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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투자자들이여, 단결하라

중국 상하이 증시는 지난 2007년 10월 16일 사상 최고점(6092.06)을 찍은 이후 장기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008년 11월엔 1700선까지 떨어졌다. 그러다 지난해 6월 변화의 계기가 생겼다. 중국 정부가 자본시장 개방 차원에서 후강퉁(沪港通,상하이·홍콩 간 교차 주식 매매)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17일 후강퉁이 시행됐고, 5일 뒤인 22일엔 인민은행이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해 주가 상승에 불을 지폈다.

그 결과 상하이 주식시장은 지난달 12일 5166.36으로 고점을 찍기 전까지 1년간 151% 넘게 급등했다. 중국 상장 주식의 시가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10조달러(약 1경1178조원)를 넘어서 미국(25조달러)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섰다. 주식 광풍(狂風)이 중국 대륙을 휩쓸었다. 지난달 중국 내 주식 투자자 수는 공산당원(8700만명)보다 많은 9000만명을 기록했다.  중국의 이런 주식투자자 수는 우리나라는 물론 독일, 영국 등 상당수 국가들의 인구보다 많은 것으로, 이런 '군단'이 중국 증시에 벌떼 처럼 몰려,남루한 차림의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들이 지하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주식을 이야기하고, 수업 시간에 주식 투자에 열중하는 대학생이 많아 정상적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중국 증시의 하루 평균 신용 거래 비중은 지난해 말 890억위안에서 지난달 최고 1750억위안으로 불과 반년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났다. 그러다 '팔자'가 늘면서 주가가 급락하자, 담보가 부족해진 우산신탁과 불법 장외 신용 자금이 일시에 청산됐고, 이 과정에서 공포에 질린 개인들의 투매가 이어져 시장이 더 크게 출렁거렸다.증시 거품 붕괴에 따른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주간 상하이 증시가 24% 이상 하락하면서 이 기간에 증발한 중국 증시의 시가총액만 약 2조8000억달러(약 3136조원)에 이른다. 그리스 GDP의 12배다. 그 결과, 중국에서 자살자가 속출하고 있다. 중국 관영 CCTV는 최근 "주가 급락으로 30여명의 개미 투자자가 자살했다"고 전했다. 랴오닝대학의 한 교수는 주식 투자 실패를 비관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중국 당국은 주식투자자들의 거액 손해로 경제적 압력을 받는 데다 증시 파동이 경제 불안정에 이어 사회적 불안정을 촉발할 가능성을 우려하여, 지난 주말 중국 인민은행이 10년여 만에 기준금리와 시중은행 지급준비율을 동시에 하향 조정하고, 량롱(两融·주식을 담보로 증권사에서 자금을 빌려 투자하는 주식담보대출(융자)과 증권사에서 주식을 빌려서 팔 수 있는 대주제(융권)를 합쳐 부르는 주식 신용거래제도)의 130%까지 신용확대, A주 거래 중개 수수료 30%인하, 양로보험기금 30%(약 1조 위안) 내 증시 투자 허용, 신규 IPO 중단 등 중국 당국이 연이은 증시 부양책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중국 증시는 지난 1년동안  '다마(大妈·아줌마)들이 객장으로 몰려 중국 특색의 광장무(广场舞·중국 아줌마들이 아침이나 저녁무렵 광장이나 공터에서 모여 추는 단체춤)가 사라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열되었다.

 중국 산시성에는 새벽에 농사하고 객장오픈시간엔 주식을 한다는 주식촌까지 생겨났다. 사과농사로 주업이던 산시(陝西)성 싱핑(兴平)시 난류(南留)촌에서는 830여가구 중 100가구가량이 주식시장에 발을 담갔다. ​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왕모 여사는 7만위안(약 1260만원)을 갖고 시작해 반년 만에 12만위안을 벌었고, 상승을 의미하는 빨간색으로 물든 주식 시세판을 바라보며 활짝 웃던 노인을 찍은 보도사진은 사람들을 이유불문 객장으로 유도하는 자극제였다.​​


중국 증시는 지난 1년 동안 이처럼 빈부격차, 지위고하,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개미(개인투자자)들을 끌어당겼다. 고된 노동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주식이야말로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국민)’들에게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중국의 주가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오르면서 경제여건에 비해 증시가 과열됐다는 거품론이 끊이지 않았지만 중국에선 마이동풍이었다. 대신 “중국에서 주식에 투자하려면 펀더멘털을 잊으라”, “투자를 두려워한다면 이미 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투기를 부추긴 전문가들도 있었다.

중국 증시의 활황은 정부와 언론, 금융기관의 합작품이다. 거품을 경고하는 이들에겐 '중국 주가를 이해하려면 영도자들의 생각부터 읽으라'는 면박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1억명 가까운 중국 개미들은 투자의 위험성을 얼마나 제대로 고지받았을까. 하루 벌어 하루 먹기 힘든 농민공들에게 주식 투자를 부추긴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경제 규모는 세계에서 두 번째라는데 주식시장은 너무 낙후된 것 아닌가.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면 투자 수익률도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대다수 중국 투자자들은 이를 애써 외면했다.


최근 중국 증시에서 주가가 하루에만 7% 폭락하는 등 급격한 조정을 겪으면서 개미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이제 중국의 개인투자자들은 칼맑스와 엥겔스가 선언한 공산당 선언의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万国无产阶级团结起来)'란 그 유명한 구호를 빗댄 '중국의 주식투자자들이여, 단결하라(中国股民们要团结起来)'라며 냉정을 찾을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여전히 증시 부양에 열중한다.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동시에 내리고 언론을 통해 당국(중국증권투자기금업협회)는 "비바람 후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햇빛이 내려쬔다(阳光总在风雨后)라며  폭등 후 폭락은 정상적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개미들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지만 하소연할 곳은 없다. 

지난 29일 베이징에서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협정문 서명식이 열렸다. AIIB 협정문 서명으로 팡파르를 울리고 있는 한편에서 터져 나오는 중국 개미들의 한숨을 보면서 중국은 과연 어디에 서 있는지 헷갈리게 된다. 그래도 우리처럼 힘들거나 책임져야할 일이 생기면 '아몰랑(프랑스 왕정시대에 아몰랑 공주(Amolant de Yeausie)'가 있었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유래가 있음)'하지않는 어느나라의 지도자와 정부보단 개미투자자들을 위해 증시 부양에 올인하는 중국 정부의 책임감은 믿을만 하지만 주식시장은 경제의 거울이라고 한다. 중국 증시가 중국의 온전하지 못한 자본주의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중국 경제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중국의 주가 폭락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