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까지 유럽인들에게 ‘백조(고니)는 흰색’ 일뿐이었다. 검은 고니는 상상 속 동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1697년 실제로 호주에서 검은 고니가 발견됐다. 이후 블랙스완은 ‘불가능하다고 여긴 상황이 실제 발생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 2008년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를 예측한 나심 탈레브 뉴욕대 교수의 ‘블랙스완’ 책이 나온 후엔 ‘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예측 못한 사건’ 이란 의미가 붙었다.
중국은 블랙스완을 두려워한다.
지난해 중국에 불어닥친 블랙스완은 2가지다.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사태...중국 경제는 홍역을 치렀다. 두 사건 모두 해결된 건 아니지만 한숨은 돌렸다.
중국은 지난 15일에 미국과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하고 일시 휴전했다. 홍콩 시위도 지난해와 비교하면 경찰과 시민간의 큰 충돌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6.1%는 2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그래도 블랙스완의 위기 속에 6% 성장률을 지켜낸 셈이다.
한 숨 돌리나 했더니, 새로운 블랙스완이 날아들었다.
'우한 폐렴'이다.
공포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뉴욕증시가 급락했고 한국과 일본도 하락세를 보였다. 아직 환자가 나오지 않은 유럽 증시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SCMP는 “많은 전문가들이 우한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2020년 (중국의) 첫 번째 블랙스완이 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고 전했다. 관칭요우 중국 민셩증권 연구원은 SCMP에 ”코로나바이러스는 미국 무역전쟁보다 더 큰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한다. 라지브 비스워스 IHS마킷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 간에 전염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중대한 잠재적 경제 위험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전례 때문이다. 2002~2003년 중국 전역을 강타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태다. 중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8096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이중 773명이 숨졌다. 사스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우한 폐렴과 같은 코로나바이러스였다.
라지브 이코노미스트는 "2003년 사스 위기는 당시 중국 경제성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며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 동남아 경제에도 타격을 줬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 분석도 비슷하다. 당시 사스 사태로 인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약 1% 포인트 감소했다고 전한다.
우한 폐렴이 사스 사태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당연한 걱정이다. 베이징대 중국경제연구센터가 2004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사스로 중국 경제가 입은 피해액은 253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 경제매체 신랑경제는 “사스가 유행한 2003년 2분기에 중국 경제는 특히 항공, 관광, 교통, 식음료, 소매업 등에서 큰 피해를 줬다”며 “이번 우한 폐렴도 중국 국내 경제 및 경제정책에 불확실성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봤다.
문제는 중국의 몸집이 17년 전보다 커졌다는 점이다.
중국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4.3%다. 하지만 지난해엔 16.3%로 4배 가량 늘었다. 우한 폐렴이 사스 때와 유사하게 전개된다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괴력도 4배 이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반론도 있다. 아직까지 우한 폐렴은 사스보다 위력이 덜하다는 것이다. CNBC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아직 초기지만 (신종) 바이러스는 환자의 약 10%를 사망하게 한 사스만큼 치명적이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 사스 사태를 겪은 중국은 (질병을) 더 잘 억제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2003년 사스 사태를 경험한 중국 정부가 제2의 사스가 되지 않도록 신속한 노력을 펼칠 것이라는 게 이 같은 전망의 근거다. 우한시 등 지방정부 차원에서 시민들에게 항공권 취소를 권유하고, 여행 자제 조치를 취하고 있다. CNBC는 "(우한 폐렴으로 인한) 중국 경제 하락세는 일시적이라고 본다"며 "부정적인 뉴스가 계속되더라도 올봄쯤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우한시는 중국 중부지역 교통 요충지다. 중국의 인구·화물 이동이 집중되는 곳이란 뜻이다. 춘절 연휴 중에 중국 인구의 대이동 과정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인지가 문제다.
전염병 권위자 위안궈융(袁國勇) 홍콩대 교수는 SCMP에 "우한 폐렴은 이미 환자 가족이나 의료진에 전염되는 전염병 확산 3단계에 진입했으며, 사스 때처럼 지역사회에 대규모 발병이 일어나는 4단계에 근접하고 있다"며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가진 채 대규모 인파와 접촉하는 '슈퍼 전파자'가 이미 발생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스 대유행 당시 슈퍼 전파자는 '독왕'(毒王)으로 불렸는데, 1명이 1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전염시키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스 외에도 세계적으로 유행한 전염병이 2번 더 있었다. 2009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다. 하지만 두 질병이 유행했을 당시 국내 경제에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반면, 2003년 사스로 인한 피해는 상당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한국 경제가 사스 사태로 인해 최소 20억~33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중국, 홍콩 등지로의 수출 감소와 해외여행 수입 감소가 이유로 꼽힌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신종플루나 메르스와 달리 사스가 국내 큰 피해를 준 건 전염병 발병 지역이 중국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사스로 중국이 흔들리자 지리적·경제적으로 밀접한 한국에 미치는 파장이 컸다는 의미다.
