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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년, 최빈국서 G2 경제대국 부상

지난 1949년 신중국이 건국된 이래 70년간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두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등 관영 매체들은 상전벽해(桑田碧海 :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함)라고 표현한다. 구소련의 원조에 기대야 했을 만큼 아시아 최빈국 신세였던 중국이 불과 70년 만에 미국과 맞먹는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서고 세계 경제 성장의 최대 엔진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전 국가 주석의 철권 통치 아래 경제적 암흑기를 거쳐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남순강화(南巡講話)로 개혁·개방에 신호탄을 올린 뒤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에 이어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정권을 잡으면서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자 세계 최대 제조업국으로 올라섰다. 지난 70년간 중국의 경제력은 일본마저 제치고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일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1952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0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9년 GDP는 13조6천82억달러로 1952년보다 452배 늘었다. 연평균 GDP 성장률은 8.1%로 고속 성장 그 자체였다.1978년 중국의 GDP 세계 순위는 11위였으나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2위 경제 대국이 됐고 이후 그 자리를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 중국 GDP가 세계 경제 총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11.4%에서 2018년 15.9%로 증가했다.
중국은 200여종 공산품 생산량이 세계 1위를 점유할 정도로 'Made in China'가 전 세계에 위세를 떨치고 있다. 2018년 중국 외화보유액은 3조 달러를 돌파해 13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인들의 생활 수준 향상을 보여주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62년 70달러에 불과했지만 1978년 200달러를 기록한 뒤 2018년에는 9천470달러를 기록해 1962년보다 134배 급증했다. 먀오웨이(苗圩)중국 공업정보화부 부장은 "중국은 유엔 산업 분류 시스템에 등록된 모든 산업 분야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두 가진 국가"라고 자랑했다.

경제 발전을 통해 중국은 빈곤 탈출에도 성공했다. 1978년 중국의 농촌 빈곤 인구는 7억7천만명으로 빈곤 발생률이 97.5%에 달했다. 그러나 2018년 말 농촌 빈곤 인구는 1천660만명으로 빈곤 발생률이 1.7%로 급감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은 개발도상국 가운데 유엔의 새천년개발목표(MDGs) 중 빈곤 감소 목표를 가장 먼저 실현한 국가"라면서 "70년의 세월을 지나 새로운 역사적 출발점에서 서서 개방적인 중국은 새로운 전설을 쓸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런 경제 급성장으로 기반 시설도 확충돼 2018년 말 중국의 철도 총 길이가 1949년보다 5배 늘어난 13만2㎞로 늘었다. 도로 총 길이는 1949년의 500배인 485만㎞, 항공 노선은 1950년의 412배인 4천945개 항로로 급증했다.

산업 구조도 건국 초기 농업에서 2, 3차 산업으로 변모했다.
신중국 건국 초기 대다수의 노동자가 농업에 종사했지만 2018년 2차 산업(제조업) 및 3차 산업(서비스업)에 취업한 인구 비중이 70%를 넘어 서비스 주도형 취업 패턴이 정착됐다. 신중국 초기 취업 인구가 1억8천만명에 불과했지만 2018년 말 7억7천만명으로 늘며 경제 발전의 혜택을 입었다. 식량 생산 또한 1949년 2천263억6천만근에서 2018년 1조3천157억8천만근으로 5배가량 늘었다. 1인당 연간 식량 보유량은 400근에서 900근으로 2배 이상 늘어 세계 평균 수준보다 높아졌다. 경제 발전과 함께 중국의 과학 기술 또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중국은 원자 폭탄과 수소 폭탄, 인공위성에서 중국판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PS)인 '베이더우(北斗)' 시스템, 달 탐사, 대형 여객기와 항공모함 제작, 휴먼 인슐린 인공 합성, 세계 첫 체세포 복제 원숭이까지 성공했다. 2018년 중국의 연구개발(R&D) 인력 규모는 418만명으로 단연 세계 1위다. 신화통신은 "70년, 2만여일은 인류의 역사로 볼 때 한순간처럼 짧지만 폐쇄에서 전방위 개방으로 발전한 중국은 위대한 역사적 전환을 실현했고 세계를 놀라게 만든 중국 기적을 창조했다"고 자평했다. 충이 톈진대 교수는 "중국은 1970년 이후 서구의 탈산업화와 세계화 추세 속에서 산업화의 길을 추진해 유일하게 독자적인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면서 "중국은 인구가 많은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라고 말했다.

