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쑨정차이(孙政才)충칭시 서기의 갑작스런 낙마는 과거 상하이방(上海帮)의 거물 천량위 전 상하이 서기와 베이징방(北京帮)의 대표주자였던 천시퉁 전 베이징 서기, 그리고 보시라이 전 충칭 서기의 몰락을 연상시킨다.
천량위(陈良宇)전 상하이 서기는 상하이사회보장기금 비리 혐의로 2006년 9월 해임된 상하이방의 대표 주자이자 장쩌민 전임 주석의 핵심 측근이었다.
당시 천 전 상하이 서기를 비롯한 상하이방의 기세는 정치 기반이 약한 당시 후진타오 주석을 압도했다. 그는 2004년 경기과열 논쟁 때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는 거시적 조정통제정책에 시동을 걸어 과열된 경제의 온도를 내리기 위해 창끝을 특별히 상하이방의 경제 요충지인 창강(长江) 삼각주 경제로 겨누었고, 상하이의 주택시장이 가장 먼저 그 충격을 받았다. 그러자 천량위는 원자바오(温家宝) 총리를 향해 탁자를 내리치며 '중앙은 지방의 실정을 모른다'고 정부의 경제정책을 정면 비판했다. 이후 당 기율위원회가 이례적으로 100여명의 조사 인력을 파견해 사회보장기금 특혜대출 사건을 파헤친 것을 두고 표적 수사라는 평이 뒷따랐다.
원적이 저장(浙江) 닝보(宁波)인 천량위는 장쩌민 주석의 '상하이방'핵심 멤버로 여겨졌다. 군인 출신인 그는 전역 후 오랫동안 상하이에서 일하면서 잇달아 상하이의 여러 국영기업 관원을 맡아 벼슬길이 순풍에 돛을 단 듯했다.
1987년, 장쩌민이 상하이 시장을 맡고 있을 때 상하이 황푸구(黄浦区)의 현직 구장(区长)이던 천량위를 지명하여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했다. 상하이로 돌아온 후 그는 시위원회 부비서장, 시위원회 부서기 겸 상무부시장을 역임했고, 2002년부터는 시장과 시위원회 서기를 맡았으며, 그해 11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 정치국으로 승진하여 중국공산당 25명의 최고정책결정자의 한 사람이 되어 정치 생애에 있어 최고봉에 올랐다. 그러나 후주석과 온총리등 지도부에 대항한 하극상에 더해 239만위안 기금 불법 유용 혐의 등이 인정돼 면직된 뒤 2008년 18년형이 확정됐다.
천량위 상해 서기에 앞서 1995년 장쩌민 주석이 정적 천시퉁(陈希同) 당시 베이징시 당서기를 부패혐의로 제거하고 베이징시 간부 40여명을 함께 쫓아내 베이징방을 뿌리뽑아 온전한 권력을 손에 넣은 것도 권력암투의 한 장면으로 꼽힌다.
천시퉁 전 베이징 당서기는 중국 현대사의 비극인 천안문 사건의 강경진압을 담당했던 인물로 1983년 4월 베이징시장에 임명된 그는 89년 6월 학생 시위대가 정치개혁과 부패척결을 요구하자 당시 최고 실권자인 덩샤오핑과의 친분 관계를 이용해 덩에게 시위대의 위협을 과장 보고하여 사태의 강경진압을 유도했다. 이후 그는 베이징 당서기,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뽑히는 등 승진가도를 밟았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올라온 장저민 주석을 공공연히 무시했던 그는 결국 1998년 부패 및 직무태만 등의 혐의와 55만위안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16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초 자신에게 언도됐던 형기를 3개월 앞둔 13년 6월 2일 사망했다.
또한 최근 쑨정차이 충칭시 서기 낙마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보시라이사건은 '태자당 맏형'이던 보시라이(薄熙来) 당시 충칭시 서기는 중국 8대 혁명 원로인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의 아들로, 시진핑 체제가 탄생한 2012년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회 진입이 유력시됐던 핵심 권력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2012년 그의 측근이었던 왕리쥔(王立军)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미국 영사관을 찾아가 망명을 요구하는 돌발 사건이 벌어지면서 비리 사실이 드러나며 몰락했다. 왕리쥔의 폭로를 통해 지난 2011년 11월 보의 아내 구카이라이가 경제적 문제로 마찰을 빚던 영국인 닐 헤이우드를 독살한 사실이 드러났고 그 과정에서 보시라이가 아내의 범죄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도 확인됐다. 보시라이는 2013년 종신형을 받고 지금까지 친청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해오다 최근 간암 판정으로 가석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권력자들에게는 항상 여자와 섹스가 숨겨져있다가 권력투쟁에 패배한 후 그 진상이 드러난다.
