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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을 얻은 자 천하를 얻다

요즘 하루 평균 1만개 이상의 창업 기업을 만들어낸다는 중국 스타트 업 업계의 롤 모델은 단연 알리바바의 마윈이나 샤오미의 레이쥔이다. 중국에서 개인이 회사를 창업해서 전자상거래나 스마트 폰 등 최첨단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는 대박을 냈다는 점 때문이다.

요즘 화제는 레이쥔의 창업 타이밍 메시지다. “돼지도 태풍의 길목에 서 있으면 날 수 있다”는 이른바 ‘페이주(飞猪)’이론인데 시장이 큰 중국에서는 통할 법도 하다. 한마디로 창업 아이템만 잘 잡으면 언제든지 마윈 이나 레이쥔 처럼 성공 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마윈은 “태풍에 실려 하늘을 나는 돼지는 바람이 그치면 바로 추락한다”며 바람을 타는 창업을 경계한다. 마윈은 10년 전부터 백년기업 알리바바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전자상거래를 대체할 사물인터넷이나 무인차 개발에 투자를 집중하는 이유다.

사실 레이쥔도 대박 욕심보다는 백년기업에 관심이 많다. 롄샹그룹 협력사 CEO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도 샤오미의 창업 정신은 백년기업이라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레이쥔이 창업 정신으로 소개한 ‘통런탕(同仁堂)’은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전통 장수기업이다. 비결은 한마디로 중국 기업답지 않게 가짜를 멀리하는데 있다. 가짜도 없을뿐더러 약 값도 싸다. 귀천을 가려가며 손님을 대하지도 않고 정확한 저울을 사용한다. 중국식 장사 기준으로 보면 파격중의 파격인 셈이다.

결국 동런탕은 소비자의 인심을 얻는데 성공한다. 구전을 통해서다. 가짜도 없고 가격도 저렴하고 환자인 소비자를 왕처럼 대해주니 중국인들에게 신앙심과도 같은 믿음을 주었던 것이다.

통런탕을 소개해준 사람은 롄샹의 창업자인 류촨즈(柳传志)회장이다.그는 평소 잘아는 레이쥔에게 상록수처럼 푸른 기업을 만드는 지혜라는 제목의 ‘지예창칭(基业长青)’이라는 책을 선물한다. 레이쥔은 이후 과연 중국에서 백년기업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통런탕은 사훈부터 걸작이다. “상품을 만들 때는 가장 좋은 재료를 쓰고 ,만드는 과정이 번잡해도 속이거나 노력을 줄여서는 안 된다(品味虽贵必不敢减物力,炮制虽繁必不敢省人工)”는 것이다. 독이 든 쌀을 먹고 스모그에 고생하고 멜라민파동을 겪는 중국에서 가짜를 멀리하라는 말은 공자님 말씀과 다르지 않다.

통런탕 창업자는 아예 당신이 하는 일은 아무도 못 봤어도 하늘과 양심은 알고 있다 (修合无人见,存心有天知)라는 지침까지 덧붙여 놨다. 변칙을 찾는 중국인의 마음을 잘 아는 창업주가 사훈을 실천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 놓은 단서 조항이다.

레이쥔의 심금을 울린 것도 이 대목이다. 중국은 개혁 개방으로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됐지만 중국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가짜왕국이란 오명을 썼는지에 대한 답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너무 똑똑해서 가짜를 잘 만든다고는 농담해 왔지만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할 과제였다.

너무 지름길을 찿는 변통심리가 강한데다 재료를 보면 우선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우려한다는 심성을 고치는 일은 국가 개조보다 힘들어 보였다. 중국에 천 년 이상 이어져 내려온 게 뭐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불교 유교 등 종교나 신앙이 떠올랐다. 영원무궁한 사업을 하려면 이념이 있어야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좋은 이념이 구전되면서 신앙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이쥔은 바로 창업 전략을 수정했다. 일단 재료를 전 세계 최고로 하기로 했다.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제일 비싼 걸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제일 좋은 게 가장 비싼 것은 아니지만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다른 경쟁업체보다 비용이 올라가는 상황이다. 막 창업하려는 입장에서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고급 프로세서와 샤프의 액정과 후스캉(富士康)의 조립설비를 이용하기로 결론을 냈다.

문제는 계속됐다. 백년기업을 창업목표로 정하고 가장 품질 좋은 물건을 만들려고 했지만 신생기업이라고 거래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컴퓨터 부품업체를 이용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추가 설비 투자를 꺼렸다. 샤오미의 장래를 의심하며 고가의 설비 투자를 꺼리는 거래업체를 설득하는 게 급선무였다. 1위 기업부터 4위 기업까지 협의를 진행했는데 설득에 실패했다. 아무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5위 업체인 잉화다(英华达)를 설득시켰다. 지금의 잉예다(英业达)그룹의 자회사다. 난징(南京)에 가서 회사 총경리를 3차례나 만났더니 내 생각을 이해하고 도박을 건 것이다. 잉와다와 후스캉이 샤오미 거래 업체가 된 사연은 간단하지 않았다.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려 해도 중국에서는 쉽지 않다는 말을 증명하듯 공급 업체를 찾는 데에 9개월을 허비했다.