죽의 장막 걷고 미국과 패권경쟁
죽의 장막, 1949년 10월 1일 톈안먼(天安門)에서 수립을 선언한 신생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역사적 전환점인 개혁개방을 맞기 전까지 걸어간 폐쇄적 대외 정책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시절 '죽의 장막' 속에서 은둔한 채 '자력갱생'을 외치던 중국이 새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뜻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앞세워 유라시아는 물론 세계로 뻗어 나가며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신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의 70년사를 관통하는 가장 극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중국 주도로 세계 교통·무역망을 연결하는 경제 구상인 일대일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시대를 대표하는 적극적 대외 전략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일대일로 개념을 처음 공식 제기했다. 육지를 잇는 실크로드 경제 벨트(一帶)와 바닷길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一路)를 합친 개념이다.
일대일로는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자국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전략적 구상으로 평가된다. 미국과 정면 대결을 피하고 얼핏 보면 중립적인 경제 분야를 통해 세력 확장을 도모하는 것은 중국 특유의 전략적 전통과도 맥이 닿는다.
미국 외교의 거두인 헨리 키신저는 저서 '중국 이야기'(On China)에서 힘의 대결을 상징하는 서양의 체스와 오묘한 세력 확장 싸움인 바둑을 비교했다. 그러면서 예로부터 중국 정치인들은 섬세한 전략을 세워 경쟁자보다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방식을 선호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이 일대일로 추진을 계기로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이 제시한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 대외 정책 기조가 사실상 폐기됐다는 점이다.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신형 대국 관계', '신형 국제관계' 등의 외교 개념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대국'임을 자처하고 있다. 더는 중국이 가진 힘을 숨기지 않겠다는 노골적 선언이기도 하다.

중국은 막대한 해외 투자 능력과 방대한 자국 시장을 앞세워 빠르게 '일대일로 블록'을 키워나가며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흔들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난 4월을 기준으로 일대일로 참여국은 126개국, 29개 국제기구로 늘어났다. 일대일로 참여국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 중국에 인접한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나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빈국 중심에서 서유럽 국가들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독일의 고급 차인 포르쉐가 일대일로를 통해 연결된 화물 열차를 통해 단 3주 만에 독일에서 중국 충칭(重慶)까지 운반·수출되는 것은 일대일로의 한 활용 사례다.
올해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서유럽 국가들도 일대일로에 동참하거나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채무 함정' 등 일대일로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빚으로 저개발 국가들을 예속시키는 데서 나아가 군사 기지 사용권까지 얻어내는 등 '신 식민주의'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파키스탄은 채무 부작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파키스탄은 일대일로와 관련해 62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사업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차관을 들여왔지만 빚더미에 올랐다. 결국 파키스탄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처음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됐다. 이 같은 논란을 떠나 일대일로를 계기로 미국이 중국의 '야심'에 위기감을 느끼고 본격적인 대중 압박 정책을 펼치고 나선 점은 중국에도 큰 도전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 전략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중국 견제에 나섰다.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최근 몰디브에서 열린 '인도양 콘퍼런스(IOC) 2019' 기조연설에서 일대일로 정책 뒤에는 약탈적 경제 정책이 깔려있다며 "투명성을 지향하는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다른 나라들을 빚의 함정에 빠뜨려 주권을 위협한다"고 힐난했다. 또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UCESRC)도 작년 말 편 보고서에서 "중국의 부상은 명백히 미국과 동맹국에 군사 안보와 경제적 이익에 위험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이는 중국의 팽창 전략에 관한 워싱턴 조야의 우려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작년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이래로 미국이 통상, 기술, 안보, 인권 등 전방위에 걸쳐 중국을 강력히 압박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팽창 전략과 미국의 억지 전략 사이에서 빚어지는 충돌의 일환이라고 보는 이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나아가 중국과 미국의 새로운 대결 구도를 '신냉전'의 틀로 분석하거나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이 반드시 충돌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비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일대일로를 둘러싼 미중 대결이 한반도와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국도 '일대일로 열차'에 올라탈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자국의 동북 지역과 남·북한, 일본까지 아우르는 동북아로 일대일로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리 측에 일대일로에 적극적인 참여를 희망한다는 뜻을 보내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공식 참여하는 방안에는 아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최대 교역국이자 한반도 평화 유지의 중요 행위자인 중국과의 협력이 중요하지만 핵심 동맹인 미국이 일대일로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한국이 진정으로 중국과 관계 발전을 원한다면 적어도 일대일로와 관련해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밝혀주면 좋을 것"이라며 "미국과 동맹인 일본도 이미 일대일로 관련 제3국 투자를 함께 진행하기로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한국의 참여를 독려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부의 불균형, 지역격차

