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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황제의 용인술

지금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중국의 꿈(中国梦)을 외친다. 그 야심찬 꿈 실현을 위해 시진핑은 어떤 사람을 쓰고 있으며 과연 그인사는 올바른 선택일까.

시진핑 집권 초기 잘 나가는 사람들은 ‘지강신군(之江新军)’의 약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지강(之江)이란 갈 지(之)자처럼 굽이쳐 흐르기에 지강(之江)이란 이름이 붙은 저장(浙江)성을 대표하는 첸탕(钱塘)강을 말한다. 여기선 지강(之江)은 저장성을 뜻하고 지강신군이란 저장 출신 관료를 의미한다.

 저장성은 시진핑이 2002년부터 5년 간 당서기로 근무하며 중앙 무대로의 진출을 준비한 곳이다. 그는 저장에서 경제와 사회, 문화, 법치, 개혁, 당 건설, 반(反)부패 등 치국(治国)을 위한 각종 정책을 설계하고 또 시험했다. 따라서 현재 시진핑의 치국 방략을 이해하기 위해선 10여 년 전 저장 언론에 실렸던 2003년 2월 25일부터 2007년 3월 25일까지 시진핑의 232편의 글을 분석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시진핑은 저신(哲欣)이란 필명으로 저장(浙江)일보 1면의 ‘지강신어(之江新语)’ 코너에 기고했다. 시진핑은 필명은 저장촹신(浙江创新)의 맨 앞과 맨 뒤 글자의 발음이 같은 다른 글자에서 나왔다.


  지강신군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는 올해 46세의 중사오쥔(钟绍军)이다. 시진핑이 2007년 저장성을 떠나 상하이(上海) 당서기로 부임할 때 “샤오중(小钟) 한 명만을 데리고 왔다”는 말을 있을 정도로 시진핑의 신임을 얻고 있는 인물이다. 중사오쥔은 현재 대교(大校) 계급장을 달고 중앙군사위 판공청 부주임이란 요직에 중용되고 있다. 시진핑이 저장성에서 인연을 맺은 인물로는 샤바오룽(夏宝龙) 저장성 당서기와 리창(李强) 저장성 성장, 바인차오루(巴音朝魯) 지린(吉林)성 당서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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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은 저장성으로 가기 전인 1985년부터 17년 동안 샤먼(厦門)과 닝더(寧德) 등 푸젠성 곳곳을 전전했으므로 이곳에서 인연을 맺은 동료가 더 많았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민강구부(閩江舊部)’란 말이 나왔다. 민강(闽江)은 푸젠(福建)성을 대표하는 강이고 구부(舊部)는 옛 부하를 뜻한다. 따라서 민강구부란 푸젠성에서 시진핑과 동고동락한 옛 부하를 가리킨다.
 그러나 시진핑 정권 초반 민강구부의 움직임은 거의 포착되지 않았다. 구설수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90년대 후반 샤먼에 기반을 둔 위안화(遠華)그룹의 초대형 밀수사건이 터졌고 이 때 푸젠 관료 사회가 큰 타격을 받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강구부의 대표적 인물로는 차이치(蔡奇) 중앙국가안전위원회 판공실 부주임과 황쿤밍(黃坤明) 중앙선전부 부부장이 있다. 차이는 황의 푸젠사범대학교 같은 학과 선배이며 이들은 시진핑과 20년 넘는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고 한다. 이밖에 2015년 3월 말엔 왕샤오훙(王小洪)이 베이징 부시장 겸 공안국 국장에 올랐다. 시진핑이 푸저우 당서기로 있을 때 왕은 푸저우 공안국 부국장으로 시진핑을 상사로 모셨다.