가격도 발목을 잡았다. 창업 당시 첫 스마트폰 제품 비용은 2000위안(약 37만원)이었다. 당시 중국 산 핸드폰 가격은 500위안 정도여서 2000위안 짜리 스마트 폰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 조차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책정한 가격이 1499위안이다. 한 대 팔면 회사는 500위안 손해였다.

제품을 팔기 1주일 전쯤 밤을 꼬박 세우며 고민했다. 다음날 저녁 몇몇 동료들과 상의해서 내놓은 가격이 1999위안이다. 좋은 물건은 1999위안 가치가 있는 것이란 증명을 하는데 일주일 걸렸다. 일주일 후 발표한 스마트 폰은 날개달린 듯 팔리며 대 성공을 거뒀다.

중국 소비자들이 싼 것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좋은 물건을 찾는 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원칙은 과잉생산 시대인 요즘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제대로 잘 만들면 아무도 홀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중명하기 위해 샤오미는 1년 반 동안 비밀로 움직였다.

흔한 마케팅 부서도 없었고 공문 한 장 발송한 적도 없다. 심지에 샤오미를 레이쥔이 운영 하고 있다는 사실도 비밀리에 진행했다.

창업하기 전에 모바일 용 소프트웨어를 입수해서 이걸 기본으로 미유아이(MIUI)라는 운영체계를 만들었고 2010년 4월 6일 드디어 회사를 창업했다.

8월 16일 발표한 미유아이 첫 버전 사용자는 100명이었지만 2주 후에는 200명 3주후에는 400명으로 매주 배로 늘었다. 결국 그해 10월에 전 세계 개발자 포럼인 XDA 추천을 받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싸고 좋은 상품으로 선정된 것이다.

바로 좋은 상품 만들면 입소문으로 전해지는 원리를 체험했다. 구전은 마치 신앙과 같았다.

599위안에 팔리는 중국산 홍미(红米)4G를 비롯해 매년 두 개씩 모델을 만들었는데 25년 간 엔지니어를 했던 경험이 도움을 줬다. 이전에 경험이 없으면 스마트 폰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팔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민심 얻기 마케팅은 무수하게 펼쳐진다. 마윈은 아마존 베조스와 중국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당시 공짜마케팅을 사용했다. 아마존이 전자상거래 업체에 대해 수수료를 받자 마윈은 무료로 대응한다. 소비자 민심이 하루 아침에 마윈으로 쏠렸고 아마존은 보따리를 쌌다.

민심을 얻기 위해선 돈을 번다는 생각도 위험하다. 레이쥔도 돈 벌기 위해 좌충우돌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부를 축적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업이나 만족하는 분야에 매진할 수 있어서 제대로 된 물건 만드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민심을 얻기 위한 구전 마케팅에도 열심이다.

구전마케팅의 최대 수혜주인 하이디라오가 벤치 마킹 대상이다.

하이디라오라는 식당은 직원들의 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하다. 베이징 하이디라오에서는 식사를 마친 고객이 먹다 남은 수박을 포장해갈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아예 새 수박을 주었을 정도로 서비스를 잘한다. 비결은 직원들을 만족시키는 경영에 있었다.

샤오미도 고객 전화에는 신속 대응한다. 배터리 불만이 나오면 새 것으로 부쳐준다.

기대보다 빨리 바로 바로 조치하다보니 늘 고객이 감동한다는 점을 활용한 마케팅이다.

이밖에도 민심을 얻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박리다매 전략이다. 박리다매는 월마트 코스트코 등 외국기업에서 배웠다. 월마트는 잡화점 창업 당시 45% 였던 유통업 매출이익률에 맞서서 매일 세일을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박리다매로 30년만에 세계 1위 유통업첼 성장했다.

45%를 버는 세상에 22%만 버는 것은 손해 막심이라고 생각하는 시장 경쟁의 원칙을 깨도 비용을 줄이고 민심을 잡아 성공한 케이스를 배운 것이다.

레이쥔은 백년기업으로 가는 길에 스마트폰 업체들과의 매출 경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지난해 화웨이에 중국 판매 1위를 뺏긴 샤오미는 세계 1위 경쟁에도 강력하게 나서지 않겠다는 의도를 내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 창업 기업들이 마인이나 레이쥔 처럼 백년기업을 롤 모델로 삼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