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싼저(第三者)’
원래 법률 용어였다. 말 그대로 제삼자라는 뜻이다. 이른바 혼외정사의 대상(남녀 불문)을 말한다. 내연남 혹은 내연녀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즘 중국 정가의 ‘슈퍼 관심사’다. 당 기율 위반 혐의로 낙마한 쑨정차이(孙政才·54) 전 충칭시 서기에게 ‘디싼저’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다.
사실 쑨 전 서기만이 아니다.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부패 혐의로 낙마한 수천 명의 고위직 공무원의 90% 정도가 ‘디싼저’가 있었다는 것은 중국 권력의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전술한 대로 디산저는 법률 용어다. 1984년 중국 최고 인민법원에서 특정 부부를 이혼에 이르게 한 혼외 연애의 대상, 즉 제삼자를 ‘디싼저’로 규정했다. 당시 중국 사회는 개혁개방과 함께 서구 문화가 유입되면서 혼외정사로 인한 이혼이 급증하고 있었다. 법원은 제삼자와 혼외정사를 한 측에 상당 부분 이혼의 책임을 묻고 재산 분할이나 자녀들의 양육권 판결에 참작했다.
이 말은 민간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인다. 디싼저를 줄여 샤오싼(小三)이라고 한다. 특히 샤오싼이 여성일 경우에는 말이 좀 험해져, 후리징(狐狸精·불여우), 얼나이(二奶·둘째 첩), 세화(邪花·사악한 꽃) 등으로 불린다. 그래서 지금은 남의 정상적인 가정을 파괴하거나 혹은 부정적 영향을 주는 혼외정사의 대상을 통틀어 디싼저로 부른다.
그렇다면 중국 권력에는 왜 여성 디싼저가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할까. 쑨 전 서기는 원자바오 전 총리가 발탁했는데 농업 전문가였다. 당시 원 총리는 업무 능력 못지않게 그의 성실성과 도덕성도 높이 샀다고 한다. 그래서 최연소 농업부장(43세), 최연소 정치국원(49세)에 오르며 차세대 대권 후보로 성장 중이었다. 한데 그가 중국 최고 권력이라는 정치국원(8700만 공산 당원 중 25명)에 오르면서 사달이 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그는 정치국원에 오른 후 수많은 여성(디싼저)들과 염문을 뿌렸고 심지어 상당수 사생아까지 두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낙마에는 이 외에도 공금횡령, 부인의 부패 등 문제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 온통 그의 여성편력과 “어떻게 색계(?)를 즐겼을까...”에 쏠려있는 게 사실이다.
정치국 상무위원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부패 혐의로 낙마했던 저우융캉 전 정법위 서기 역시 디싼저의 저주를 피해 가지 못했다. 저우가 얼마나 많은 엽색행각을 벌였으면 그의 별명이 백계 왕(百鸡王). 100마리의 암탉을 거느리는 수탉 왕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실제로 그와 놀아난 미인들은 확인된 숫자만 400여 명. 백계 왕이 아니라 ‘4백계 왕’이었던 거다. 그는 CCTV 미인 아나운서 출신인 자샤오예와 결혼하기 위해 차 사고로 위장해 본부인을 살해했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저우와 함께 시진핑 주석의 권력에 강력 반발했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다롄시 서기 당시에는 현지 방송국 아나운서와 염문을 뿌리는 등 수십 명의 샤오싼(小三·내연녀)을 거느렸다. 심지어 그는 법정에서 “(부인 외) 사귀는 여자가 있었다”며 불륜 사실을 당당하게 고하기도 했다.
물론 권력과 돈 주위에 여성들이 있다는 건 동서고금의 역사가 말해주니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깊고도 질긴 중국의 ‘디싼저 문화’의 배경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사회학자들은 세 가지 이유를 거론한다.
첫째, 중국 전통의 첩문화다. 고대 봉건사회에서 권력과 돈은 곧 ‘축첩(蓄妾)’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민국 시절만 해도 축첩이 허용됐다. 여기에 중국 전통의 영웅호색(英雄好色) 문화가 더해졌고 이는 윤리나 도덕보다는 야성과 경외의 대상으로 끝없이 진화했다. 여색이 권력과 금전을 가진 자의 당연한 향유거리 정도로 여겨졌다는 얘기다. 중국 민간에서는 디싼저 문화를 ‘시신옌주(喜新壓舊)’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오래된 것보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조강지처보다 새로운 여인이 좋은 것은 자연스럽다는 함의를 갖고 있으니 도덕과 윤리를 넘은 극한의 말초적 가치관이 아닐 수 없다.
둘째, 개혁개방 이후 확산되는 젊은 층의 배금주의 사상이다. 특히 경제발전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돈을 향한 젊은이들의 돌진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젊은 여성의 경우 권력과 돈이 내미는 기회를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세계 어느 나라든 존재하는 쾌락주의와 한탕주의, 개인주의까지 디싼저 문화의 동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부패로 낙마한 중국 공직자들의 디싼저는 대부분 20대, 혹은 30대의 젊은 여성들이다. 일부에선 이 같은 현상을 개혁 개방의 부작용으로 분석한다.
셋째, 공산정권 수립 이후 강화된 중국 여성 인권에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실제로 결혼 후 가정에서 중국 여성의 위상은 ‘권력’이라는 단어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남성들은 자연스레 위축된 남권(男權)을 외부에서 찾고 위안 받으려 한다는 거다. 실제로 쑨정차이와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는 모두 실각 전 각각 억센 부인과 별거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현상의 한 가지 분석일 뿐, 혼외정사를 즐기는 권력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혼인은 곧 서로에 대한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싼저 문화를 부러워하거나 좇으려 하는 것은 스스로의 비도덕성과 무책임, 그리고 어리석음에 굴복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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