중국 공산당이 1949년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이후 기적 같은 고속 성장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그 대가도 컸다. 빈부 격차는 갈수록 심해져 사회주의 강국을 세운다는 명분을 무색하게 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광장 유혈진압 이후 민주화의 시계는 거꾸로 갔으며 특히 시진핑의 집권 이후 통제는 더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홍콩의 반(反)중국 시위 장기화와 대만 독립세력의 득세로 수십년간 고수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도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지만 빈부 격차는 웬만한 자본주의 국가보다 심해졌다. 불평등의 척도로 가장 널리 쓰이는 지니계수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높아졌다. 지니계수는 완전한 평등 상태가 0이며 한 사람이 모든 소득을 가져가는 것을 100으로 한다. 유엔은 지니계수가 0.40보다 높으면 그 나라의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징후로 본다. 중국의 지니계수는 이 수준을 훌쩍 넘어 0.50에 가까워졌다. 글로벌 데이터회사 CEIC가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중국의 지니계수는 2008년 0.491로 정점에 올랐다가 2015년 0.462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 2018년 0.468까지 높아졌다.
이 같은 빈부격차는 사회 안정을 위협한다. 아울러 부진한 투자 대신 소비를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으려던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 요소가 된다.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연구에서 중국의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1978년 27%에서 2015년 41%로 높아졌지만, 하위 50%의 비중은 같은 기간 27%에서 15%로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피케티는 "중국의 소득 불평등이 빠르게 높아져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빈부 격차가 커지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지난 몇 년간 더 심해진 부동산 거품이다. 미친듯한 주택 가격 상승의 혜택은 집을 소유한 상위층에 돌아갔다. 베이징, 상하이 같은 거대도시 외에 다른 도시들도 주택 가격이 세계적 수준으로 뛰었다. 푸젠성 샤먼 시내의 아파트 가격은 런던의 평균 집값과 비슷하게 비싸지만, 이 지역의 평균 임금은 런던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알리바바의 본거지인 항저우의 주택 가격은 아마존의 본사가 있는 시애틀과 맞먹는다.
경제 안정을 위해 부동산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정부가 뒤늦게 집값을 잡기 위한 조치를 내놨지만,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은 지난해 사상 최고를 찍었다. 하늘을 찌르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중국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92%로 10년 전의 30%에서 폭등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달 중국 가계부채가 너무 높아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경기 하강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소비 진작 정책이 먹히지 않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빈부격차의 또 하나의 큰 원인은 도시와 농촌의 넓은 간극이다.
2018년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는 거의 3배로 40년 전 개혁개방 시작 때보다 벌어졌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 주민의 1인당 평균 가처분 소득(중위소득)은 3만6천413위안(약 614만원)이었지만, 농촌 지역은 1만3천66위안에 그쳤다. 급격한 도시화에도 중국의 농촌 인구는 여전히 전체 인구 14억의 절반에 가깝다. 이 때문에 시진핑 국가주석도 농촌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부의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것은 교육이다. 농촌에서는 교육에 대한 접근이 더욱더 힘들다.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농민공들의 자녀들은 농촌에 남겨져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이른바 '남겨진 아이들'은 6천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태어날 때부터 도시 주민과 농촌 주민을 엄격히 나눈 후커우(호구) 제도도 큰 문제로 꼽힌다.

