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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산층의 힘, 중국제품 품질개선에 나서다

​13억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작년 1인당 평균 GDP(국내총생산·IMF 기준)는 7990달러다. 그러나 '소득 8000달러 중국' 잣대로는 고급스러운 입맛과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이 형성돼 구(舊)경제와 새로운 소비층이 섞이는 '하이브리드 중국 경제'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중국인들이 쇼핑을 위해 즐겨 찾는 홍콩은 분유 품귀 현상으로 골머리를 앓다가 1인당 분유 두 통까지만 살 수 있게 제한을 뒀다. 일본에서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매장을 습격하다시피 물건을 싹쓸이 쇼핑하는 광경을 두고 '바쿠가이(爆買い)'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10년 전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전 세계 대형 할인마트의 진열대를 채웠다면, 이제는 '세계 최대의 소비자'로 변신해 전 세계 쇼핑몰의 진열대를 거덜내고 있다.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해 중국의 중산층이 1억900만명으로 처음으로 미국의 중산층 수(9200만명)를 넘어섰다고 분석했다. 크레디트스위스가 정의한 중산층은 5만~50만달러의 여유 자산을 보유한 계층이다. 2012년 보스턴컨설팅그룹 분석에 의하면 중국에서 연간 소득이 2만달러를 넘는 계층은 1억2000만명에 달한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중산층 대국이 된 것이다.

빈부 격차 논란을 우려해 쉬쉬하던 중국 정부도 중산층의 존재를 공식 인정하고 있다. 가오후청(高虎城) 중국 상무부장은 지난 2월 기자회견에서 "현재 중국에서 중·고소득층이 형성되고 있고, 이들 계층이 원하는 소비 수준은 일반적인 대중 수요에 머물러 있지 않다"고 했다.

중국이 성장률 6~7%대의 '중속 성장'을 해도 이 같은 중산층의 성장은 멈추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작년 중국의 GDP는 11조달러에 달한다. 연 6~7% 성장하면 한 해에 6600억~7700억달러 규모의 경제가 추가되는 셈이다. 매년 네덜란드(GDP 7400억달러), 스위스(6600억달러)만 한 경제가 하나씩 생기는 셈이고, 2년마다 대한민국(GDP 1조3929억달러) 하나만큼 중국의 경제 덩치가 불어난다.

중국이 만드는 것과 중국인이 원하는 것 사이의 큰 간극을 어떻게 메꾸느냐가 중국의 새로운 고민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이지만, 정작 점점 더 많은 중국 소비자가 중국산 제품을 외면한다.


선전에서 직장 다니는 20대 여성 천웨이씨의 일상을 보면 외국산 선호가 중국인들 사이에 얼마나 만연한지 알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천씨는 미국산 키엘 세안크림으로 얼굴을 씻고, 한국산 려 샴푸로 머리를 감은 뒤 일본제 파나소닉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출근한다. 옷과 가방, 신발 등 몸에 걸치는 것들은 대부분 인터넷 쇼핑을 통해 한국에서 구입한 것이고, 생리대도 한국이나 일본 제품만 쓴다고 했다. 천씨는 "중국도 좋은 제품을 만들 능력이 충분한데, 좋은 물건은 다 수출하고 남은 것들만 중국에 팔기 때문에 중국산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말했다.

자국 제품에 대한 불신은 2000년대 이후 잇따라 터진 가짜 분유 사건 등을 계기로 중국 소비자들의 뇌리에 뿌리 깊게 박혔다. 중국 관광객이 해외에서 쓴 돈은 2010년 550억달러에서 2014년 1650억달러로 2배가량 늘었다. 작년 중국의 관광수지 적자는 1700억달러로, 중국의 한 달 수입액 규모와 맞먹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 의류·신발·화장품·기저귀 등 수입 물품에 대한 관세를 절반 가까이 인하했다. 수입품을 사더라도 기왕이면 중국 내에서 돈을 쓰라는 얘기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중국에서 팔리는 수입품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짝퉁 제품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중국산을 외면하는 또 다른 이유는 품질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비데와 볼펜이 화제가 됐다. 리커창 총리가 "중국 기업들도 비데를 생산하지만 인민들은 일본 여행을 가서 비데를 사재기한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볼펜 수출국인데 정작 볼펜촉은 외국에서 수입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중국 볼펜 공장 사장들은 국영방송 CCTV가 진행하는 토론회에 나와 다른 패널들로부터 "왜 볼펜촉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느냐"는 질타를 받고 고개를 숙였다. 베이징청년보는 "중국 소비자들이 이제 싼 가격보다는 좋은 품질에 더 신경 쓰는데, 기업들은 여전히 저가 제품 생산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비판했다.

신뢰와 품질이라는 두 개의 높은 장애물을 중국은 언제쯤 뛰어넘게 될까. 소비재 분야에서도 예상보다 빨리 중국이 이 장애물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있다. 막강한 자본력을 기술 개발과 홍보, 인수 합병에 투자하면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화웨이나 샤오미가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삼성과 애플에 위협적인 제품을 내놓은 것이 그러한 사례다.

하지만 중국산 제품이 '싸구려' '저질' '짝퉁' 이미지를 벗어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 축구팀이 돈을 쏟아붓는다고 하루아침에 명문 구단이 되지 못하듯, 중국이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의견이다.
최근 중국 소비시장에선 '소중(小衆)'이라는 단어가 부상한다. '대중(大衆)'에 반대되는 의미로, 천편일률적인 제품보다는 소비자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하는 제품을 선호하는 트렌드를 말한다. 선진국형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소비 행태는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2만달러는 되어야 나타나는데, 온라인, 소셜미디어, 모바일 등의 환경 변화가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만나면서 1인당 국민소득 8000달러에 불과한 중국 소비 시장에서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대부분 중국산 제품은 과거 저가 마케팅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높아진 중국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 기업들이 정작 1억명도 넘는 중국 중산층의 소비 붐과 고급 제품 소비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구(舊)경제와 신세대 소비자가 뒤섞인 '하이브리드 중국 경제'의 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