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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다

7월 1일은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3월 취임 후 처음으로 29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홍콩을 방문한다. 시 주석은 캐리 람 행정장관 당선인의 취임식을 주관하면서 일국양제(一国两制·한 국가 두 체제) 중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은 10주년 때의 9배에 달하는 9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전례 없이 ‘화려한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홍콩 방문일이 결정된 지난 26일 우산 혁명을 이끈 주역인 조슈아 웡(黃之鋒·21)과 민주파, 신당, 홍콩중지(香港衆志)를 포함한 3개 단체 회원들이 금자형(金紫荆)광장에서 "지난 20년간 권위적 정권의 강경 통치를 상징한다"며 주권 반환 상징물인 자형화(골든 바우히니아)상에 검은 천을 씌우는 시위를 벌였다.
자형화(바우히니아)는 홍콩을 상징하는 꽃으로, 중국이 1997년 홍콩 주권 반환을 기념해 골든 바우히니아 상을 만들어 홍콩에 선물한 상징물이며, 기념비가 있는 광장과 인접한 시설은 매년 7월 1일 반환 기념식이 열리고 있으며, 올해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처음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시위 단체 측은 시위에 대해 "검은 천으로 황금 꽃을 덮은 것은 의원 자격 취소 요청과 정치적 통제를 의미하며 '일국양제'의 위험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년 전 홍콩과 오늘날 홍콩의 가장 큰 차이는 일국양제에 대한 불신의 정도다. 범민주 진영은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합의가 무너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날 시위를 벌인 단체들은 중국의 일국양제를 못미더워 하며 완벽한 홍콩민주화와 독립을 주장하는 젊은 세대를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 홍콩 젊은이들은 2012년 홍콩 정부가 중국식 '국민 교육'을 도입하려 하자 '세뇌 교육'이라며 들고 일어나 무산시켰고 2년 뒤엔 우산 혁명으로 홍콩을 뒤흔들었다. 또한 홍콩의 젊은 세대들은 반중(反中) 감정이 커지고 있다.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홍콩대가 홍콩의 18~29세 청년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의 비율이 올 상반기 3.1%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20년 전에는 긍정적인 답변이 31%로 10배나 됐다.

과거 신장(新疆)과 티베트 등 소수민족 거주지역에 한족의 이주를 장려한 바 있는 중국 당국은 홍콩에서도 신이민 정책을 펴고 있다. 꾸준히 인적 융합이 일어나 홍콩이 중국에 동화하도록 하는 것이 중국 당국의 전략이다.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20년간 홍콩 인구는 648만 명에서 740만 명으로 늘었다. 홍콩으로 이주해 오는 중국인은 한 해에 약 5만 명에 이른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중국에서 건너온 이들을 ‘신(新)이민’이라 부른다. 20년 동안 중국 정부는 홍콩과의 일체화 작업을 가속화해왔다.

하지만 홍콩인이 스스로 느끼는 정체성은 그런 노력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정작 홍콩인들 사이에선 탈(脫)홍콩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홍콩에 주재하는 서방 외교관은 “해외 이민 희망자가 80%에 이른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홍콩 보안국의 통계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매년 7000∼8000명이 해외 이민을 가고 있다. 줄곧 미국, 호주, 캐나다가 선호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대만 이민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대만 내정부(內政部) 통계를 보면 우산 혁명이 일어났던 2014년 대만 거류 자격을 신청한 홍콩·마카오인들은 7506명으로, 전년인 2013년 4574명보다 60% 넘게 폭증했다.

20년 전 중국 입장에서 홍콩의 역할은 중요했다. 중국은 홍콩을 기점으로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기업들과 교역할 기회를 얻었다. 97년 홍콩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3%에 불과하다. 중국의 주요 도시인 상하이와 선전 등은 그동안 무역 거점으로 성장해 홍콩의 역할을 대체했다.

이제 중국은 20년 전처럼 홍콩이 더 이상 돈을 벌어다주는 보물단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의 안보를 해치고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애물단지라고 보고 있다. 지난 20년간 사회주의 중국의 지붕 아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실험을 해온 홍콩 사회의 한편에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이 더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