천량위는 여러 명의 정부를 거느렸는데 그 중에는 1995년 상하이 국제 패션모델 대회에서 우승한 「유명 모델」마엔리(马艳丽)와 천량위와 같은 저장 닝보출신으로 94년 상하이시 정부 부비서장과 재정국 부국장을 맡았고, 98년에는 천량위에 의해 일거에 승진되어 재정국장과 세무국장을 겸임하면서 직접 상하이 양대 금고를 통합 관리한 류훙웨이(刘红薇), 그 외에도 여러 차례 그의 아이를 낙태한 시자오호텔(西郊宾馆)의 20대 여성 종업원등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천량위를 실각시킨 상하이시 사회보장기금 유용사건 역시 여자와 섹스가 연루되어있었다. 무명 모델 출신인 루자리(卢嘉丽·당시 26세)는 2001년 한 사교모임에서 푸시(福禧)그룹의 장룽쿤(张荣坤·49) 회장을 알게 됐다. 장 회장은 상하이시 고위 공무원들의 비호하에 4400억원이 넘는 사회보장기금을 제 돈 쓰듯 한 혐의로 구속된 사람이다. 두 사람은 주쥔이(祝均一) 상하이시 노동사회보장국장을 타깃으로 첫 번째 ‘은밀한 사업’을 시작했다.
주 국장이 장만위의 열렬한 팬임을 알고 있었던 장 회장은 회의차 호텔에 투숙한 주 국장의 방에 장만위와 똑 닮은 루씨를 들여보낸 것. 이 ‘성 상납’ 효과로 장 회장은 상하이~항저우(杭州) 간 고속도로 건설권을 따냈고, 청년실업가로 부상했다. 재미를 본 장 회장은 루씨에게 아예 모델회사를 차려주고 고위 공무원들과의 ‘은밀한 만남’을 계속 주선했다.
사회보장기금 비리에 대한 수사망이 좁혀 들어오자, 루씨는 “호텔방에서 일어난 일을 몰래 녹화해 뒀는데, 소환되면 내밀어라. 거물들이 많으니 (사건을) 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며 장 회장에게 비디오 테이프들을 건넸다.
하지만 사태는 이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진행됐다. 비디오를 입수한 중국 수사당국은 이후 주쥔이 국장과 추샤오화(邱晓华) 국가통계국장 등 공무원들을 줄줄이 소환했고 루씨는 해외로 도피했다.
천시퉁 역시 6명의 정부를 두었는데 그중에 베이징TV 앵커였던 류팡(刘芳), 여행사 직원이었다가 천서기와 정을 통한 후 일약 베이징 호텔 지배인으로 된 허핑(何平)등이 알려져 있다.
보시라이의 여성관계는 더욱 복잡하고 으시시하기까지 하다.
보시라이의 알려진 첫번째 내연녀는 다롄방송국 아나운서 장웨이제(张伟杰)다. 1998년 보시라이는 다롄시 시장시절 다롄방송국 아나운서인 장웨이제와 내연관계였으나, 보의 부인인 구카이라이(谷开来)가 장웨이제가 보시라이의 아이를 임신하자 그녀를 죽인 후 시신을 전시용 표본으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중국의 간판 여배우 장쯔이(章子怡) 역시 '성접대' 의혹에서 피해가지 못했다. '보시라이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10차례 이상 장쯔이에게 성 접대를 받았다'는 소문이 보시라이 실각 후 중국 인터넷을 달궜다.
미국내 반중 매체인 보쉰은 당시 "장쯔이가 보시라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출국 금지 상태에서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면서 장쯔이는 지난 2007년부터 알게 된 '보시라이의 스폰서' 쉬밍(徐明) 다롄스더그룹 회장으로부터 하룻밤에 약 600만 위안(약 11억원)을 받고 여러 차례 잠자리를 같이했다. 쉬밍이 장쯔이에게 1,000만위안(약 18억원)을 주고 보시라이를 성접대하도록 해 장쯔이는 보시라이에게 매번 대가를 받고 10차례 이상 성접대를 했다"고 보도하였고 장쯔이의 성상납설이 확산되자 장쯔이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보쉰을 미국 법원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중국 중앙TV(CCTV)아나운서 장펑(姜丰)도 관심을 받았다. 장펑은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보시라이의 연인으로 지목해 유명해졌는데, 프랑스 니스에 위치한 보시라이의 별장 관리인 노릇을 해왔다.
장펑은 본래 보시라이의 후견인인 쉬밍과 내연관계로 쉬밍이 보시라이에게 소개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쉬밍은 보시라이 재판 둘째 날 증인으로 출석해 "구카이라이가 외국인 별장 관리인을 믿지 못한다고 말하기에 장펑에게 별장을 관리해달라고 부탁했다"면서 "별장 관리를 부탁하면서 어떠한 서면 합의서를 작성하지 않았지만 우리 사이에 어느 정도 신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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