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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裸得很、헐벗은 중국 젊은이들


​"난 정말 헐벗었다(我裸得很·워뤄더헌)."

중국 베이징시에서 가장 번화한 궈마오(国贸·중국 무역센터)에서 일하는 회사원 팡팅(29)씨는 '집·차·남자친구' 중 어느 것 하나 가지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자 '벌거벗을 라(裸·뤄)'에 빗댔다.

중국 남부 안후이성 출신인 그는 5년 전 베이징의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안착했지만 한 달에 쥐는 돈은 6000위안(107만원), 살고 있는 곳은 베이징시 변두리의 월세 2000위안(35만원)의 쪽방이다. 그는 "중국 대도시의 신(新)하층민은 다름 아닌 청년들"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바링허우'(80년대생), '주링허우'(90년대생)가 낮은 임금과 비싼 집값, 취직난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뤄(裸)'자로 시작하는 신조어를 속속 만들어내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자괴감을 '홀딱 벗다'라는 글자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가령 '뤄비(裸毕)'는 '취업 준비를 못 한 채 맞이하는 졸업'을 뜻하고 '뤄바오(裸报)'는 '취직 실패에 대비해 준비 없이 대학원 석사과정에 지원하는 행태'를 뜻한다. '뤄츠(裸辞)'는 관둔다는 뜻의 '츠(辞)'를 써서 '다음 직장을 못 구한 상태에서 사직하는 일'이다. '사들이다'는 뜻의 글자(购)를 붙인 '뤄거우(裸购)'는 '헐값에 물건을 사는 인터넷 쇼핑'을 뜻하고 '뤄자(裸价)'는 '최저가'의 동의어다.

가진 것이 없는 중국 '뤄(裸)족'의 종착점은 '뤄훈(裸婚)'과 '뤄촹(裸创)'이다. '뤄훈'은 집·차·예식을 포기한 중국판 '작은 결혼식'을 뜻하는 신조어다. '뤄촹'은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창업을 의미한다.

지난 16일 CNN은 중국의 '뤄훈(naked marriages)'문화를 소개하면서 중국의 가난한 젊은 층이 과다한 결혼 비용에 백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결혼식 비용이 평균 7600만원인 중국에서 초봉으로 월평균 42만원(베이징대 시장중개연구센터 2015년 통계)을 받는 젊은 세대가 결혼하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아 빚도 없고 부양 가족도 없다면 '뤄촹' 대열에 낄 수 있다. 베이징시 하이디엔구에 있는 '처쿠(车库·차고)카페'는 '뤄촹' 준비자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카페에서 활동하려면 '아내, 부채를 포함해 가진 것이 없다'는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중국의 젊은 세대가 '뤄족'이 된 이유는 2007년 전후로 중국의 대학생이 폭증하면서 '대도시 인재 과잉 공급'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999년 85만명이던 대졸자는 올해 750만명으로 9배 늘었다. 대졸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실업자도 늘었다. 2000년 24만여명이던 미취업 대졸자는 2012년 271만명으로 증가했고 지금까지도 매년 10~15%의 대졸자가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고 중국 언론은 전했다. 대졸자들의 임금 상승률도 낮다.

베이징대 시장중개연구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5.2배 느는 동안 중국 대졸자들의 초봉은 고작 58% 늘었다. 베이징의 아파트 거래가는 현재 제곱미터당 평균 2만7000위안(482만원)으로 대졸자가 1년치 월급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야 겨우 1㎡를 살 수 있다.




올해 대졸자가 희망하는 월급 수준이 2500위안(약 50만원)까지 내려왔다, 최근 5년 내 최저다. 베이징의 사찰 워포스(卧佛寺)에는 취업을 바라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기도를 올린다. 사찰 이름 워포(臥佛) 중국어 발음이 영어의 채용 오포(offer)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명문대 출신도 취업이 어렵다. 베이징대 수석입학한 인재가 고향인 시안에 내려가 정육점을 연 것이 언론에 크게 보도돼 사회적 논쟁을 일으켰고, 그의 이름을 따 루부쉬안(陆步轩) 현상이 생겨났다.

대학이 무분별하게 늘어난 것도 문제가 있다. ‘예지(野鸡)대학’이라는 것이 있다. 2005년 꿩(野鸡)마저 대학에 가게 됐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대학 설립은 합법이지만 학위 기간과 졸업 조건이 완화된 능력 미달의 대학을 말하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학위를 받겠다는 학력 중시의 사회적 병폐가 반영된 것이다. 현재도 유학 붐을 타고 미국에서만 855개의 예지대학이 운영되고, 중국 대도시에 학위만을 양산하는 꿩대학들이 무수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취업이 어렵다 보니 취업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데, 이를 만주예(满就业)라고 부른다. 우리의 졸업 유예, 취업 포기와 비슷하다.

중국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대학 졸업자에게 정부 당국이 직업을 정해 주는 ‘직업분배제도’를 시행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학점, 전공, 학과 교수의 추천에 따라 직장을 100% 분배 배치했고, 졸업생은 원하지 않는 통보 결과를 받아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요즘처럼 취업이 힘든 마당에 차라리 ‘아, 옛날이여’를 그리워하는 자조의 소리도 들린다. 참 힘든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