사스와 견줄 또 다른 대형 악재가 대륙에서 불어오고 있다.
'우한(武漢)코로나' 사태가 확산 일로다. 사태의 끝이 어딘지 모른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중국 공산당의 관료주의가 낳은 병폐로 본다. 오로지 위만 처다보는 중국 '수직 사회'의 한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한 코로나 사태는 1월 20일 전과 그 후로 나눠 봐야진실이 보인다.
중국 당국은 지난 20일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한의 전 공무원이 전염병 방지 작업에 투입됐다. 병원도 전담팀을 짜 움직였다. 언론은 그제서야 우한의 상황을 시시각각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날 시진핑 주석이 "우한의 질병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라고 한 마디 했기 때문이다.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게 관료주의 사회의 특징이다. 중국 당국은 19일까지만 해도 "사람간 전염은 없다. 확실하게 통제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 1명과 간호사 13명이 집단 감염됐음에도 이를 숨겼다. '인터넷에서 우한 질병을 들어 민의를 선동하는 자들은 엄격히 단속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에 따르면 병이 처음 감지된 것은 작년 12월 중순이다. 중앙에서 연구팀이 우한에 파견됐고, 시내 한 먹거리 시장에서 비롯됐음을 밝혀냈다. 그 시장이 폐쇄된 건 1월 1일이다. 8일에는 공식적으로 '신종 코로나' 역병이 확인됐다.
쉬쉬했다. 축소하고, 덮기에 급급했다. 언론에 보도하고, 시민들에게 알리고, 대책을 세워야 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위에서 뚜렷한 지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관리들은 옆을 보지 않고 항상 위만 본다. 수직 사회의 한계다.
중국 역병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중난산(鐘南山)중국공정원 원사가 20일 '사람간 전염이 확증적'이라고 한마디 하자 분위기가 바뀌었고, 그 때 맞춰 시진핑 주석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확진 환자가 이미 200명을 넘어설 때였다. 수 만 명의 우한 거주민들이 설을 쇠기 위해 우한을 빠져나간 뒤였다.
2002년 말 광둥에서 시작된 사스는 해를 바꿔 수도 베이징까지 밀고 올라왔다. 그래도 베이징 당국은 쉬쉬했다. 감염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2003년 3월 들어 죽어 나가는 환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당국은 '금방 진정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감추기에만 급급했다.
이 때 투입된 사람이 당시 하이난(海南)에 있던 왕치산(王岐山)이다. 베이징 대리 시장으로 임명된 그는 "일(一)은 일이요, 이(二)는 이다. 이론이 있을 수 없다"며 투명하게 보고하라고 했다. 질병의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됐다. 행정 조직도 비로소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 800명이 목숨을 잃은 뒤에야 사스는 진정됐다.
공산당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뻔하다. 모든 국가 자원을 동원해 '코로나 잡기'에 나설 것이다. 곧 정치국 상무위원 급 대책반이 설립될 예정이다.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무지막지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거대한 임시 병원을 1주일 안으로 짓겠다는 건 이를 보여준다. 필요하다면 후베이성 전체를 봉쇄할 수도 있다. 군 의료진을 파견하고, 물자 공급 작전이 진행될 것이다. 전역에서 전염병 퇴치를 위한 모금 활동이 전개되고, 민영 기업들은 앞다퉈 위로금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그게 중국 공산당이 국가 재난을 다루는 방식이다.공산당, 항균항병(抗菌抗病)작전의 선봉이 되다! 언론에서는 '코로나'와 싸우는 전사들을 찬양하는 미담이 속출할 것이다. 당은 그렇게 미디어를 활용해 그들의 과오를 포장한다.
2003년 사스 희생자 800명이다. 이번 우한 코로나는 또 몇 명의 목숨을 앗아가야 끝날까... 중국 공산당의 관료주의에 세계는 다시 긴장 모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