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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관계의 시작

1949년 10월 1일 베이징의 천안문 망루에 높이 올라선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하는 그 순간, 마오쩌둥의 오랜 라이벌이었던 장제스는 머나먼 타이완섬에서 속앓이를 해야했다. 북벌로 중국의 군벌세력을 규합하고 명실 공히 중국의 지배자로 전세계에 인정받던 장제스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그 이후 벌어진 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남동부의 작은 섬 타이완으로 쫓겨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장제스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전 중국의 지배자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고 대륙과 타이완의 분리를 주장하는 자들은 가혹하게 탄압했다. 그리고 베이징에 앉아 있던 마오쩌둥도 마지막 순간까지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라고 굳게 믿었다.

군사적 대결이 끝난 이후 이 두 세력의 싸움은 주로 국제외교무대에서 논리싸움으로 이어졌고 양측은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근거를 대면서 자신이 중국의 적통임을 지금도 강조하고 있다.


타이완에 도착한 장제스와 그의 부인 쑹메이링. 이때만 해도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대륙에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중국과 타이완 양측이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사실은 ‘중국은 하나다’ 라는 것이고, 이는 1992년 중국과 타이완의 당국자가 홍콩에서 만나 합의한 바 있다. 이 합의를 ‘92共識’이라 이르는데, 그 내용은 ‘양측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받아 들이되, 그 하나의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가 누구인지는 각자의 해석에 맡긴다’ 라는 것이다. 현재 타이완에는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이 있지만 이들의 논거는 이 글의 범위를 뛰어넘기 때문에 생략한다.

그리고 그 ‘각자의 해석’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국제사회는 물론 상대편 및 자신들 내부에 대해서 굳건이 유지되고 있다.

타이완 측의 논리는 1933년에 체결된 몬테비데오조약에서 출발한다. 몬테비데오조약은 미국의 주도에 의해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회의에서 결정되어 체결되었는데, 이 조약은 국가의 성립요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성립요건은 1) 고정적인 인구가 있을 것, 2) 명확히 정의된 영토가 있을 것, 3)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정부가 있을 것, 4)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맺고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정의되었다.


이 조약이 체결될 당시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는 장제스의 난징정부였으므로 이미 1933년 난징정부는 국제적으로 승인 받았고, 그 이후 중화민국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있었으며 누구에 의해서도 ‘대체’ 되거나 ‘계승’ 된 사실이 없다는 것이 타이완 측의 주장이다. 또한 1949년 국민당의 난징정부가 국공내전에 패해 타이완으로 옮겼지만 새로 성립된 정부는 이전의 난징정부를 그대로 이어 받았고 그 체제 및 법률도 모두 그대로라는 논리다.

또한 타이완의 입장에서 국공내전과 관련해서는 아직 평화조약이 맺어진 적이 없으므로 국공내전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봐야 하며 현재 중국대륙은 베이징정부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령’ 당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따라서 중화민국은 중국을 대표하는 법적정당성을 확보한 국가이며 (de jure sovereign state) 중화민국의 영토는 대만은 물론 중국대륙과 홍콩, 마카우를 포함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UN 에서 타이완을 축출하고 상임이사국으로 가입이 확정된 순간 환호하는 중국 대표단


이에 반해 중국정부의 논거는 유엔총회의 결정과 현실적 상태에 주목한다.

베이징의 중국정부는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으로 중화민국의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의 지위를 잃고, 국제법 상 널리 인정되는 국가승례의 이론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을 대표하는 지위를 이어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주장에 의하면 1949년 9월 30일까지 난징정부가 중국의 대표였다는 법적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국가승계를 인정할 경우 난징정부가 대외적으로 맺은 조약이나 부채 등은 모두 인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더불어 베이징정부는 1971년 10월 25일 유엔총회에서 가결된 Resolution 2758호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로서의 지위를 얻은 사실을 명시하면서, 타이완섬은 1943년 카이로선언에 의해 중국에 속하는 영토라는 것을 전세계가 인정하고 당시 카이로선언에 참석한 장제스총통으로 대표되는 중화민국 또한 이를 인정했다는 사실을 적시한다.


타이완이 전가의 보도처럼 주장하고 있는 몬테비데오조약과 관련해서도 베이징의 중국정부는 ‘몬테비데오조약은 19개의 국가들만 참가한 것이었으므로 당연히 유엔의 결정이 우선한다’라고 하면서 ‘모든 것을 양보해서 몬테비데오조약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타이완은 현재 21개의 국가와 수교하고 있는데 그치므로 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5년 중국정부는 ‘반분리법’을 공표하면서 북경정부는 대만에 대하여 다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역을 사용하지 않는다’ 라는 말보다 ‘다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다.
즉, 타이완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사건이 일어나거나, 타이완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나거나, 모든 평화적인 통일방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중국정부는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3가지 조건과 관련하여 미국 측에서는 ‘타이완이 핵무장을 하게 되면 위의 세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것 아닌가?’ 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북경 정부는 NCND (No Confirm No Denial) 정책에 의하여 일체의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양자의 논리싸움은 단순한 영토싸움을 벗어나 자존심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며 이 상황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