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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선택의 순간, 누구 편에 줄을 서야하나



타결을 목전에 앞둔 줄 알았던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되고 미중 간의 충돌이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도 상상했던 강도를 뛰어넘는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사용제한,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의 화웨이 거래 중단 선언 등 화웨이는 사면초가에 처한 분위기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를 보는 우리의 심정은 다른 나라보다 더 복잡하다. 중국의 사드보복 트라우마가 남아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마치 나를 괴롭히던 힘 센 아이가 더 힘 센 아이한테 괴롭힘을 당하는 걸 보는 심정이랄까. 한 편으로는 속 시원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어쩐지 불안하기만 하다.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에게도 화웨이 퇴출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노골적인 편가르기에 나섰다. 이때 한국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적극 동참해야 하나.

‘안미경중’(安美經中), 즉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는 말이 한동안 유행했다. 만약 한국이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등 완전히 미국 편을 들면 ‘안미경미’(安美經美)가 된다. 그런데 이 구조는 지속될 수 있을까.

중국과 미국은 각각 우리의 1,2위 수출 대상국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 수출의존도는 26.8%(1621억 달러), 대미 수출의존도는 12%(727억 달러)에 달했다. 수출 면에서 볼 때, 미국과 중국 어느 한 국가의 수출만 줄여도 대외수출은 큰 폭으로 감소할 수 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전에, 미중 충돌을 장기적인 시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미중 충돌은 하루 이틀 사이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현세대 최고의 주식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미국 경제방송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은 향후 100년 동안 세계의 슈퍼 파워일 것이며, 서로 간 항상 긴장감이 존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버핏은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암시하는 듯 협상에서 ‘반쯤 미친 듯’(half crazy) 행동하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버핏이 지적한 것처럼 미중 양국의 경쟁은 1~2년 사이에 완전히 끝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향후 100년 동안 미국과 중국 양국은 슈퍼 파워 지위를 유지할 것이며 양국 모두 상대국과의 경쟁 뿐 아니라 협력도 강요 받을 수 밖에 없다.

당장 눈 앞의 상황만 보면 미중 관계는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치달을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의 지평(time horizon)을 30년으로 늘린다면 지금 이 순간이 미중 관계에서 최악의 기간일 수 있다. 중장기적인 미중 관계는 지금보다 양호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각각 국내총생산(GDP) 20조5000억 달러, 13조4000억 달러를 기록한 세계 1,2위 경제대국이다. 두 나라가 사사건건 부딪히면 다른 나라도 불편하지만, 무엇보다 미중 양국이 가장 불편하다.

한때 유행했던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말처럼 미국과 중국은 경쟁관계이기도 하지만, 공생관계이기도 하다. 지금의 미중 충돌은 서로 간의 위치를 재정립하기 위한 조정 및 마찰 과정이며 향후 양국 모두 동의하는 결과를 도출한 뒤 중장기적으로는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이란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즉 우리는 미중 갈등이 계속 악화된다는 전제 하에 미국 편을 들었는데, 만약 미중이 화해한다면 우리 입장만 난처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역시 북한문제에 있어서나 무역 등 경제문제에 있어서나 우리가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나라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 중 어느 나라도 잃어선 안 된다. 사드보복을 한 중국이 밉다고 미국의 대중 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건 절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미국의 대중 제재 동참 요구에 대해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건 조선시대 광해군의 중립외교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 준 명나라가 신흥세력인 후금 토벌에 동참할 원군을 요청하자, 명나라에 원군을 보내면서도 후금에 따로 밀명을 보내 자극하지 않도록 하는 양면작전을 취했다.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의 싸움에 말려들지 않는 실리적인 중립외교를 유지했다. 명분을 중시하는 사대부의 상소가 빗발쳤지만, 광해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라를 위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절대로 미중 양국 중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에 놓여서는 안됩니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개최된 미중 통상분쟁 포럼에서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기업을 컨설팅하는 앤드류 폴크(Andrew Polk) 트리비움 차이나 대표가 한 발언이다. 우리가 곱씹어 봐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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