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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군권력 장악법

지난 3일 베이징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허베이성 바오딩(保定) 중국 육군 112사단. 얼룩무늬 군복에 검은색 털방한모를 쓴 시진핑 주석이 연병장을 시찰했다. 인근 부대에서 열린 '2018년 훈련 시작 동원 대회'에서 전군(全軍) 훈련 명령을 내린 직후였다. 연병장에 세워진 99A 탱크에 탔던 그는 훈련 중인 신병 30여 명을 격려했다. 신병들은 "시 주석의 좋은 전사가 되겠다(做习主席的好战士)"고 외쳤다.


중국 군 통수권자가 신년 벽두에 전군에 훈련 명령을 내리고 훈련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지난해 건군절(8월 1일)을 전후해 시 주석은 공식 행사에 부쩍 자주 군복 차림으로 나오고 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 말대로 집권 1기 5년에 걸쳐 군부를 완전 평정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덩샤오핑 같은 혁명 원로 세대와 달리 관료 출신인 화궈펑·장쩌민·후진타오 등은 군부 장악이 '제1 과제'였다. 중국 국가주석은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군 최고 사령탑) 주석을 겸하는데, 중앙군사위 주석이 됐다고 해서 군이 절로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천안문 사태(1989년) 직후 당 총서기에 임명된 장쩌민은 다음해 군사위 주석이 되고도 노골적으로 홀대받았다.


당시 군부 실권자이던 양상쿤(국가주석)·양바이빙(중앙 군사위 비서장) 형제가 장쩌민에게 알리지도 않고 군사위 회의를 열어 대사(大事)를 결정할 정도였다. 장쩌민은 1992년 두 사람을 축출한 뒤에야 군부를 틀어쥘 수 있었다.

후임인 후진타오 주석은 10년 임기 내내 장군 승진 인사도 제대로 못 하는 허수아비 신세였다. 쉬차이허우, 궈보슝 등 두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상황(上皇)'인 장쩌민에게 충성을 다했다.

이런 실태를 꿰뚫은 시 주석은 일찌감치 숙군(肅軍)에 나섰다. 2010년 10월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임명된 지 2개월 후인 다음 해 1월, 류샤오치 국가주석의 아들로 자신의 오랜 친구인 류위안 상장(刘源 한국의 대장 격)을 총후근부 정치위원으로 승진시켰다. 군수 지원 담당인 총후근부는 군부 부패의 온상으로 꼽히던 곳. 류위안은 2012년 2월 구쥔산 총후근부 부부장을 면직한 데 이어 2014년 장쩌민 군맥(軍脈)의 핵심인 쉬차이허우와 궈보슝 2명을 부패 혐의로 제거해 시 주석의 군 기반을 굳게 다졌다.

쉬차이허우의 집에서는 뇌물로 받은 현금·보석 등 물품이 트럭 12대분 나왔다는 후문이다. 시 주석의 집권 1기 5년간 부패 혐의 등으로 숙청당한 군 장성과 고위 간부는 440명이며 조사 과정에서 장군 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 주석은 빈자리를 '시자쥔()'이라고 하는 자기 인맥과 '젊은 피'로 교체​했다. 만 11년간 해군 소장(별 1개)이던 먀오화 현 정치공작부 주임을 2012년 중장(별 2개)으로 진급시키고 다시 3년 만인 2015년 인민해방군 최고 계급인 상장(별 3개)으로 초고속 승진시켰다. 먀오화는 시진핑이 푸젠성장 시절부터 오랜 친분을 맺어온 복심(腹心)이다. 상장을 제쳐놓고 중장 직급자에게 각각 해군·공군·로켓군 사령관과 장비발전부장 등 중책을 맡김으로써 군부 내 영향력 강화와 물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시 주석이 군부 장악에 성공한 데는 그만의 경력과 배경도 작용했다. 시 주석은 대학 졸업 직후인 1979년 26세에 당 중앙군사위 판공청 비서(중위급)로 발탁돼 3년 동안 겅뱌오 국방부장 겸 중앙정치국원을 보좌했다. 또 해군과 미사일 부대 밀집 지역인 푸젠성과 저장성 등에서 성장(省長)으로 근무하면서 미사일 예비역 사단 제1정치위원과 국방동원위원회 주임을 맡는 등 23년간 군 통수권자 경력을 쌓았다.

현재 상무위원들인 공산당 서열 2위인 리커창 총리부터 7위 장가오리 부총리까지 모두 두세 지역의 성장이나 당서기를 지냈지만 해당 군구 통수권까지 장악했던 이는 시진핑이 유일하다.

군부 내 태자당(혁명 원로나 고관 자제로 구성된 정치 세력)도 같은 태자당 동료인 시진핑에게 큰 힘이 됐다. 건국 원수인 예젠잉의 아들 예쉬안닝(叶选宁) 전 소장과 시 주석 아버지(시중쉰)의 고향 친구이자 전우(戰友)였던 장쭝쉰 인민해방군 상장의 아들 장유샤 현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대표적이다.

시 주석은 작년 10월 제19차 공산당 대회에서 중앙군사위원을 11명에서 7명으로 줄여 군부 통제력을 극대화했다. 그가 마오쩌둥·덩샤오핑을 능가하는 '1인 체제'를 구축해 막강 권력자가 된 것은 이런 군부 장악 성공 덕분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