 집권 1기(2012~2017년) 전통적으로 총리가 관장해온 경제 운용까지 주도하면서 업무 분장의 집단지도체제를 흔들었다. 이번 개헌은 집단으로 취임하고 물러나는 세대교체 방식이 시 주석의 장기 집권으로 흔들릴 것임을 예고한다. 시 주석은 앞서 작년 19차 당대회에서도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후계 구도를 만들지 않았다.
19차 당대회의 당장 수정에서도 당 위원회가 집단으로 토론하고 의사결정해야한다는 조항이 유지됐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당장에 ‘어떤 형식의 개인 숭배도 금지한다’ 는 조항이 남아있지만 마오쩌둥에 붙이는 영수(領袖) 란 호칭을 공개적으로 시 주석에 붙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관영 매체들이 시 주석의 개인 과거사를 집중조명하는 등 개인숭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개헌 건의문이 공개되기 하루전인 24일 양징(楊晶) 국무원 비서장 겸 국무위원이 장관급으로 강등됐다는 소식이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흘러나왔다. “불법 기업주, 불법 사회인과 부당하게 사귀면서 상대의 이익을 위해 직무 영향력을 이용하는 위법행위를 했다”는 등이 이유다.
양징은 리커창 총리의 측근으로 통한다. 1993년 네이멍구 공산주의청년단 서기로 당시 공청단 중앙 1서기인 리커창을 상관으로 모셨다. 2013년엔 국무원 비서장으로 올라와 리 총리를 측근에서 수행해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중화권 언론은 그의 강등이 작년 초 홍콩에서 중국 당국에 의해 체포된 이후 소식이 끊긴 중국 투자회사 밍톈(明天)그룹의 샤오젠화(肖建華) 회장과 연루돼 있다고 전했다.
샤오젠화 실종 직후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원프레스는 샤오 회장의 불법거래가 시 주석을 견제하는 세력의 핵심으로 알려진 장쩌민 전 주석과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의 친인척과 연루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 누나 치차오차오(齊橋橋) 등과도 교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 주석이 견제세력의 약점을 잡는 한켠 자신의 친인척은 물론 가까운 재벌을 겨냥한 무차별 폭로를 막기 위해 샤오 회장을 검거했다는 관측이 돌았다. “중국에서는 권력 개편을 앞두고 정치 투쟁이 벌어질 때 경쟁 정치 파벌을 공격하기 위한 전술로 고위층에 대한 민감한 정보를 누설한다.”(천다오인 상하이정법학원 교수)는 얘기도 이와 무관치 않다.
23일 중국 당국은 안방보험의 경영권을 접수, 1년간 직접 경영관리를 하고, 창업자 우샤오후이 회장을 경제범죄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중화권 언론들은 이번 조치를 두고 우 회장이 덩샤오핑 외손녀와의 결혼을 통해 태자당의 자산을 관리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나왔다고 전했다. 홍콩 명보가 “우 회장이 혁명원로 가족과 교류하면서 이들의 돈줄 역할을 해온 정황을 포착해 조사중”이라고 보도한 것도 이의 연장선에 있다.
중국 신문망 등은 상하이시 인민검찰원 제1분원이 우 회장을 자금모집 사기와 배임 횡령 혐의로 상하이시 제1중급 인민법원에 기소했다고 전했다. 보험감독관리위원회는 인민은행 등 5개부처 관계자로 구성된 팀이 1년간 경영관리를 하지만 기업지배구조 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경영관리 시한을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중국 당국은 민영기업의 속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사회자본(민간자본)을 유치해 기업지배구조를 바꾼다는 방침을 밝혔다. 창업자 우샤오후이의 경영권을 영구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시 주석이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인 태자당과 공청단을 압박하는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관측되면서 시 주석의 권력 강화 이전만 해도 후계자 1순위 후보로 거론됐던 후춘화 전 광둥성 서기는 3중전회에서 논의될 인사안에서 비중이 크지 않은 보직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광둥성 서기를 지낸 뒤 중앙에서 대외 통상 등을 담당하는 부총리를 맡았던 왕양 상무위원은 후춘화와 같은 공청단 계열이지만 ‘외로운 늑대’라는 별칭을 들을 만큼 계파에서 자유롭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후춘화 앞길의 최대 장애물은 시 주석의 경제책사 류허(劉鶴) 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이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부주임을 겸하고 있는 류 주임은 19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으로 승진하면서 부총리설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시진핑 집권 2기에 왕양이 맡던 대외 통상 담당 부총리를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류 주임이 27일부터 3월2일까지 워싱턴을 방문해 무역 갈등 조율에 나설 것이라고 SCMP가 보도한 게 이를 뒷받침한다. 시 주석이 올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중국 대표로 그를 보낸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일각에선 장가오리(張高麗). 상무부총리가 상무위원을 하면서 맡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와 징진지(京津冀⋅베이징~톈진~허베이성) 업무도 그가 주도할 것이라는 설이 돈다. 작년 11월 금융감독기구 업무를 조율하기 위해 출범한 금융안정발전위원회의 주임과 인민은행 총재를 맡을 것이라는 설도 나온다. 금융안정발전위원회의 초대 주임을 겸직한 마카이(馬凱) 국무위원과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총재는 이번에 은퇴한다.
