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전 <첨밀밀>(甛密密, Comrades: Almost A Love Story, 1996)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며 클릭했다. 그러고 보니 난 네 가지 방식으로 이 영화를 봤다. 스크린으로, 비디오로, DVD로, 이제는 파일로. 여전히 매력적인 두 배우, 여명과 장만옥의 얼굴이 반가웠다. 며칠 전 접한 홍콩의 7∙1시위 기사 때문일까?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홍콩의 리즈 시절을 보는 것만 같아 애잔했다. <첨밀밀>은 90년대 감수성으로 그린 홍콩식 멜로영화다. 그 사이 등소평의 일국양제(一国两制) 선언이 실현됐고,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었으며, 수많은 홍콩 시민들이 몽콕과 애드미럴티에서 후추와 최루탄 스프레이에 우산으로 맞서다가 체포 당했다. 그리고, 아니 그래서 이런 영화는 더 이상 나올 수가 없다. 그러니 쓸 수 밖에. 최후의 홍콩 멜로를 위한 진혼곡을.
1986년, 여소군(여명 분)과 이교(장만옥 분)가 홍콩역에 도착한다. 대륙 출신 그들이 홍콩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이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존법을 악착같이 익혀나간다. 삐삐를 사고, 현금카드 사용법을 배우고, 꽃집 점원, 영어학원 청소부에 맥도널드 점원까지. 주식 투자로 은행잔고도 쌓여간다. 하지만 여소군은 여전히 촌뜨기다. 이교가 대륙 출신인 걸 속이고 자기를 이용하는 걸 알면서도 허허실실이다.
구정 전야, 의기투합하여 등려군 테이프 장사에 나선 그들은 비만 쫄딱 맞고 큰 손해를 본다. 생쥐 꼴이 된 이교가 고백한다. “나, 사실 광주에서 왔어. 대륙 출신이야.” 알고 있었다며 웃어버리는 여소군. 둘은 그날 밤을 함께 한다. 친구인 듯, 연인인 듯 애매한 관계가 지속되는데.
오로지 출세만이 목표인 이교와 고향에 여자친구가 있는 여소군은 조금씩 멀어져 간다. 3년 뒤 여소군의 결혼식에 암흑가 보스의 정부가 된 이교가 찾아온다. 짐짓 괜찮은 척, 하지만 둘의 눈빛이 흔들리고, 얼마 안 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사랑’의 도피를 약속한 날, 공교롭게도 보스가 사고에 휘말려 홍콩을 떠나게 됐다. 이교는 보스를 따라 밀항선에 오른다. 그렇게 또 한 번 여소군을 버린다. 각자의 길을 걸어야만 했던 그들. 1995년, 뉴욕 한복판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전파상의 TV 앞. 발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들여다보던 그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이제는 돌아와 내 앞에 선 그리운 얼굴을.
욕망에 사로잡힌 여자와 바보같이 순수한 남자. 1990년대 서사에 나타난 새로운 설정으로, 한국과 홍콩이 공유한다. 확실히, 그 이전에는 없었다. 1970~80년대 멜로물에서는 주로 부유한 남자와 가난한 여자가 등장했다. 남자가 여자를 버리고, 여자는 두 가지 행동 패턴 중 하나를 취했다.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버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이해하고 또 이해하여 홀로 사생아를 키운다든지, 아님 와신상담 끝에 남자 등에 복수의 칼을 꽂든지.
그런데 <첨밀밀>은 다르다. 성공을 향한 집념으로 불타는 건 여자이고, 한결같은 순정을 바치다가 배반의 아픔을 겪게 되는 건 남자다. 1990년 한국에서 개봉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도 마찬가지였다. 이문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는 서울법대생 임형빈(손창민 분)이 서윤주(강수연 분)와 연애 끝에 동거한다. 그러다 소식을 듣고 고향에서 달려온 형빈 아버지로 인해 헤어진다. 둘은 몇 년 뒤 미국 땅에서 다시 만나는데, 사치와 쾌락에 젖은 윤주의 불륜으로 결국 파국을 맞는다.
