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라면시장에서 최고 브랜드를 자랑해온 대만 캉스푸(康师傅)가 1월 1일 회사 청산을 결정했다.
캉스푸는 중국인들에게는 팡밴멘(方便面)이라는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한 브랜드로, 그리고 무엇보다 시진핑 정권이 들어선 이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저우융캉 쿠데타 사건이라는 정치적 의미로도 읽히는 기업이었다.
웨이잉저우(魏应州) 4형제가 1958년 대만에서 식용유 제조회사로 시작한 캉스푸의 모기업 딩신(顶新)그룹은 1989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후 1992년 천진에 캉스푸 라면공장을 설립, 캉스푸 우육면이라는 혁신적인 제품으로 중국인의 입 맛을 장악한 후 중국과 대만에서 편의점, 패스트푸드체인, 부동산개발업에도 다양한 업태로 진출했다.
하지만 캉스푸가 모든 중국인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된 계기는 바로 2012년 3월 당시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공안, 검찰, 법원, 무장 경찰, 국가안전부 등을 총괄하는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를 맡고있던 저우융캉(周永康) 덕분이었다. 2012년 3월 19일 저녁부터 20일 새벽 관공서가 모여있는 베이징 창안제(长安街)가 무장경찰과 장갑차들에 의해 통제되면서 인터넷마저 불통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문과 함께 주요 권력자들의 이름들의 검색도 이루어지지않았다. 그렇치만 눈치빠른 중국 네티즌들이 대안으로 찾아낸 단어가 바로 '캉스푸'였다. 무장경찰을 관할하던 저우융캉의 마지막 단어 '캉(康)'을 지닌 '캉스푸'가 저우융캉을 대체하여 네티즌들 끼리 웨이보를 통해 베이징의 정변 소식을 주고 받은 것이다. 당시 벌어졌던 보시라이(薄熙来) 충칭시 서기 실각사건때 보시라이를 정법위 후계자로 생각하고 끝까지 보를 지지하며, 결국 실패한 쿠데타까지 벌였던 큰 호랑이 '저우융캉'상무위원 덕분에 전 중국 인민들이 '캉스푸'란 단어를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2014년 대만에서 식용유 제조에 폐식용유을 넣어 만들었다는 혐의로 기소된 뒤로 캉스푸는 더이상 라면을 생산 판매하지 못하게 되었고 끝내 올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이런 추억의 회사가 모바일 외식배달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확산에 따라 문을 닫게되는 것에 아쉬움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나 먹거리로 장난치는 악덕기업이라는 인상이 워낙 강한 바람에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의 분위기가 더 깊게 보인다.
'政'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안관계의 시작 (0) | 2017.02.12 |
---|---|
나에게는 적이 없다. (0) | 2017.02.07 |
올 해 중국에서 벌어질 권력투쟁의 결과는 (0) | 2017.01.02 |
중국 정부도 블랙리스트 만들어 (0) | 2017.01.01 |
성공인가 실패인가, 중국의 보복외교 (0) | 2016.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