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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다시 강화되는 당의 지배, 마오 시대 회귀 우려 지난 6월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는 안방(安邦)보험그룹의 주주변경을 5월에 승인했다며 내역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기존 39개 주주 가운데 상하이자동차(1.22%)와 시노펙(0.55%)만 지분을 유지하고 나머지 주주들이 보유했던 98.23%는 모두 국유기업인 중국보험보장기금유한공사로 대체됐다. 2004년 자동차보험 판매로 시작해 자본금 기준 중국 1위, 자산 기준 3위 보험사이자 글로벌 500대 기업(포춘 기준, 139위)을 일군 우샤오후이(吴小晖) 창업자의 소유권이 공식적으로 박탈된 것이다. 소유권을 잃은 37개 주주는 그 배후에는 우샤오후이 전 회장의 저장(浙江)성 고향 친지 86명이 있다고 지난해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财新)에 의해 폭로됐었다. 중국 당국은 중국보험보장기금유한공사의 지분보유는 과도.. 더보기
21C 한중관계는 역사적으로 대륙에서 강력한 통일국가가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예외 없이 나라가 망하거나 전쟁을 겪었다. 한(漢)나라의 등장은 고조선의 멸망을 초래했고 백제와 고구려는 당나라의 등장으로 소멸했다. 고려는 명나라의 등장 직후 역사에서 사라졌고 조선은 신흥 청나라에 남한산성에서 굴복했다. 중국의 부상(浮上)은 우리에게 위기와 격변을 불러일으킨 사활적 문제이다. 하지만 청일전쟁 직전, 청나라 전권대신이던 원세개(袁世凱·위안스카이)가 조선에서 도주했을 때, 조공(朝貢) 관계를 통한 중국의 조선 지배도 끝났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한국은 20세기 후반 들어 경제발전과 민주화로 중국을 능가하는 선진국이 됐다. 등소평(鄧小平)의 개혁·개방으로 잠을 깬 중국은 박정희의 국가 주도 수출 공업화 전략을 철저히 따랐다. 그러.. 더보기
시진핑 위기? 베이징에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고 있는 요즘, 시진핑 주석은 UAE와 아프리카를 돌며 항미(抗美) 우군 만들기에 한창입니다. CCTV를 비롯한 관영 매체들은 연일 관련 소식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미중 무역전쟁 소식도 초반보단 좀 수위 조절을 하는 듯합니다만, 여전히 미국의 일방주의가 문제라는 전문가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주류 매체들은 이런 소식들에 보도력을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베이징 외교가의 관심은 다른 곳에 쏠려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들입니다. 확인하기도, 부인하기도 어려운 권력 내부의 내밀한 상황을 담고 있는 소식들이 중국 정부와 언론의 관심사와는 무관하게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정체불명의 소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시진핑 .. 더보기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시진핑이다 이 눈치 저 눈치 다 봐야 기껏 8년을 권좌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어서 그럴까. 미국 대통령들은 상대적으로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는 중국의 지도자들에게 도가 지나친 경외심을 표현하기로 유명하다. 리처드 닉슨은 마오쩌둥을 만나 “주석님의 글은 세계를 바꿨다”라고 치켜세웠다. 지미 카터가 덩샤오핑에게 바친 형용사의 행렬은 끝이 없다. 현명하고, 강인하고, 지적이며, 솔직하고, 용기 있고, 자상하고, 자기 확신이 있고, 붙임성 있고…. 빌 클린턴에게 장쩌민은 ‘비전이 있으며’ ‘비상하게 지적’이었다. ​ ‘투 머치 토커’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고 밀릴 리 없다. 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그가 보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마도 지난 100년간 중국에 나타났던 지도자 중 가장 강력한 인.. 더보기
대단하다 우리나라(厉害了、我的国) 지난 3월 2일 2일 중국 국영방송 CCTV와 중국영화그룹(中国电影集团)이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리하이러,워더궈(厉害了、我的国 Amazing China)’가 전국에 개봉했다. 이 작품은 18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5년간 중국 사회의 발전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애국’ 영화로 중국 전역의 극장에서 일제히 상영됐다. 이 영화는 CCTV의 경제채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휘황중국(辉煌中国)’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5년간의 교량, 차량, 도로, 항만 등 중국이 추진한 초대형 프로젝트의 생생한 현장을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구이저우(贵州)성에 소재한 '하늘의 눈'(天眼)이라는 별칭이 붙은 전파망원경(FAST), 글로벌 최대 해상플랜트 란징2호(蓝鲸2号), 국산 여객기 .. 더보기