인터넷 같은 기술로 중국에서도 민주주의와 자유가 확대할 것이라는 믿음과 달리 중국은 오히려 이런 기술을 이용해 14억 인구에 대한 통제를 철통같이 강화한 '빅 브러더' 사회가 되고 있다. 중국은 방대한 국가적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얼굴인식과 인공지능(AI) 같은 기술로 14억 인구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인터넷 이용부터 통신, 여행 등 모든 행동이 정부의 눈을 피하기 힘들다. 중국에 있는 감시카메라는 약 2억대로 미국의 4배에 이른다. CCTV 수는 2022년에는 6억대를 넘을 것이라는 추산이 있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깔린 CCTV는 얼굴인식 기술과 결합했다. 일부 도시에서는 무단횡단 등 교통위반을 한 시민들을 카메라로 잡아내 이름과 사진을 전광판에 띄우기까지 한다.

홍콩 시위대가 하나같이 마스크를 쓰는 것도 얼굴인식 기술 때문에 체포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광저우, 선전 같은 도시들이 얼굴 스캔으로 개찰구를 통과하고 대학 강의실에서도 얼굴인식으로 학생을 통제하는 등 얼굴인식이 보편화하는 만큼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도 크다. 경찰이 얼굴인식 기능이 있는 스마트안경을 쓰는 도시도 있다. 중국은 시민들이 언제 어디서 감시당할지 몰라 두려워하는 '파놉티콘(감시사회)'을 구현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개인과 기업 등에 사회신용 점수를 매기는 사회신용 시스템도 논란이다.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음악을 듣거나, 무단횡단하는 일 등 생활의 모든 것이 통제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회신용 불량자는 중국에서 비행기나 고속철도도 탈 수도 없다.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중국의 사회신용 시스템에 대해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열린 사회'의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터넷이나 영화·드라마 콘텐츠에 대한 검열도 훨씬 심해졌다.
중국은 미국의 비영리단체 프리덤하우스가 꼽은 인터넷이 자유롭지 않은 나라 순위에서 이란이나 시리아보다 높은 1위다.
외국의 미디어나 소셜미디어는 물론 심지어 곰돌이 푸 캐릭터가 시진핑과 닮았다는 이유로 중국의 '만리방화벽'으로 차단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에서 한국 포털 다음은 접속이 완전히 막혀있으며 네이버는 블로그와 카페가 차단됐고 올해 한동안 전체 서비스에 접속할 수 없었다. 중국의 검열은 해외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짧은 세로 동영상 앱으로 외국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얻은 중국의 틱톡이 홍콩 시위와 톈안먼 민주화운동, 티베트 독립 등과 관련한 동영상을 차단했다는 가디언 보도가 최근 나왔다.

중국이 줄곧 내세워온 '하나의 중국' 원칙도 위협받고 있다.
우선 중국이 1997년 영국으로부터 돌려받은 홍콩에서 '일국양제'가 큰 시험대에 올랐다.
홍콩에서 범죄자 본토 인도 법안 반대 시위가 계속 이어져 중앙정부의 위신까지 땅에 떨어졌다. 점점 반(反)중국 성향이 짙어져 중국 국기가 불에 타거나 짓밟히는 일은 거의 매주 일어난다.
홍콩에 대한 중국의 장악력이 세지자 홍콩 시민들의 반감이 높아진 것이 이번 시위의 바탕에 깔려 있다. 중국은 기존 제도를 유지할 수 있게 고도의 자치권을 약속했지만, 홍콩에서는 중국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건드려선 안 되는 마지노선이라며 병력을 투입하겠다는 으름장까지 놨지만, 국제 금융허브인 홍콩의 위상과 세계인들의 이목 을 의식해 본격적인 무력 사용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10월 1일 건국 70주년을 코앞에 뒀지만, 시위는 줄어든 규모로나마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 홍콩 시위로 대만에서도 중국의 '일국양제'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 대만에서도 일국양제나 중국 본토와의 통일 필요성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많아진 것이다. 재선 도전에 나선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물론 친 중국 성향의 국민당 대선 후보인 한궈위(韓國瑜) 가오슝 시장마저도 일국양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중국은 대만 개인여행 금지령을 내리는 등 대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국방부는 지난 7월 백서에서 "중국은 반드시 통일돼야 한다"면서 본토와 대만을 통일하기 위해 무력 사용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도 올 초 연설에서 대만과의 평화통일을 지향하지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옵션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대만을 국제무대에서 고립시키는 전략도 계속 펴고 있다. 최근 태평양 섬나라인 솔로몬제도와 키리바시가 잇따라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하지만 대만과 홍콩 문제에서는 미국이 버티고 있다. 미국이 홍콩 시위대와 대만에 힘을 실어주는 가운데 중국은 내정간섭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미중 무역전쟁까지 얽혀 중국의 고민은 깊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주요 당사국이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비롯한 중국 당국자들이 한반도 문제를 논할 때 자국을 가리켜 '주요 당사국'이라고 표현한다. 중국 당국자들의 발언은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그만큼 중시하고 있다는 것과 한반도 문제가 중국의 외교와 안보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지난해 6월과 올해 2월 북미 정상이 두 차례 회담을 가지며 6자회담 체제가 유명무실화하면서 한반도 문제 주요 당사국은 러시아와 일본을 뺀 남북미중 4개국으로 압축됐다.