​최근 중화권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시진핑의 인맥은 시진핑과 같은 칭화(淸華)대학 출신인데 ‘신청화계(新淸華系)’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장쩌민(江澤民) 집권 시절 주룽지, 후진타오(胡錦濤), 우방궈(吳邦國), 황쥐(黃菊), 우관정(吳官正) 등과 같은 칭화대 출신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잇따라 배출되면서 대청(大淸)시대란 말을 있었기 때문에 이와 구별하기 신(新)이 붙어 ‘신청화계(新淸華系)’라 불린다.
 신청화계의 핵심 인물은 시진핑의 화공학과 동창인 천시(陳希)가 있다. 이 두 사람은 학창 시절 위아래 침대를 쓴 사이라고 한다. 천시는 시진핑의 출세와 더불어 칭화대 당서기에서 교육부 부부장, 랴오닝(遼寧)성 부서기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현재는 중앙조직부 상무 부부장으로 시진핑의 인사(人事)를 주도하고 있다. 천시는 올해 천지닝(陳吉寧)을 환경부 부장으로, 또 후허핑(胡和平)을 산시(陝西)성 부서기로 승진시켰다. 천은 자신이 칭화대 당서기로 있을 때인 2006년 이 두 사람을 칭화대 부총장으로 뽑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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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의 용인술(用人術)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철저하게 아는 사람을 쓴다’는 것이다. 지강신군과 민강구부, 신청화계가 이런 경우이다. 반부패 투쟁의 선봉장인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는 시진핑이 지식청년으로 있을 때 한 이불을 덮고 자며 꿈을 나눈 관계다. 중국 경제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류허(劉鶴)는 시진핑의 베이징 101중학 동창이다.  시진핑 용인술의 또 다른 특징은 ‘시진핑의 사람들’이 지극히 낮은 자세로 처신한다는 것이다.

시진핑 용인술로 인해 ‘시자쥔(習家軍)’ 형성되고 있다. ‘시자쥔(習家軍)’은 한마디로 시진핑 집안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는 잘 아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기용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이나 국가가 아닌 한 개인에 충성을 맹세한 인물들로 중국 정가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이야기다. 다른 측면에서 이는 보면 새로운 파벌 형성으로 국가 조직이 점점 경직되고 이로 인한 감시 받지 않는 권력으로 인해 새로운 부패층을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시진핑 정권 말기가 가까워지면 이에 저항하는 세력이 생기고 이때가 되면 ‘시황제’라는 소리를 듣는 시진핑으로서도 어쩔 수 없이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죽지세로 권력을 강화하면서 개혁을 밀어붙이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심각한 내부 반발에 직면했음을 시사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특히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등 공산당 원로들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의 갈등이 깊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국영 CCTV와 당 이론지 광명일보 사이트에는 20일 ‘개혁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고, 신념과 강인성을 유지하자’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칼럼은 “정치, 경제, 사회, 군사, 외교에 이르기까지 각 방면에서 추진되던 광범위한 개혁이 중대 국면에 처해 있으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궈핑(國平)이란 필명으로 쓰인 이 칼럼은 “개혁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반대하는 힘은 완고하고 맹렬하며, 복잡하고 기괴하다”면서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을 초월하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15년 8월 21일 중국 관영 매체들이 공산당의 주요 문제를 언급할 때 필명으로 칼럼을 게재한다고 설명하면서 이번 칼럼의 강도는 이례적으로 강하다고 분석했다. 쉬야오퉁(許耀桐) 중국 국가행정학원 교수는 “반부패 운동의 강도가 약해지고 개혁이 반대에 부딪혔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칼럼이 등장했다”면서 “칼럼의 논조는 매우 분노한 것처럼 읽히며, 핵심 지도부가 개혁 반대세력에 우려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개혁에 대한 저항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은퇴 지도자그룹, 권력이 약화되고 반부패에 불만인 당 간부와 관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현직 지도자들이 1년에 한 차례 모이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최근 종료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이번 칼럼이 등장한 것도 주목된다. 정치분석가 장리판(章立凡)은 “베이다이허 회의서 어떤 합의도 이뤄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며 “각각의 그룹들이 자신들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밍(張鳴) 인민대 교수는 “개혁이 후퇴할지도 모른다”고 진단했다.​

인민일보는 앞서 8월 10일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은 채 은퇴한 지도자들을 언급하면서 이들이 권력에 집착하고 당내 균열을 일으킨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중화권 매체들은 장쩌민이 자신의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시 주석에 대항하고 있으며 시 주석이 장쩌민에게 최후통첩을 보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