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중국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중국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베일에 가려있던 김정은 위원장의 표정과 육성은 중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중국정부의 공식 반응도 신속했다. “축하하고 환영한다!” 중국 언론들은 ‘역사적 만남’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중국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대규모 전쟁이 날 수 있다고 크게 걱정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중국의 예상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시작된 한반도 해빙 무드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하나 같이 ‘역사적’ ‘세기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일대 ‘사건’들이다.
현기증 나는 속도로 급변중인 한반도. 과연 그 종착역은 어디인가?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최대 관심사다. 현재 진행형인 거대한 움직임은 한반도 역학구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지각변동의 서곡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남‧북‧미 3자의 작은 몸동작만으로도 동북아 역학구도의 흔들림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과거와 전혀 다른 ‘힘의 질서’가 태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이 과정에서 중국의 대(對)한반도 영향력도 손상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커지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를 자국의 뒤뜰(後院)이라 부른다. 이 말엔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중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내포돼있다. 때문에 한반도 질서 변동이라는 중대한 사안에 중국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펴고 있다.
이른바 ‘중국 역할론’이다. “(한반도 사안에서) 적극적이고 중요한 역할 수행”이다.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나서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직후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하고 싶다”는 중국외교부 논평은 직설적이다.
중국의 관심은 이제 북미정상회담으로 급속히 쏠리고 있다.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 드러난 북한의 태도를 면밀히 분석중이다. 북한이 파격적 행보를 거듭하는 나름의 이유를 찾으려는 것이다.
중국 학계는 “이번 남북정상회담 성공은 북미회담 성공을 위해 북한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의지 표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사상 처음 ‘완전한 비핵화’를 대외 문서로 확인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미국과 본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한 풍모를 보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북미정상회담 성공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다. 낙관적 징후들이 있지만 정반대 상황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비핵화 조건과 방법이다. 북한은 지난 20년 간 일관되게 비핵화 3대 조건을 주장해왔다. 주한미군 철수, 한미안보협약 폐기, 핵우산 제거 등이다. 국내에선 한국에는 핵무기가 없으므로 북한만 비핵화하면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는 것으로 얘기한다. 하지만 북한은 전혀 다른 차원의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북한만 비핵화 한다면 그건 북한 핵무장 해제다. 한미 양국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핵무기 사용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 미군 주둔의 법적 근거인 한미안보협약도 폐기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도 한미의 핵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엄밀히 얘기하면 ‘한반도 비핵지대화’ 주장에 가깝다. 중국이 그 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 “유관국가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도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은 “회담을 하지 않으려는 억지”라고 반박해왔다. 때문에 북한이 이번에도 기존 입장을 고집한다면 회담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설혹 열린다하더라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떤 조건을 내세울까? 구체적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주장을 되풀이 하지 않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극비 방북 시 미국이 가장 먼저 확인했던 것도 바로 이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확인했다. 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긍정적 요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조건으로 내세운 건 무력위협 해소와 체제안전보장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핵을 포기하는 대신 어떻게 해야 한미의 무력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을 보장받을 것인지가 협상의 핵심이다. 반대로 미국 입장에선 어떻게 해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完全、可验证且不可逆的无核化 : 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그것도 최단 기간 내 완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비핵화 이행은 동결→신고→검증→폐기의 4단계를 거쳐야 한다. 미국은 모든 과정이 최단 시일 내 끝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북한은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내세우고 있다.
핵무기 완성도가 15~20%에 불과했던 리비아는 이 과정을 끝내는데 22개월이 소요됐다. 90%대 완성도를 보이고 있는 북한의 경우 그 과정이 훨씬 복잡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끝내야 한다면 남은 시간은 길어야 2년 정도다.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다. 중국 내 상당수 전문가들이 회의적 전망을 하는 건 바로 이런 연유다.
중국의 고민은 따로 있다. 비핵화 협상에 중국이 끼어들 여지도 많지 않고 중국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역할도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북한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나라는 한국도 중국도 아닌 오로지 미국이다. 북한 역시 중국의 개입을 꺼려하고 있다.
중국은 북핵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문제로, 두 나라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왔다. 중국이 북핵 해결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미국 등 서방세계의 ‘중국 역할론’에 ‘당사자 해결’ 원칙으로 대응해온 것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끼어드는 건 자가당착이다.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지금처럼 남북미 3자 주도로 타결될 경우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역할이 없으면 영향력도 감소하는 게 국제정치의 엄연한 현실이다.
또 현재 진행 중인 비핵화 협상이 중국이 설계한 궤도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도 불만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미 연합훈련을 일방적으로 용인한데 이어 핵‧미사일 실험동결과 핵 비확산 의지도 선제적으로 천명했다. 중국이 제안한 쌍중단(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 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협정체제 병행 논의)과는 수순도, 방식도 다르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이번 판문점선언에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협상 주체로 중국을 특정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이라고 여지를 둠으로써 뒤끝이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반도 정세는 더욱 긴박하게 돌아갈 전망이다. 당장 5월 9일 일본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이때 한중, 한일 정상 간 별도 회담이 열리게 된다. 그로부터 며칠 후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찾아 이번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갖고 트럼프 대통령과 조율 작업을 벌인다.
5월 말 또는 6월 초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회담이 순조로울 경우 남‧북‧미 3국 정상의 역사적이고 세기적인 만남도 이뤄질 전망이다.
6월 중엔 시진핑 주석이 북한을 거쳐 한국을 방문할 가능성도 크다. 큰 변수가 없다면 올 가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도 남북 간에 합의돼 있다. 말 그대로 숨 가쁘고 긴박한 상황전개다.
한반도 외교전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동반하는 평화체제 구축은 동북아 역학구도를 뒤흔드는 일종의 지각변동에 다름 아니다. 미‧중‧일‧러 등 주변국들이 한반도 주도권 확보와 자국 이익 극대화를 위해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한반도 비핵화 열차의 운전석에 문재인 대통령이 앉아 있다. 큰 전략과 작은 전술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한 발 잘 못 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이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 모른다.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이 미국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을 대부분 공개했다. 이제 공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환영 의사를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국전쟁은 끝날 것이다! 미국, 그리고 위대한 미국민들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북핵을 완전히 폐기하는 대신 미국에게 북한의 체제 보장과 경제개발의 종잣돈을 요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진정 원하는 것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며, 이를 위해 먼저 북미간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실제 덩샤오핑도 1978년 개혁개방 선언한 뒤 1979년 미국과 정식 수교를 했다.
김위원장은 이미 두 사례를 통해 개혁개방 의지를 굳혔다. 중국과 베트남이다. 중국은 개혁개방의 대명사이고, 베트남도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 최근 빠른 경제 성장을 하고 있다. 김위원장이 중국-베트남 모델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공산당 일당독재를 지속하는 가운데, 경제 발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베트남이 이같은 모델이 성공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북한은 지금 세계에 명확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점을. 북한은 이 과정에서 인접국인 한국, 미국, 중국,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인지하고 있다. 북한은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의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북한 경제개발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한때 한국 대사로 내정됐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한국 석좌교수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더 고조시켰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큰 압박을 받을 것이며 비록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호평했지만 이제 포커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력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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