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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가 불러온 현대차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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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내부에선 이번 베이징현대차 공장 구조조정은 설영흥 전 현대차 중국사업담당 고문 인사를 늦추다가 발생한 참사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화교인 설 전 고문은 정몽구 회장의 글로벌 영토 확장(해외공장 확대)이 한창이던 지난 2004년 중국 담당 부회장을 지내면서 현대차의 중국 진출을 진두 지휘했다. 그의 업적이 없는 건 아니다. 베이징 공장건설과 베이징 택시 납품권을 따내오면서 현대차의 아반떼가 중국 시장에서 베스트셀러카로 등극하는 일조했다.
2000년대 초반 중국 진출 자동차업체 순위 톱4에 현대차가 등극한 것도 설 전 고문의 업적이라는 데 큰 이견은 없다. 그는 지난 2014년 현대차의 중국 실적이 부진에 빠지면서 고문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중국관련 현대차 경영정책에 설 전 고문의 입김은 그대로 였다는 것이 현대차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설 전 고문이 2014년 이후에도 중국 전략의 최종 관문 키를 쥐고 있는동안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현대차는 중국내에서 ▲신차 투입 실기 ▲가격 정책 실패 등 잇따른 경영전략 부재 양상을 보였다. 이후 2016년 터진 우리나라의 사드배치는 현대차에는 설상가상이었다. 현대차가 설 전 고문을 빨리 교체하지 못한데에는 정몽구 회장과의 오래된 인연도 한 몫 했고, 현대차의 중국 시장 확대정책도 삐걱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화교 출신인 설 전 고문은 서울 명동에서 '국빈'이라는 중국요리점을 경영하며 무역업을 햇던 선친의 가업을 바탕으로 대만 및 중국과 무역업을 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는 정 회장이 경복고 재학 시절 이 식당에 들르면서 시작됐다. 1999년 현대차의 중국담당 고문으로 현대차에 합류한 설 전 고문은 이후 중국 사업에서 빼어난 성과를 올렸다. 베이징을 오가면 중국 공장 인허가를 지휘했고, 2000년에는 국내 업계 최초로 중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허가증을 얻었다. 2001년 베이징에 공장을 짓기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아반떼를 생산, 중국 진출 자동차 업체 중 최단 기간내 공장을 완공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설 전 고문은 정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읽는 측근으로 꼽힌다. 하지만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중국사업에서 물러났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실시한 인사에서 중국사업을 총괄했던 설 전 고문을 대신해 이병호 중국사업본부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품질경영과 생산량 확대', 현대차가 2000년대 초반 '글로벌 톱5' 진입을 목표로 내세운 경영전략이다.
이런 경영전략은 생산량 500만대를 돌파했던 시점까지 통했다. 그러나 생산량 700만대를 목표로했던 지난 2013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현대차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시장에서 280만대에 이르는 리콜을 실시한다. 국내에선 대표 모델이 싼타페와 아반떼에서 누수 현상이 발생 품질경영 철학에 의심의 눈초리가 높아지도 했다.
5년여가 지난 2019년. 현대차는 국내외 총 판매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베이징공장 가동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이 공장은 설립 직후 중국 당국의 후광을 업고 베이징 시내에 운행되던 택시 점유율을 50%대까지 끌어올리며 승승장구했었다. 이에 현대차는 베이징공장의 연간 생산량을 165만대 규모로 확대한다. 중국 정부의 지원, 중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 중국 내수시장의 변화 등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있었는지 국내외 자동차 전문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이다.
더불어 지난 2016년 한국의 사드배치와 중국 정부의 환경규제가 본격화 되면서 현대차 베이징 공장의 입지는 예전에 비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품질경영의 본질을 품질혁신보다 생산량에 맞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지금도 국내외 연간 생산량 800만대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미국과 함께 글로벌 판매량의 23%를 차지하던 중국시장에의 몰락 역시 현대차그룹을 위기로 내몰았다. 현대차는 2002년 5월 중국의 자동차업체인 베이징 기차와 합자해 '베이징현대'를 설립했다. 이후 5년2개월 만에 누계 100만 대 돌파 기록을 세웠다. 중국 내 자동차 회사 중 최단 기간에 이룬 성과로 '속도의 현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독일·일본 브랜드와 비슷한 품질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중국 소비자에게 통했다.
하지만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갖추고 무섭게 성장한 중국 토종 업체에 추격을 허용했다. 2015년 현대차는 중국 창안자동차에 밀리며 한자리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현대차와 비교해 동급 차량에서 2배 가까이 차이나는 가격과 중국 시장의 트렌드 변화를 읽지 못한 게 컸다.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서 세단을 주력 제품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험난한 지형이 많은 데다 여가활동을 즐기는 중국인이 늘어나면서 중국 시장에서도 SUV가 대세가 됐다. 현재 160종이 넘는 모델이 있을 만큼 SUV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주를 이루고 있다.