SCMP는 류허의 부총리 임명 외에도 왕치산(王岐山)의 국가 부주석, 웨이펑허(魏鳳和) 상장의 국방부장 임명 등으로 시진핑 친위체제 구축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시진핑 집권 1기 반부패 운동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왕치산의 국가부주석 내정설은 중화권 매체에서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다.
욍치산은 부총리 승진이 예상되는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국무위원 및 류허 등과 함께 미국과의 무역마찰을 해결할 소방수로 투입되는 등 시 주석의 집권2기에서도 중요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웨이펑허 전략지원부대 사령원(사령관)은 2012년 11월 시 주석이 당 총서기에 오른 후 단행한 첫 장성 인사에서 상장(대장급)으로 승진했으며, 시 주석의 군내 친위세력으로 꼽힌다.
이번 개헌 건의문엔 감찰위원회를 헌법상 새로운 국가기관으로 올리도록 하는 방안도 들어갔다. 헌법 제 3장 국가기구편에 ‘감찰위원회’라는 한 절을 추가했다. 감찰위원회 주임은 전인대 회기와 임기를 같이하지만 연임은 두 회기를 초과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국가감찰위는 당원에 대한 사정 권한만 가진 중앙기율검사위원회를 넘어 국무원 등의 비(非)당원 공무원과 국유기업 임직원에 대한 감독권도 함께 가진 강력한 반부패 사정 기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9기 3중전회에서는 이와 함께 기존의 국토자원부·수리부·국가임업국 등을 통합한 국가자연자원자산 관리위원회와 퇴역군인관리보장기구의 신설 등도 논의할 것이라고 명보 등이 전했다. 은행 증권 보험으로 분류된 감독기구를 통합하는 안이 논의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둔 한국 처럼 금융안정발전위원회 밑에 3개 감독기구를 통합한 기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인민일보 해외판의 소셜미디어 계정인 협객도(俠客島)는 "기존의 정부 개혁이 '국무원 기구 개혁'이나 '정부기구 개혁' 등의 이름을 띤 것에 비해 이번에는 '당과 국가기구 개혁'이라는 이름인 것에 비춰볼 때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정부 개혁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문혁에 돌아가셨는데. 이건 우리 조국이 아니야” 중국의 한 네티즌이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 규정 사제를 건의했다는 기사를 링크하면서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에 올린 글의 일부다.
시진핑의 1인 권력체제 강화는 기득권의 저항을 받는 개혁을 밀어부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되레 불확실성 리스크를 키운다는 우려도 부각시키고 있다.
영국의 주간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지는 시 주석의 권력강화 관측이 쏟아졌던 작년 10월 “시 주석은 14억 중국인에 대한 견제받지 않는 권력 집중을 중국 정치의 ‘새로운 정상(뉴노멀)’으로 볼지 모르지만 그건 정상적인 게 아닐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하다”며 “'1인 통치체제'는 결국 중국을 불안정하게 하고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는 불확실한 ‘시황제의 중국’과 마주해야한다는 얘기다. 개헌과 측근의 전진 배치, 반부패를 강화하는 조직개편 등으로 ‘시황제 대관식’이 될 수 있는 이번 전인대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긴장감 속에서 치러질 전망이다.
베이징시 공안국은 3월 1일부터 22일까지 위험 화학품을 실은 차량의 베이징 시내 진입을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3일 개막하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5일 개막하는 전인대 등 양회(兩會) 경비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체육총국도 2일부터 회의 폐막 때까지 톈안먼(天安門)을 중심으로 반경 200㎞ 내의 체육, 오락, 광고 비행 등의 활동을 일체 금지한다고 밝혔다. 명보는 올해 전인대가 헌법 개정 등의 중대 사안을 다루는 점을 고려할 때 예년보다 5∼6일 길어져 20일께 폐막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