한국과 홍콩의 두 영화는 신기하게도 겹쳐진다. 우선 주인공의 이동 경로. 전자는 지방 소도시→서울→미국으로 나아가고, 후자는 광주∙무석→홍콩→뉴욕으로 옮겨간다. 전지구적 질서가 재편되던 때였다. 자본이 특정 도시, 특정 국가로 집중되었다. 두 영화 주인공들은 정확하게 자본의 동선을 따라간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자기 안의 욕망이 충동질하건 아니건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려가는 게 그 시절 보편사였다. 이교와 윤주는 닮았다. 윤주가 가난한 형빈에게 몸서리치며 “넌 엽전이야! 땅개라고!” 이렇게 야멸차게 쏘아 부칠 때, 이교는 무심하게 말한다. “중국남자하고 결혼하면 모든 게 말짱 허사야.” 세상 흐름을 꿰뚫고 신분상승을 위해 분투했던 그녀들은 어리숙한 남자들의 선망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녀들의 여동생 격인 이 시대 ‘된장녀’들만 고생이다. 그녀들은 도리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자본의 논리를 충분히 학습한 요즘 남성들이 ‘수지 안 맞는 일’에 투자할 만큼 무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멜로로 위장한 ‘사회 보고서’가 아닐까? <첨밀밀>은 그만큼 1990년대 홍콩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사실, 위에서 감독 이름을 쓸 때 혼란스러웠다. 감독 陳可辛을 한자 독음으로 읽으면 ‘진가신’, 중국어 표준발음으로는 ‘천커신(Chen Kexin)’이다. (한국에서도 대개 ‘천커신’으로 표기한다.) 그런데 홍콩 감독에게는 대륙 출신과 다르게 또 하나의 이름이 생긴다. 광동어 이름이다. 가령, 챈호산(Chan Hosan). 고민 끝에 표준어를 빼고 한자와 광동어 이름을 병기하기로 했다. 언어의 계열화를 섬세하게 포착해낸 챈호산 감독에 대한 예우이다. 홍콩에선 세 가지 언어를 쓴다. 영어, 광동어, 표준어. 홍콩반환 후 표준어 교육이 강화되었지만, 아직까지도 현지인들끼리는 광동어를 많이 쓴다. 자존감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륙 출신 이교는 홍콩에 오고 나서 언어부터 바꾼다. 표준어에서 광동어로. 그리고 영어까지 섭렵한다. ‘표준어<광동어<영어’ 순으로 교육정도와 경제수준에 따른 사회적 피라미드가 구성되기 때문이다.
한편 <첨밀밀> 곳곳에 홍콩의 이방인들이 배회한다. 태국인 매춘부, 국적불명 알콜중독자, 터번을 쓴 인도남성……. 아시아 최고의 국제 도시답게 온갖 국적의 외국인들이 홍콩을 찾았다. 서양인 엘리트가 금융가를 활보할 때 도시 변두리에는 대륙에서 넘어온 가난한 이민자, 베트남 보트피플, 필리핀 가정부들이 넘쳐났다. 그들에 대한 차별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현지인들은 특히 대륙에서 넘어온 이들을 ‘메뚜기(蝗虫)’라고 비하했다. 더럽고, 교양 없으며, 자신의 일자리까지 축내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던 거다.
그에 대한 반격인가? 이교가 뉴욕에서 가이드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갈 때 대륙 출신 관광객이 일침을 가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됐고 구찌 핸드백이나 사러 갑시다. 듣자니 아가씨 광주사람이라며? 에고, 예전엔 다들 외지로 나갔는데 지금은 또 돌아와요. 홍콩인들도 본토에 와서 일한다우. 나갔던 사람들 모두 후회하지. 아무래도 국내에 돈 벌 기회가 더 많잖아.” 이교의 쓴 웃음. 10년 세월에는 정말 강산도 변한다.
<첨밀밀>이 제작된 게 1996년이었다. 홍콩반환을 한 해 앞둔 때였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제목처럼 달콤하지만은 않다. 상실과 불안의 정서가 자욱이 배어있다. 이상한 일이다. 식민시절을 종료하고 이른바 ‘광복’을 맞이하는데, 마땅히 기뻐할 일 아닌가. 웨인 왕의 <차이니스 박스> 첫 장면은 더 가관이다. 1996년 12월 31일 홍콩 클럽에서 한 청년이 외친다. “내 행동은 1997년 이후 홍콩에서 벌어질 개인적, 문화적 자유의 상실에 대한 저항입니다.” 그리고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긴다. 한국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호되게 매도될 일이다. (세종시 한 워크숍에서 어느 고위 공무원이 “천황폐하 만세”라고 버젓이 삼창했다고 하니,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 홍콩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보도는 1990년대 홍콩영화의 예언을 입증하는 듯하다. 중국 언론에서 주장하듯이 홍콩의 시위대는 정말 ‘정권탈취’와 ‘국가전복’을 꾀했던 걸까? 다시 한국으로 시선을 돌리자. ‘헬조선’, 분명 애국자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발언이지만, 대한민국을 저주하는 신조어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헬(hell)+조선(朝鮮), 20대가 아니면 나오기 힘들었을 발랄한 조합이다. 상식과 양지(良知)가 통하지 않는 한국사회를 향한 젊은 세대의 갈파이다. 한국이든 홍콩이든,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고, 그 가치는 작금의 현실에서 참으로 위태롭게 이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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