현대차가 베이징 1공장 가동중단을 결정한 데 이어 기아차 역시 장쑤성 옌청(盐城)의 1공장을 정리하는 등 구조조정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상하이에서 차로 4시간 떨어진 옌청의 기아차 1공장은 기아차가 현대차그룹에 편입되기 전인 1997년 김선홍 회장 시절, 국내 완성차 업체 중 처음으로 중국에 진출해 자리 잡은 곳이다. 중국 시장에 선보인 첫 한국 차인 ‘프라이드’를 현지 생산한 데 이어, 현대차에 인수된 직후에는 ‘천리마’를 앞세워 중국 소형차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린 공장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로서는 현대차 베이징 1공장 못지않게 의미가 큰 곳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중국 시장에서의 퇴조는 2018년 브랜드별 자동차 판매순위로 고스란히 증명된다. 한때 중국 시장에서 폭스바겐, GM과 함께 ‘빅3’를 형성했던 현대차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78만대를 팔아 브랜드별 판매순위 8위에 오르는 데 그쳤다. 현대차그룹 계열인 기아차의 지난해 판매량 36만대를 합쳐도 114만대 정도에 불과하다. 현대차와 기아차 양사의 판매량(114만대)을 모두 합쳐도 중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폭스바겐(309만대), 혼다(144만대), 도요타(129만대), 닛산(117만대)에 모두 밀린다.

뷰익(106만대), 바오쥔(87만대), 쉐보레(67만대), 우링(47만대), 캐딜락(22만대) 등 다(多)브랜드 전략을 구사하는 GM의 전체 판매량에 비해서도 현저히 처진다. 특히 중국의 토종 민영자동차 회사인 지리(138만대)에조차 밀린 점은 적지 않은 충격이다. 지리(吉利)는 중국 내 브랜드별 자동차 판매순위에서 폭스바겐, 혼다에 이어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명실상부하게 중국 토종차 가운데 가장 위협적인 존재임을 입증한 셈이다.

현대기아차가 최근 중국 시장에서 부진한 까닭은 사드 사태와 같은 외부요인도 있지만 지리와 같은 중국 토종차의 약진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지리차가 지난해 138만대를 팔아 브랜드별 판매순위 3위에 오른 데 이어 창청(长城)차의 SUV 전문브랜드 하발은 76만대를 팔아 현대차에 이어 중국 시장 9위에 올랐다.

이 밖에 충칭에 본사를 둔 창안(长安)차는 66만대를 팔아 11위, 광저우차의 촨치는 53만대로 13위, 상하이차의 로위는 46만대로 16위를 기록했다. 민영자동차 회사인 비야디(BYD)는 44만대로 18위, 치루이는 42만대로 19위에 올랐다. 지리를 제외한 중국 토종차의 경우 현대차(78만대)보다는 판매량이 떨어지지만, 38만대를 판매해 20위에 그친 포드나 36만대를 팔아 21위에 머문 기아를 모두 앞선다. 결국 중국 자동차 소비자들은 포드나 기아를 선택할 바에는 중국 토종차를 구매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나마 판매순위 10위권에 들어가는 현대차와 달리 기아차는 20위권에도 못 들어간다. 현대차그룹의 중국 내 전체 판매순위를 끌어내리는 데 단단히 일조하고 있다. 2016년 한때 65만대를 판매하며 10위권에 들었던 기아차의 처참한 성적표다.
사실 북방인 베이징에 중국 현지 본사와 생산라인을 두고 있는 현대차는 상하이를 필두로 한 남방시장 공략에 엄연한 한계가 있다. 남방시장은 상하이와 가까운 옌청에 본사와 생산라인을 둔 기아차가 뚫어줘야 한다. 북방은 현대차, 남방은 기아차로 각각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 구조다. 중국 시장 1위 폭스바겐의 경우 북방인 지린성 창춘에 본사를 둔 합작사 ‘이치폭스바겐一汽大众’과 남방인 상하이에 본사를 둔 합작사 ‘상하이폭스바겐上海大众’으로 남북을 나눠 효과적으로 공략 중이다.

하지만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남방 자동차 시장은 기아차로서는 버거운 경쟁자가 즐비하다. 합자회사 기준 중국 자동차 시장 1위인 ‘상하이폭스바겐’을 비롯, 2위 ‘상하이GM’이 모두 상하이에 본사와 생산라인을 두고 있다. 최근 테슬라까지 상하이 현지 공장건설에 나섰다. 중국 토종차 가운데 가장 강력한 지리차 역시 상하이에서 멀지 않은 항저우에 본사, 닝보에 생산라인을 두고 있다. 결국 기아차는 상하이 같은 1선 도시에서는 폭스바겐과 GM에, 옌청 같은 3~4선 도시에서는 지리에 밀리는 신세다.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하는 것이 아닌 도시와 농촌에서 협공당하는 샌드위치 신세다.