주요 당사국을 자처한 중국은 나머지 당사국들과도 '북한의 혈맹국', '한국의 최대 무역국', '미국의 패권 경쟁자' 등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가 남북미 3자 간 문제에 그치지 않고, 중국이라는 요소를 적극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이 국력 강화를 바탕으로 국제관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역내 주요 문제인 한반도 문제에서도 입김이 세지는 정세 변화가 나타난 셈이다.

중국의 역내 영향력 확대는 한반도 문제에서 '차이나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으로 불리는 북중 간 강력한 동맹관계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원동력이다.

북중은 올해 수교 70주년 맞아 정상외교를 비롯해 분야별 교류를 확대하며 혈맹 국가 간 밀월관계를 대외적으로 더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세 차례 방중에 이어 올해 초 특별열차를 타고 4차 방중을 마쳤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지난 6월 국가주석이 된 뒤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혈맹관계로도 불리는 북중관계는 지난 70년간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기보다 갈등과 화해를 반복해 왔다.

북중관계는 6·25전쟁에서 중국의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로 혈맹관계를 형성한 뒤 중국이 전후 복구를 위해 북한에 3억2천만 달러 규모의 무상원조를 하며 돈독해졌다.

'김일성-마오쩌둥'이라는 두 건국 지도자 간에 맺어진 혈맹관계는 북중 간 '상호방위 조약'을 체결할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다가 1992년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북한이 중국의 의사에 반하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강행하며 양국 관계는 악화했고,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동참함으로써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당시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 김정은 시대의 북중관계가 더는 선대의 순망치한 관계가 아니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이후 2017년까지 한 차례도 중국을 방문하지 않기도 했다.

악화일로이던 북중관계가 변화를 가져온 것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부터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해야 했던 북한은 전통 우호국이자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주요 2개국(G2)인 중국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1, 2차 북미정상회담 전에 중국을 잇달아 방문하며 중국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최근에도 올해 말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설이 제기되고 있다.

북중관계가 더는 선대의 순망치한 관계는 아니지만, 대신 서로를 '전략적 카드'로 활용하는 전략적 혈맹관계로 변한 것이다.

이로써 북한은 북미협상에서 중국을 든든한 뒷배로 세우고 자국에 유리한 협상 조건을 제시할 수 있게 됐고, 중국 역시 무역전쟁 등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북한 카드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한반도 문제에서 북한에 대한 압박과 유화 정책을 적절히 운용하며 비핵화를 끌어내야 하는 한국과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든든한 후견인으로 나선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리스크이자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과 쌍중단(雙中斷·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내세우며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북한을 지렛대로 이용하기를 더 바라는 눈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북한이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로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됐을 때 미국이 강력한 대북제제를 요구하자 중국은 "북핵 문제는 북미 양자 간 문제"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후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중국을 제외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이 거론되자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주요 당사국'을 자처하며 황급히 입장을 바꿨다.

한반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역시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은 사드 문제를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미국의 안보위협에 직면하게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중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한반도가 비핵화 프로세스에 들어선다면 현재 정세는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북미협상에 따른 자국 안보에 끼치는 영향, 한반도 지형 변화로 인한 영향력 약화 같은 변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이어 "중국은 비핵화 과정에 따른 한반도 정세 변화에서 안보와 안전 등 국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참여하려 할 것"이라며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현재까지는 북한이 중대한 외교 사안을 결정할 때 중국에 사전 자문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