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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국"정책에서 중국은 과연 어디인가

외교에서는 말장난처럼 비쳐지는 미묘한 표현의 차이가 때로는 메시지를 담는다. 성명을 함께 발표한 나라간 표현의 차이를 꼼꼼히 들여다봐야하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한 9일 백악관은 45분간에 걸친 통화 내용을 웹사이트에 간략히 올렸다. “시 주석의 요구에 따라 ‘하나의 중국’ 정책을 존중(honour)하기로 합의했다”고 적시했다. 

중국 외교부도 이날 통화내용을 정리해 웹사이트에 올렸다. 하지만 ‘존중’이라는 표현 대신에 ‘펑싱’(奉行, 명령을 받들어 시행한다)을 사용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영문판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을 ‘고수’(adhere to)하기로 했다고 표현했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늘 미국에 ‘하나의 중국’ 정책의 준수를 요구해왔지만 미국은 존중이나 지지한다는 수준으로 대응해왔다”며 “이번에도 미묘한 차이를 남겨뒀다”고 말했다.

존중은 해도 준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일까. 차이밍옌(蔡明彦) 대만 중싱(中興)대 국제정치연구소 교수는 “ (백악관 성명에서 하나의 중국 앞에 수식어로 사용된) '우리의'라는 말은 미국과 중국이 생각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 사이의 차이를 강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과 홍콩언론들이 트럼프의 ‘하나의 중국’ 정책 존중 발언에도 대만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는 여지를 뒀다고 분석하는 배경이다. 

사실 미국은 역대 정부에서도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차이를 시사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신화통신은 10일 미국과 중국 지도자간 신년 통화가 적극적인 신호를 내보냈다는 논평을 통해 며칠 뒤면 양국이 서명한 상하이 코뮤니케 45주년이 된다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차 천명한 것은 트럼프가 미국 역대 정부가 견지해온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1972년 2월27일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상하이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에 서명했고, 다음 날 이를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양국 정부가 발표한 성명을 들여다보면 미묘한 차이가 보인다.

중국측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이다. 대만은 모국에 귀속된 지 오래된 일개 성(省)이다.”라고 발표했다. 반면 미국측은 “대만 해협 양측의 모든 중국인이 오직 하나의 중국에 속해있으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주장을 인정한다”면서도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 정부라는 표현 대신 중국(China)이라고만 적시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 관계법(TaiwanRelations Act)을 제정했다.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한 미국이 대만카드를 쓸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둔 것이다. 1982년엔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대만이 요구한 ‘6개 보장(Six Assurances)’을 인정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 후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통화를 하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며 ‘중국 달래기’에 나선 당시 버락 오바마 정부도 집권 8년간 3차례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고 작년말에는 대만과의 고위급 군사교류를 강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 존중 발언으로 중국에 양보하거나 선심쓰는 것과 같은 모양새를 연출했지만 “트럼프가 단지 미국 정부의 원래 위치에 돌아온 것 뿐이다”(스티브 창 SOAS 차이나 국장) “다투되 깨지는 않는다는 의미의 '투이불파'(鬪而不破) 궤도로 복귀했다”(홍콩 경제일보)는 분석이 나올만 하다. 

당장 트럼프는 중국에 환율 공세를 펼 태세다. 시 주석과 통화한 다음날인 1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중간 환율문제에 대한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우리 모두는 평평한 경기장에 있게 될 것”이라며 “무역과 다른 것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답했다. 

중국과의 대응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길임을 미국의 대중 정책에서 보게된다. 우리의 차기 지도자도 중국과의 협상에서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는 카드를 남겨두는 전략적 모호성을 취할 필요가 있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