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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선거판도 뒤흔드는 홍콩시위


지난 1일 홍콩 시민들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 완전 철회 시위 대열에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가 휘날렸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 '대만국(台湾国)' 회원 등 일부 대만인이 깃발을 들고 동참한 것이다. 홍콩에서 200만 시위가 있었던 지난달 16일 이후 대만 곳곳에서 지지 시위가 열렸다. 대만 TV들은 홍콩과 대만의 시위 현장을 생중계했다.

홍콩을 뒤흔들고 있는 시위 사태를 보는 대만인들의 심정은 한마디로 '동병상련'이다. '일국양제(一国两制·한 국가 두 체제)'를 앞세운 중국의 통일 압력에 직면한 그들로선 '홍콩의 오늘'이 '대만의 내일'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처지다. 그 불안감이 대만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일국양제의 선행 모델인 홍콩에서 수백만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항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양안(两岸·중국과 대만) 통일 지지 여론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홍콩 200만 시위 직후인 지난달 17~18일 대만민의기금회가 만 20세 이상 유권자 1092명을 대상으로 대만 독립 문제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만 독립 49.7%, 현상 유지 25.4%, 양안 통일 13.6%, 무응답 11.3% 순으로 나타났다. 양안 통일 지지율 13.6%는 1991년 이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였다.

'홍색매체(红色媒体)' 퇴출운동도 등장했다. 홍색매체는 '중국 공산당에 친화적인 매체'란 뜻이다. 그 불똥이 튄 것은 대만 4대 일간지 중 하나인 중국시보(中国时报)다. 홍콩 지지 시위 현장에선 "4대 일간지 중 3곳이 홍콩 200만 시위를 1면에 보도했지만 중국시보만은 예외였다"며 이 신문을 홍색매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중국시보는 쌀과자로 유명한 대만 왕왕(旺旺)그룹 계열사로, 2008년 왕왕그룹이 인수한 이래 친중 색채가 짙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시보의 라이벌인 빈과일보(苹果日报)는 이 틈을 타 "중국에 공장이 있는 왕왕그룹이 중국 정부로부터 11년간 보조금 형태로 최소 167억 대만달러(6287억원)를 지원받았다"고 공격했다.

민심의 변화는 내년 1월로 다가온 대선 판도도 흔들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의 참패로 재선에 빨간불이 커졌던 대만 독립 성향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기사회생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대선 지지율 1위로 단번에 치고 올라온 것이다.


홍콩 시위가 본격화한 이후 차이 총통은 그전까지 지지율 선두였던 친중 성향 국민당 한궈위(韩国瑜) 가오슝 시장을 가볍게 제쳤다. 지난달 24일 대만 TVBS 방송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은 한 시장과 양자 가상 대결에서 50% 대 36%로 여유 있게 앞섰다. 지난 5월 8일 같은 조사에서는 차이 총통이 38%, 한 시장이 50%였다. 차이 총통은 12%포인트 급등했고, 한 시장은 14%포인트 급락했다.


또 지난달 13일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은 한 시장, 무소속 커원저(柯文哲) 타이베이 시장과의 가상 3자 대결에서도 처음으로 1위(35.7%)에 올랐다. 홍콩 시위 효과가 본격화되기 전 한궈위에게 9.4%포인트 차이로 뒤지던 것을 뒤집은 것이다.

차이잉원 총통은 홍콩 시위가 100만 규모로 커진 지난달 9일 페이스북에 "일국양제 아래서 22년 만에 홍콩인의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됐다"고 적었다. 같은 날 한궈위 시장은 "나는 모른다, 모른다고"라며 언급을 회피했다. 차이 총통은 이후에도 "홍콩의 일국양제는 실패했다" "대만은 일국양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 등의 고강도 발언으로 '중국이 대만에 요구하는 일국양제 통일의 실체를 봤다'고 느끼던 민심을 파고들었다.


반면 중국과의 경제 협력 확대를 주장하며 여론조사 1위를 질주해 온 한궈위 시장은 날벼락을 맞은 처지다. 홍콩 시위 여파가 커지면서 그는 언론의 비판 타깃이 됐다. 지난 3월 홍콩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비밀 회담한 사실이 재조명되며 '사상 검증이 필요하다'는 보도가 쏟아진 것이다.

한 시장은 결국 친중 간판을 슬그머니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홍콩 200만 시위 하루 전인 지난달 15일 "내 주검을 밟고 넘어가지 않는 한 대만 땅에 일국양제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유세 현장에선 '일국양제 거부, 자유 사랑'을 외쳤다. 홍콩 시위의 위력을 두고 현지 언론에서는 "그 파장이 1989년 톈안먼 사태보다 강력하다"는 분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