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혁신의 대명사 애플이 이제 대놓고 중국을 베끼다

혁신의 대명사 애플이 알리페이(支付宝)와 위챗페이(微信支付)로 대표되는 중국 핀테크 혁신을 쫒아하기로 결정했다.

애플페이의 기능강화는 미국 페이팔의 모바일 결제서비스인 벤모의 송금 기능과 월마트페이 같은 QR코드 결제 서비스를 따라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세계 최대 모바일 결제시장인 중국 진출 1년이 지나도록 맥을 못추고 있는 현실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QR코드를 통한 결제는 지난해 애플페이와 연계해 중국 모바일 결제시장 공략에 본격 나섰지만 별 성과를 얻지 못한 중국의 대형 은행들도 따라하기에 나선 서비스다.


애플이 iOS 11에 추가한 메시지를 통한 개인간 송금기능(왼쪽)과 QR코드 인식 기능


애플과 중국 은행들이 QR코드 결제에 잇따라 합류하게 된 건 QR코드가 중국을 ‘무현금 사회’로 빠르게 변모시키고 공유경제 확산을 부추기는 인프라가 되는 현실을 직시한 변신이다. 마윈(马云) 알리바바 회장이 2011년에 내뱉은 “은행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가 그들(은행)을 바꾸게 할 것”이라는 공언이 현실화된 것이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모바일 결제건수는 257억 1000만건으로 전년 대비 85.82% 급증했다. 덕분에 중국의 지난해 모바일 결제시장은 전년의 3배인 5조5000억달러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으로 성장했다.(아이리서치) 미국의 모바일 결제시장은 지난해 중국의 50분의 1수준인 1120억달러에 달했다. (포리스터리서치)


텐센트는 위챗으로 대화를 하면서 손쉽게 송금할 수 있는 위챗페이로 모바일 결제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애플페이는 작년 2월 중국의 은행과 카드사들의 연합체인 인롄(银联,차이나유니온페이: CUP)과 손잡고 중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은행카드에 애플페이를 연동한 소비자는 300만명으로 전체 은행카드 소지자의 4%도 안된다. 인롄은 중국의 은행과 카드사들의 연합체로 2002년 설립됐다.

중국 인터넷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이관(易观)에 따르면 올 1분기 제3자 모바일 결제 시장에서 알리페이(53.70%)와 위챗페이와 QQ페이를 포함한 텐페이(39.51%)의 점유율이 총 93.21%에 달했다. 애플페이는 중국 모바일시장 거래에서 기타로 분류되고, 삼성 화웨이 샤오미페이 등은 종적을 찾기도 힘들다고 중국언론들은 전했다.


애플페이는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같은 계좌이체 기능도 없고 상인들이 근거리무선통신(NFC)설비를 구비해야하는 불편함과 비용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이번에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돈을 보내는 개인간(P2P)송금 기능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위챗에서 대화를 하면서 송금을 하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인민망 등 중국 언론들은 위챗의 훙바오(紅包 , 세뱃돈이나 축의금을 담는 붉은색 돈봉투)기능과 흡사하다고 전했다. 위챗페이는 디지털 훙바오 문화를 만들며 빠르게 성장했고, 이는 위챗 사용자를 늘리는 선순환 효과를 가져왔다.

QR코드 인식 기능 추가 역시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강점인 간편함 따라하기다. 애플은 카메라가 자동으로 QR코드를 인식함으로써 코드에 담긴 사이트나 앱을 여는 것은 물론 지불결제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애플페이는 미국에서 캐쉬백을 지급하는 정책을 중국에도 도입하고 생활속 각종 요금 납부와 연계하는 등 사용자들을 위한 혜택과 편의성을 계속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금융업무 뿐 아니라 쇼핑시 할인 혜택, 수도세와 전기료 납부, 복권 구매 등 사용범위가 매우 넓은 것도 강점이다.


중국의 공상은행 농업은행 중국은행 건설은행 등 40여개 상업은행도 5월27일 베이징에서 ‘인롄 QR코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은행카드를 소지한 사람들은 은행의 앱을 내려받으면 카드를 갖고 다니지 않아도 QR코드를 읽는 것으로 결제를 할 수 있게됐다.

현재 60여개 은행들도 서둘러 서비스 테스트를 시행중으로 연내 중국의 주요 은행은 기본적으로 QR코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중국증권망이 전했다.

은행들이 QR코드 서비스에 나서는 건 지난해 스마트폰업체들과 손잡고 모바일 결제시장 공략에 나선 데 이은 것으로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를 겨냥한 2차 반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인롄은 작년 2월18일 애플페이를 시작으로 3월 삼성페이에 이어 화웨이페이 샤오미페이 등을 통해 모바일 결제시장 공략을 강화했다.

