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처음으로 대규모 빈곤 퇴치 정책을 내놓은 것은 86년이다. 이때 첫 빈곤 퇴치 기구를 설립했고 빈곤의 기준을 마련했으며 국가급 빈곤현(縣)을 확정했다. 어떤 상태가 빈곤인지와 관련해선 과거 절대빈곤 기준과 저수입 기준이란 2개의 기준이 있었으나 2008년에 이를 하나로 통일해 연 수입 1067위안 이하를 국가 빈곤 기준으로 삼았다. 경제가 나아지며 빈곤 기준도 해마다 상향 조정돼 2009년엔 1196위안, 2010년엔 1274위안이 됐고 2011년에는 현재의 2300위안(약 42만원)으로 올랐다.
국가급 빈곤현 숫자는 86년 273개에서 빈곤 기준이 상향 조정된 결과 88년 328개, 94년에는 592개로 늘어났다. 2001년 연해 발달지구는 모두 빈곤의 딱지를 뗐지만 중서부 지구의 빈곤현이 증가하며 국가급 빈곤현은 592개의 숫자를 그대로 유지했다. 빈곤 인구는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 동안 6억 명 이상이 줄어 2013년 말 8247만 명을 기록했는데 2014년 한 해에만 1200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나 현재는 7000만 명을 헤아린다.
시진핑은 이 7000만 빈곤 인구를 내년에 시작해 2020년에 끝나게 되는 제13차 5개년 계획 기간 동안 모두 없애겠다는 야심이다. 매달 100만 명씩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중국 빈곤 퇴치의 날인 지난달 17일에 즈음해 시진핑은 “빈곤 추방에서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며 왕양(汪洋) 부총리를 조장으로 하는 국무원 빈곤 퇴치 영도소조를 확대 개편했다. 부조장 6명을 교체하고 새로운 멤버 9명을 확충해 빈곤 퇴치 소조 구성을 37개 부서로 확대했다. 중국 정부부처는 거의 모두 망라된 셈으로 시진핑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시진핑의 빈곤 퇴치 전략은 ‘6개의 정확하게’로 설명된다. 도와야 할 가난한 이를 정확하게 확정하고 빈곤 퇴치 프로그램을 정확하게 설계하며 자금 지원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또 구빈(救貧) 조치가 정확하게 대상자에게 실시되고 빈곤촌(村)마다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정확하게 파견해 구빈 효과가 정확하게 이뤄지도록 하라는 것이다.
우선 구빈 대상을 정확하게 확정하라는 시진핑의 말은 너도나도 빈곤현으로 지정받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내려는 중국의 슬픈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중국에선 국가급 빈곤현으로 선정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열렬히 축하한다는 플래카드가 곧잘 등장한다. 중앙정부로부터 엄청난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은 물론 산업과 교육 등 각종 방면의 지원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국 언론에 따르면 광시(廣西) 좡(壯)족 자치구의 마산(馬山)현은 3119명의 주민을 빈곤 인구라고 허위 보고해 국가급 빈곤현으로 지정받은 뒤 수천만 위안(수십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타냈다. 한데 빈곤 인구로 알려진 사람 중 2454명이 2645대의 차량을 구입했고 439명은 자신의 사업체를 가진 사람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시진핑의 빈곤 퇴치 장애물은 크게 두 가지다. 현재의 빈곤 인구가 노동력을 상실한 사람이거나 고산지대 등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시진핑은 노동력 상실자는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끌어안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빈곤 군중은 아예 거주지 자체를 산업 잠재력이 있는 곳으로 바꾸는 방법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가난을 돕기 전에 가난 극복의 의지부터 다지게 하라(扶貧先扶志)’며 정신적인 빈곤 퇴치를 주문하고 있다. 특히 교육을 강조해 빈곤의 대물림을 끊게 하겠다는 전략도 구사 중이다. 중국의 모든 인구가 한꺼번에 가난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수천 년 중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시진핑이 과연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政'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권 교체는 시민의 권리 (0) | 2016.01.15 |
---|---|
胡耀邦은 되고 赵紫阳은 안되는 이유 (0) | 2015.12.04 |
시진핑과 마잉주의 연설문 (0) | 2015.11.10 |
대만은 중화민국이 맞는가? (0) | 2015.11.06 |
중국을 움직이는 8인의 브레인 (0) | 2015.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