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럭셔리’를 사는지는 모두가 안다. 중국인들이다. 현재 전 세계 럭셔리 제품의 35%를 사고 있는 중국인들은 2025년이면 50%를 싹쓸이할 것으로 추산된다. 시계는 이미 전 세계 물량의 절반을 구매하고 있다. 어원 램보그 HSBC 소비자 및 리테일 자산 연구관리 책임자는 “중국인들이 어떻게 럭셔리 산업을 바꿔놓았는지”를 설명했다. 명 왕조 이후의 중국은 럭셔리 왕조라는 내용의 책 ‘더 블링 다이너스티’를 쓴 램보그는 중국인들로 인해 럭셔리 마켓의 규모가 두 배로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에이미 킴 매킨지 파트너에 따르면, 중국의 도시 거주자 중 여권을 소지한 인구는 6%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 6%밖에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유럽 소비자는 이미 럭셔리 제품을 사지 않은 지 오래다. 미국이나 일본은 유럽보다는 좀 사는 편이지만, 중국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브랜드들은 중국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자신들의 DNA를 버리고 제품을 중국화했다. 커다란 용 무늬가 수놓아진 빨강 블라우스, 다이아몬드가 너무 많이 박혀 있어서 손목이나 들어올릴 수 있을까 걱정스런 시계 등이 대표적. 하지만 램보그는 “중국 소비자들은 중국적인 것을 싫어한다. 파리에서 파리 사람들이 쓰는 덜 화려한 모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카르티에가 다이아몬드를 다 떼버린 심플한 시계로 돌아온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 시장이 열리면서 벌어진 착시와 시행착오는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묻지마 판매’에 여념이 없었던 브랜드들이 수요감소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소비자 분석과 소통에 나선 것이다. “샤넬은 정책을 바꿔 누구에게 물건을 파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취향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의 럭셔리 소비자들은 평균 연령이 유럽보다 15세, 미국보다 20세나 젊다. 취향이 매우 다양하다. 그러므로 럭셔리는 앞으로 캐주얼화로 가는 게 맞다. 스마트폰에서 손을 떼지 않는 아시아 소비자들에게는 백팩이 핸드백보다 인기다. 전통적 럭셔리는 욕구의 위계에 의거한 피라미드형이었지만, 이제는 슈퍼-하이엔드가 될 필요가 없다. 슈퍼리치들은 오히려 럭셔리 제품을 사지 않는다. 그들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여행, 외식 같은 경험을 산다.”
럭셔리란 무엇일까. 영어의 ‘luxury goods’, ‘luxury item’이 ‘명품’으로 둔갑한 것이 브랜드들의 치밀한 전략이었다곤 할 수 없지만, 초고가품을 자연스럽게 ‘명품’으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인식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한 것은 사실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 같은 홍보문구들은 중고판매를 해봤거나 자기들끼리도 거기서 거기인 디자인을 떠올려보면 금세 코웃음을 치게 된다. 도대체 럭셔리란 무엇이란 말인가.
영어사전이 풀이하는 럭셔리의 정의는 ‘꼭 필요하진 않지만 즐거움을 주는 아름답고 비싼 물건’이다. ‘명품’과 같은 가치판단은 들어있지 않다. 반면 한국어사전은 럭셔리를 ‘보기에 값비싸고 호화로움’, 럭셔리 제품을 ‘사치품’이라고 과감하게 번역한다. 부정적 뉘앙스를 물씬 풍기는 사치와 호화라는 단어가 고급스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과 괴리돼 있다. 제품을 물신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적정가치를 인정해주는 중도적 태도의 번역어가 창안되지 않았다. 고로 럭셔리는 그저 럭셔리인 편이 합리적이다.
통통 튀는 팝 컬처를 럭셔리에 과감하게 도입해 “아침에 들고 나서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수지 멘키스 보그 인터내셔널 편집장)는 찬사를 받는 영국 핸드백 디자이너 안야 힌드마치는 이번 콘퍼런스에서 “패션은 자신의 지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로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에 종언을 고했다.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설파한 이후 럭셔리의 교시로 군림해온 이 소비이론은 남들은 못 갖도록 끝없이 값을 올려대던 브랜드들의 사악한 가격정책의 근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닐 듯하다. 힌드마치는 “패션은 배타적인 것(exclusive)에서 포용적인(inclusive) 것,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라익스뮤지엄 관장 윔 페이브스 역시 예술사를 근거로 “소수 상류층과 엘리트들의 전유물로서의 럭셔리는 끝났다”고 선포했다. “이제 길거리 어디에서나 럭셔리를 볼 수 있다. 누구에게나 공급된다. 대중화된 럭셔리. (일종의 형용모순이므로) 그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 럭셔리는 ‘소유’에서 ‘존재’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고, 공유는 새로운 개념의 소유가 되고 있다. 세상에 나 혼자만 가질 수 있는 럭셔리라는 건 없다.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럭셔리를 즐기는 경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 ‘오직 나만’이라는 독자적인 존재를 표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럭셔리다.”
인스타그램 패션 파트너십 총괄인 에바 첸 역시 ‘럭셔리의 민주주의’를 말했다. “럭셔리의 미래는 민주주의에 있다. 모든 사람을 연결하고, 소비자와 직접 소통해야 한다. 전통적 럭셔리 하우스들은 소셜미디어를 멀리해왔지만, 현실은 이제 전혀 다르다.” 사회적 논란이나 비판이 제기될 때 숨어버리는 브랜드, ‘너는 나를 가질 수 없다’는 고압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는 이제 럭셔리 브랜드의 영리한 전략이 될 수 없다.
http://fashion.sina.cn/luxury/sinfo/2016-03-16/detail-ifxqhmvc2521187.d.html?wm=3049_0015
'在 > 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의 배꼽, 후베이 (0) | 2016.05.31 |
---|---|
예술 또는 외설 (0) | 2016.05.31 |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0) | 2016.04.20 |
일본보다 더 일본같은 중국 (0) | 2016.04.18 |
진짜 중국, 중국인의 원류 중원 허난 (0) | 2016.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