스마트폰업체들이 스마트폰에 탑재한 모바일결제기능과 연계해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주도해온 모바일 결제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작년 2월 중국은행 등 5대 중국 은행들이 모바일 송금 수수료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하고, 애플페이나 삼성페이 등을 이용할 경우 스마트폰만으로도 은행의 현금입출금기(ATM)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은 것도 이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은행들이 당초 당국에 규제해달라고 로비를 해온 QR코드 결제서비스에 뒤늦게 나선 건 아이러니다. 은행들의 반대 로비로 인민은행은 2014년 3월 QR코드 결제서비스 중단 통지를 내렸다.

하지만 핀테크를 통한 금융개혁의 필요성을 인지한 당국은 실제론 QR코드 결제를 묵인했고, 이는 모바일 결제 시장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인민은행은 2016년 8월 이를 합법적인 수단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핀테크의 혁신을 규제라는 칼로 막으려던 기득권층(은행)의 방어가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중국에서는 노점상들도 모바일 결제를 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중국에서 QR코드는 재래시장의 과일 가게는 물론 노점상과 거지의 좌판, 심지어 결혼식 부조를 받는 곳에도 등장할만큼 빠르게 확산하면서 모바일 결제시장의 촉매제가 됐다.

특히 QR코드 보급이 확산되면서 공유자전거에 이어 오토바이 자동차 세탁기 농구공 충전기 노래방 등으로 공유 상품과 서비스 시장이 생겨나는 등 공유경제가 급팽창하고 있다. 간편함을 내세운 QR코드가 공유경제의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공유’만 붙이면 자본이 몰리는 분위기에 사실상 모바일 인터넷 기반의 렌털서비스도 공유경제란 간판을 달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00년 닷컴 열풍 때 사명에 닷컴만 추가해도 주가가 급등하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중국의 공유경제 업체들이 조달한 자본이 250억달러에 달한다”며 “세계 공유경제의 혁신은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중국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전자상거래연구중심이 5월9일 발표한 ‘2016년 중국 공유경제 발전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공유경제 시장 규모는 3조 9450억위안으로 전년 대비 76.4%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국가신식중심 산하 공유경제연구중심은 향후 수년간 공유경제가 연평균 40% 안팎의 성장을 할 것이라며 2020년이면 거래규모가 GDP의 10%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베이징 왕징에 있는 공유 자동차. QR코드 읽는 것으로 결제 절차가 끝난다.


애플페이와 삼성페이 등이 사용하는 NFC 방식의 결제서비스는 안전성은 높지만 편의성이 떨어져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높은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안전성보다 편의성이 중국 시장의 공략포인트임을 보여준다.

애플과 중국은행들이 QR코드 결제서비스에 나서면서 안전성이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QR코드를 읽은 소비자들의 계좌 돈을 빼가는 사기 행위가 늘고 있어서다. 광둥성 둥관시 검찰은 최근 순(孙)모씨 등 12명으로 구성된 위챗페이 사기조직을 적발했다.

인롄은 QR코드 결제시장에선 후발주자지만 안전성을 내세우며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인롄측은 토큰화(일회용 카드번호와 같은 디지털 토큰을 생성하고 전달해 거래를 승인하는 결제정보 보호 기술)를 활용해 소비자들의 안전성을 제고했고, 리스크 보상시스템을 통해 안심하고 쓸 수 있도록 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인롄의 기존 고객이 많은 것도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은행의 반격을 가벼이 볼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까지 인롄이 발행한 카드는 60억장이 넘는다.

인롄 카드는 전세계 160여개국가와 지역에서 쓸 수 있을 만큼 국제화도 돼 있다. 인롄측은 이번 QR코드 서비스를 해외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인롄 QR코드를 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하지만 핀테크 업체들의 방어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특히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해외시장 공략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중국내에서는 수수료율이 0.5% 정도지만 해외에서는 3~4%로 수익성이 좋기 때문이다.

알리페이를 제공하는 알리바바의 계열사 앤트파이낸셜은 “10년 내 전세계에서 20억명에게 현금이 필요없는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공언한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5월 미국 시장에 잇따라 진출했다. 알리페이는 미국 결제서비스회사 퍼스트데이터와 제휴해 400만개가 넘는 현지 상점에서 결제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텐센트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인 시트콘과 제휴해 위챗 사용자들이 미국에서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위챗페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책임자 마야오(马遥)는 “태국에서는 신용카드 사용자가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해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된 미국이나 유럽시장에 비해 진출이 용이하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중국에서 모바일 결제시장이 급성장한 것과 같은 이치다.

전체 인구의 90%가 현금을 사용하는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시장이 중국 모바일 결제 업체 해외 공략의 첫번째 타깃이라고 중국기업가망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