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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가구들의 칫수에 들어가 있는 또 다른 의미

명나라 때에 쓰였다는 ‘노반(鲁班经)’이라는 책이 있다.
​* 노반(鲁班/기원전 507~444년)은 춘추시대 노(鲁)나라 사람이다. 공수반(公輸班)이라고도 부르며, 수많은 공구들과 기계, 무기 등을 발명하여 중국 건축의 비조(鼻祖), 중국 목장(木匠)의 비조로 추앙받고 있다.

이 책은 건축에서 목공에 이르는 민간의 각 분야 장인(匠人)들의 업무용 지침서라고 하는데, 이 책의 가구 제작 관련 부분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등자(凳子, 등받이 없는 의자)는 3을 떠나면 안 되고, 문은 5를, 침상은 7을, 관은 8, 탁자는 9를 떠나서는 안 된다.”
옛날 목공 장인(목수)들도 제자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면서 항상 이러한 말을 했다고하는데, 물건들의 구체적인 치수(尺寸)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며 같은 음의 글자로 대체하여(谐音), 말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복받으라는 의미를 내포했다.

​이러한 수치는 매우 전문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가구를 만들 때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목공 장인들의 지혜가 응집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등불리삼(凳不離三, 등자를 만들 때는 반드시 “삼(三)”이 들어가야 한다.)
등받이가 있는 것은 “의자”이고, 없는 것은 “등자(凳子)”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구분이 없다. “등자”를 만들 때에는 그 치수 끝에 반드시 “3치(寸)”라는 길이가 붙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두 자(尺) 세 치(寸), 또는 넉 자(尺) 세 치(寸)처럼 반드시 끝에 세 치(寸)가 붙어야 한다.


● 문불리오(門不離五, 문을 만들 때는 치수에 반드시 “다섯 오(五)”가 들어가야 한다.


오복림문/五福臨門
시골에서는 문을 만들 때, 그 문이 크건 작건 상관없이 치수 끝에는 모두 “다섯 치(寸)”가 되어야 한다. “五”는 “오복(五福)”을 상징하고, “오복이 문(門)으로 들어오기를 바란다(오복림문/五福臨門)”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 상불리칠(床不離七, 침상(寢牀)을 만들 때는 반드시 “일곱 치(寸)”가 들어가야 한다.
“상(床)”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밥상, 책상 등으로 쓰이지만, 중국에서는 잠을 자는 침상을 뜻한다. 침상을 만들 때는, 크기의 끝에 반드시 “칠(七)”을 붙여야 한다. 길이에서뿐만 아니고, 침상의 기둥도 일곱 개여야 하고, 침상 머리 부분의 등받이도 일곱 개여야 한다.

​침상에 “칠(七)”자가 들어간 이유는, “상불리처(床不離妻/침상에는 아내가 있어야 한다)”라는 말 때문이다. 중국어에서 “七qī(치)”과 “妻qī(치)”는 발음이 같아서 “七”은 곧 “아내”라는 뜻을 함축하고, “상불리처(床不離妻)”는 부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말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 “상불리반(床不離半)”이라는 말도 있다. 옛날 민간에서 2인용 침상의 크기로 가장 흔한 것이 “네 척(尺) 두 치(寸) 반(半)”이었는데, 그 이유는 “반(半bàn)”과 “반(伴bàn)”이 발음이 같고, “반(伴)”은 “짝꿍, 파트너, 배우자, 반려”를 뜻하기 때문이다.



● 관불리팔(棺不離八, 관을 짤 때는 반드시 여덟 자(尺)이어야 한다. 돌아가신 분의 키가 크건 작건, 관(棺)의 치수는 반드시 여덟 자(尺)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덟 팔(八bā́)”과 “발(发fā)”의 발음이 유사하고, “관(棺guān)”과 “벼슬 관(官guān)”의 발음이 같아서 “관직이 오르고” “부자가 된다(發財)”는 뜻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손들은 여덟 자(尺) 짜리 관을 만들면서 조상님의 보살핌으로 자신들이 “관직에서 승진도 하고” “재산도 확 불어나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 탁불리구(桌不離九, 탁자에는 반드시 “아홉 구(九)”가 있어야 한다.
팔선탁을 중심으로 등받이가 없는 2인용 등자(凳子)가 4개 놓여 있다.

식사할 때 사용하는 탁자는 보통 탁자이건 고급스러운 팔선(八仙) 탁자이건 실제 치수에는 모두 “아홉 구(九jiǔ)”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홉 구(九)”는 “술 주(酒jiǔ)”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민간에 “식탁에 술(져우/酒/九)이 없으며 손님을 잡아 둘 수 없고, 마음과 말이 하나가 아니면 사람 되기 어렵다”라는 속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