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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밀접해지는 중일관계

엔저의 여파로 일본을 찾는 유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중국이 한국을 앞지르고 일본 방문 1위 국가에 처음으로 올라섰다.

22일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금년 1∼4월 일본을 찾은 중국인은 132만9천3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98.9%나 증가하면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일본 방문 한국인도 125만2천500명으로 작년동기 대비 43.5% 늘어났지만 중국인이 워낙 많이 늘어나면서 일본 방문국 2위로 주저앉았다.

올해 1월만해도 일본을 찾은 한국인이 중국인보다 많았지만 2월부터 역전된 뒤 같은 상황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2월 방일 유커는 35만9천100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159.8% 늘어나 이 기간에 일본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 수(32만1천600명)를 넘어섰다.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과 한국인 수의 격차는 2월 3만7천500명에서 3월 7만명, 4월 10만1천200명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일본 방문 한국인은 275만5천313명으로, 중국인 240만9천158명에 비해 14.3% 많았다. 당시 한국은 대만에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뺏기고 2위로 추락했다.

역대 한국인 방문객수는 일본관광시장에서 작년을 제외하고 매년 1위였다. 중국인은 강한 반일 감정 때문에 일본 방문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엔화 약세가 장기화하면서 반일감정에 보다 덜 민감한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인 '바링허우'(80後·1980년대 출생 세대) 여성을 중심으로 일본 쇼핑관광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비자 발급을 완화하고 면세혜택을 주고 있는 점도 한 요인이다.

한편 일본 정부차원에서 직접 나섰다. 집권 자민당의 유력 정치인이 정·재계 인사 3000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친서를 들고 방중한 그는 23일께 시진핑 주석을 만날 예정이다. 과거사와 영유권 문제로 얼어붙었던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해빙 기류를 타고 있는 모양새가 역력하다.

 이번 대규모 방중단의 단장은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총무회장이다. 자민당에서 대표적인 비둘기파이자 친중파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지난 2월엔 1400여 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인물이다. 중국은 대일 관계가 경색된 시기에는 정부 고위 당국자 간의 공식 채널은 물론 일본 유력 정치인과의 교류를 최소화하면서도 ‘우호 인사’로 분류되는 친중파 전·현직 인사에게만은 채널을 열어왔다. 중국 정부가 그런 인물이 이끄는 대규모 방중단을 초청했고, 아베 총리가 그에게 친서를 맡긴 것은 중·일 양국 간의 교감이 있었던 결과로 보인다. 니카이 회장은 방중 전 일본에서의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 인터뷰에서 “이번 방중의 최대 의의는 교류에 있다”며 “교류를 해야 양국 간 거리를 좁힐 수 있고 상호 신뢰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니카이 회장을 비롯한 방중단 대표들은 21일 광저우(广)에서 후춘화(胡春华) 광둥성 당서기와 만났다. 23일엔 베이징으로 장소를 옮겨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정·재계 인사들과 교류행사를 열 예정이다. NHK를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아직 일정을 조정 중이지만 23일 이후 시진핑 주석 예방이 이뤄질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대표단에는 현역 국회의원 20명이 포함돼 있고 지방자치단체 관료, 민간 기업인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20일부터 일주일 일정으로 중국에 체류하면서 베이징·톈진·허베이 등 7개 지역을 방문한다.


 대표단의 명칭은 ‘관광문화교류단’이지만 사실상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정치적 목적이 짙다는 게 중·일 양측의 공통된 해석이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량윈샹(梁云翔) 교수는 “비록 중·일 양국 간 영토 분쟁이나 과거사 문제 등 구조적 모순은 변한 게 없지만 그 누구도 양국 관계가 경색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며 “이번 방문이 명목상으로는 민간 교류지만 사실상 집권당인 자민당 관료가 조직해 구성한 만큼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방문단은 2000년 5월 일본의 정·재계와 관광업계 관계자 5200여 명이 방중한 이후 15년 만에 최대 규모다. 2012년 9월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에 이은 아베 총리의 집권,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양국 관계는 2년 이상 최악의 냉각기에 접어들었으나 지난해 중반부터 서서히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 주석과 아베 총리는 지난해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첫 회동을 한 데 이어 올 4월 인도네시아에서 회담을 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반둥 회담장에 국기를 내걸지 않는 등 회담의 의전과 격을 낮추면서 정식 회담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관계 개선 시그널을 점점 높이면서도 최종 관문인 공식 정상회담에 대한 빗장은 아직 걸어두고 있는 모양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즈음해 발표될 예정인 아베 담화의 내용을 보고 중·일 관계 정상화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3000명의 방중단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예전에도 한 차례 전례가 있었다. 1984년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의 초청으로 일본 청년 대표단 3000명이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는 78년 덩샤오핑(邓小平) 부총리의 방일로 중·일 평화조약이 체결되고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이 일본의 경제 협력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등 중·일 관계가 좋은 시절이었다. 당시 일본 대표단의 방중 일정에 대한 책임자는 공청단 1서기였던 후진타오(胡锦涛) 전 주석이었다. 이번 방중단의 첫 공식 일정도 공청단 출신이자 후야오방-후진타오 인맥의 직계로 분류되는 후춘화 광둥성 서기와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