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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집정을 이룬 대만 민진당과 차이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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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일 대만 총통선거에서 56.1234%의 득표율 총 689만 4744표로 당선된 차이잉원의 승리는 중화권 최초의 여성이자 소수민족 출신의 선거승리였다. 또한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입법의원 선거에서도 민진당은 총 113석 가운데 과반을 훨씬 넘는 68석(종전 40석 득표율 45.08%)을 차지해 완전집정(完全执政)을 이루게 됐다. ​


차이잉원는 보수적인 중화권에서 여성·미혼·소수민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대만 사상 첫 여성 총통 시대를 열었다. 수도 타이베이에서 출생했지만 주로 산악 지대에서 거주하는 대만 원주민 파이완족(排湾)혈통으로 복건성 출신의 객가(客家)인 후예다. 친가는 이들 부족이 모여살던 대만 남부 핑둥(屛東)현에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 차이제생(蔡洁生)는 자동차 정비업체로 시작해 부동산, 건설, 호텔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 부호이며, 처첩을 5명이나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자 차이잉원은 11명의 형제자매 중 막내딸로 첩실이었던 장진펑(張金鳳)의 소생이다.첩의 자녀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넉넉한 재정적 지원을 받아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대만 최고 명문인 대만국립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 법학석사, 영국 런던정경대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차이잉원은 유학 시절 약혼했던 남자친구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귀국 후 정치를 시작하면서 결혼할 기회를 놓쳤다고 밝힌 바 있다.

대만 국립정치대 법대 교수를 지내다가 민진당 천수이볜 정권 시절 양안 관계를 담당하는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을 맡으며 정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4년 입법원 선거에서 민진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당선됐고, 2006년 행정원 부원장에 올랐다.

화려한 경력과 엄청난 부를 겸비했지만, 화장기 없는 단발머리로 소탈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 차이잉원은 미혼임에도 이성과의 스캔들도 없어 오히려 동성애자라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2008년 대만 대선에서 천수이볜 총통이 낙마하면서 민진당은 정권을 빼앗겼지만, 차이잉원에게는 정치 인생의 최대 전환점이 됐다. 당시 모두가 꺼리던 주석직을 수락한 차이잉원은 수년간 이어온 당내 파벌 싸움을 잠재우고, 집권 국민당에 맞서 연거푸 승리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떠올랐다.

2012년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 후보로 출마했으나 6%포인트 차이로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에게 석패한 차이잉원은 잠시 당 지도부에서 물러났다가 2014년 93%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주석으로 복귀했다.

이번 선거는 유권자 1878만명이 참여해 전국 1만5000여 곳 투표소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투표했다.

4년 전보다 69만명 가량 늘어난 유권자의 남녀 비율은 1대1.02이며 연령 분포는 20~40세 37.82%, 40~60세 38.41%, 60세 이상 23.77%다. 129만명이 처음 투표권을 행사했다.

차이잉원이 총통에 당선함에 따라 대만 독립 지향의 민진당의 정체성을 의심해온 중국의 경계심이 한층 커질 전망이다.

유세 기간 차이잉원은 중국을 도발하지 않겠다고 언명하지만, 앞으로 계속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진 않을 땐 중국은 먼저 대만에 경제적 비용을 부담시킬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럼에도 차이잉원이 대만독립 성향을 고수하면 중국이 대만의 외교적 고립화와 군사적 위협도 불사하게 되면서 양안관계가 급속도로 경색, 천수이볜 정권 시절로 회귀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