기아차는 옌청 같은 3~4선 도시에 본사와 생산라인을 두고 있어서 ‘이류차’ 이미지를 못 벗어나고 있다. 또 중국 4대 국영자동차 기업인 둥펑(东风)차와 옌청시 지방공기업인 위에다(悦达)그룹과 3자 합자관계를 맺고 있어 자동차 후면부에 ‘东风悦达起亚(둥펑위에다기아)’라는 긴 이름을 늘 붙이고 다닌다. 지명도도 떨어지고 부르기 힘든 긴 이름 탓에 현지에서도 종종 영어약칭인 ‘DYK’로 줄여 부를 정도다. 중국에서 이렇게 긴 이름을 가진 자동차 합작사는 상하이차와 GM, 우링차의 합작사인 ‘上汽通用五菱상치통용우링’정도밖에 없다.

또한 지난 수년간의 판매부진으로 ‘4S점’으로 불리는 중국 현지 딜러망도 와해됐고 합작사인 둥펑차도 판매량이 훨씬 많은 ‘둥펑닛산’이나 ‘둥펑혼다’에 비해 신경을 덜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가 벽지에 있는 관계로 기아차는 본사(옌청)와 판매본부(대도시) 이원화 전략을 써왔는데, 지난해 말 난징에 있던 판매본부를 상하이로 옮겼다. 2008년 상하이에 있던 판매본부를 난징으로 옮겼는데 이를 10년 만에 원상 복귀시킨 것이다. 판매본부를 계속 옮겨다니는 데는 ‘옌청’이란 말 못 할 고민이 숨어 있다. 중국 시장 20위권 밖으로 밀려난 기아차에 더 이상 좌고우면할 여유는 없어 보인다.

연 800만 대 생산이라는 성공에 취한 탓인지 현대차는 곳곳에서 나타난 위기의 징후를 냉철하게 바라보지 못했다. 2014년 당시 전 세계 경제는 부진한 산업수요 회복과 엔저를 비롯한 극심한 환율 변화, 내수경기 침체 등 악재가 산적했다. 특히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했다. 2013년 말 1달러 당 105.04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정몽구 회장이 수출확대전략회의를 열었던 2014년11월23일 기준 12.62% 상승한 118.30엔까지 뛰었다. 일본의 완성차 브랜드로서는 미국 시장에서 높은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 셈이다.
반대로 현대차그룹은 미국시장에서 나타난 이상 징후를 간과했다. 투싼, 싼타페, 카니발 등 SUV 등을 제외한 차종의 판매 증가율이 꺾였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중국과 브라질, 인도 등 신흥국 시장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세단 중심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미국에선 신형 제네시스를, 유럽에선 i2을, 국내에선 아슬란을 출시했다. 그로부터 5년,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에 따른 반사이익 효과를 자체 경쟁력 강화로 오인한 측면이 크다.

'생산력이 곧 기술력'이라는 패착은 품질 이슈로 이어졌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2017년 5월부터 세타2 엔진 차량 리콜과 관련해 적정성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 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브레이크 진공호스 제작 결함과 안전벨트 결함, 디젤모델 배출가스 기준 초과 등으로 대대적인 리콜을 단행했다. 글로벌 1위 도약을 외치며 급속도로 세를 불렸던 도요타가 결국 품질관리에서 허점을 드러내며 결국 대량 리콜 사태로 존폐의 위기에 몰렸던 것과 오버랩 되는 행보다.
가격 면에서도 현대차는 경쟁력을 잃었다. 단적으로 현대차가 중국 진출 후 처음으로 세운 베이징 1공장의 생산중단이다. 7일 현대차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으로 공장 가동률이 40%대로 떨어져 공장 생산중단 등 다양한 방안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요구하는 합자 법인 '베이징 기차'와 갈등을 빚었다.
베이징 기차는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국내 협력업체 142곳에 비용절감 차원에서 납품 단가를 20% 이상 인하할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현대차의 원가구조는 일본 브랜드와 비교해 크게 뒤처진다. 단일 차종 기준으로 도요타와 닛산이 10만 대만 팔아도 이익이 나는 구조로 '다이어트'를 한 반면 현대·기아차는 최소 30만 대 이상 팔아야 이익이 남는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룬 현대차는 지금까지 자동차 원료인 강판부터 부품, 운송과 할부 등 금융까지 모두 수직계열화에 성공하며 빠른 의사결정과 추진력으로 이익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잔치'가 끝난 지금, 현대차그룹은 모기업인 현대·기아차가 흔들리면 매출의 70~80%를 의존하는 부품 계열사가 직격탄을 맞는 수직계열화의 구조적 취약함에 시름하고 있다.
여기에 완전자율주행, 친환경차 등 미래자동차 시장을 대비하며 완성차 브랜드는 물론 IT기업 등에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인 업종을 넘나드는 '합종연횡'에서도 현대차는 수직계열화라는 족쇄에 선도적이면서도 탄력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크게 부각되고 있지만, 그마저도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지먼트의 반대로 한 차례 무산되는 등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