등을 꼿꼿이 펴고 냉소주의자를 거부한다(挺直脊梁、拒做犬儒) ​ 戊戌变法、北大建校一百二十年,我们纪念蔡元培校长。在中国近代史上,元培先生当之无愧是现代教育之父。他留给我们的“兼容并包,思想自由”是北大的精神火炬,代代相传。蔡校长在人们的印象里总是一个谦谦君子式的思想领袖。其实蔡校长的另外一个侧面同样是万世师表,那就是一个挺直脊梁、拒绝做犬儒的男子汉。 早年的元培先生为了反抗清朝,一介书生却豁出命来组织训练暗杀团,意图刺杀清朝的官员。在后面的几十年里,他只认真理,不畏强权,在北大校长的任上曾先后八次辞职以示抗议:1917年抗议张勋复辟清朝而辞职;1919年5月营救被捕学生而辞职;1919年底和1920年1月支持北京市教职员为薪酬抗议政府而辞职;1922年8月/9月两次为政府侮辱校长/拖欠教育经费而辞职;1923年抗议教育总长践踏人权和司法独立而辞职;1926年抗议政府镇压学生而辞职。从这个意义上看,元培先生的“兼容并包,思想自由”是付出了极大的.. 더보기
마오쩌뚱으로 ‘환생’ 꿈꾸는 시진핑의 야망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10월, 중국 마오쩌둥 주석은 “반(反)혁명 분자 소탕”을 지시한다. 타이완으로 쫓겨난 국민당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자, 해외 제국주의 국가의 ‘비밀 요원’, 그 밖의 수상쩍은 인물 등이 대상이었다. 주석의 입에서는 1000명 중 한 명 이상이 반혁명 분자일 거라는 암시마저 나온다. 상명하달의 1인 독재 체제에서 최고 지도자의 한낱 어림짐작이 조직의 하부로 내려가면 ‘사실’로 굳혀지게 된다. 현장 실무자 처지에서는, 예컨대 성(省)의 인구가 1000만명이라면 1만명 이상을 처형해야 한다. 실제로 목표량을 초과 달성하기 위한 실무자들의 경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수사기관이 실체적 증거로 ‘위법(반혁명) 행위’를 입증하고, 판사가 검사와 변호인 간의 법정 공방으로.. 더보기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는 폐지되었는가? 중국의 국가주석 임기제한 폐지 개헌으로 인하여 시 진핑(习近平)으로의 권력집중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시 진핑 황제’라고 공공연히 보도되고 있다. 시 진핑 1인체제가 등장하였으며 종신토록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국가주석 임기제한의 폐지는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임하는 최고 지도자인 국가주석이 이론적으로는 종신까지 임기를 반복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 그러면 중국의 지도체제가 종신제의 1인체제로 복귀한 것일까? 이 문제는 국가주석 임기제한의 폐지가 종신제와 등치될 수 있는지, 집단지도체제가 유효한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집단지도체제가 여전히 작동한다면, 임기제한의 폐지가 1인체제로의 전환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종신제로의 회귀일 수가 .. 더보기
중국은 어떻게 시황제의 나라가 되었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11일 개헌안을 결국 통과시켰다. 이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자신의 이름을 딴 사상을 헌법에 올린 채 임기 제한 없는 주석직에 오르게 됐다. ​ ​ 2012년 첫 주석직 취임때만 해도 ‘역대 최약체’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듣던 시 주석이었다. 하지만 이제 마오쩌둥 버금가는 권력을 거머쥔 그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중국이 반(反)부패 작업을 통해 경쟁자들을 옥죄고 인터넷 등 여론에 재갈을 물리는 감시사회로 거듭날 것이라 보고 있다. 이미 시 주석은 반부패 작업을 맡아온 중앙기율검사위원회를 국가감찰위로 격상시키는 동시에 인터넷 검열을 강화하며 비판세력을 옥죄고 있다. ‘호랑이(부패권력층)이든 파리(지방 비리공무원)든 다 때려잡겠다’ 시 주석의 권력을 강화한 일등 .. 더보기
시진핑시대에서 바라본 덩샤오핑의 평가 ​ 站在习时代,如何评价邓小平? 邓聿文 2018年2月13日 今年2月19日是邓小平去世21周年的忌日,恰逢中国改革开放40年。要总结这一时期改革开放的历史经验和教训,就绕不开对邓小平的评价。正如没有毛泽东就没有社会主义中国一样,没有邓小平,改革开放也许就不会出现,或不是现在这个样子。 在改革早期,人们对邓小平的评价没有很大歧义,他是以“改革开放的总设计师”形象出现的——至今官方还是如此称呼他。当北京大学的学生在1984年的国庆游行队伍里打出“小平您好”的横幅时,邓的威望达到了其一生的顶点。八九是社会对邓评价的一个转折点,他被民运派称为“六四屠户”。“九二南巡”,邓以“一介平民”身份将中国重新带回改革。此后,邓淡出公众视野,直至去世。 20多年后再来评价邓小平,视角和重点自然和上世纪八九十年代有所不同。对历史人物的评价,首先要放在他生活的时代,从他所面临的约束条件去理解。现在社会上有..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