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수도권인 징진지(京津冀 : 베이징·톈진·허베이의 약칭) 발전을 위해 허베이성에 '슝안(雄安)신구'를 설립한다고 1일 발표했다. 슝안신구는 징진지 트라이앵글내 허베이 슝셴(雄县), 롱청(容城), 안신(安新) 등 3개 현(县)에 걸쳐있으며 배후여건에 비해 아직 개발수준이 낮아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슝안신구는 선전 경제특구와 상하이 푸둥신구에 이은 중국이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3번째 특별 신도시다.
중국 허베이성 슝(雄)현에 사는 스산사오(28)는 2년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베이징에 사는 여자친구의 부모가 “내 딸이 시골에서 사는 꼴을 볼 수 없다”며 신혼집을 베이징에 차릴 것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슝현은 베이징에서 불과 160㎞ 떨어진 곳이지만 플라스틱 공장 몇 개가 고작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부모님이 사는 고향집을 팔아 봤자 베이징에서 월세 얻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2일 국무원이 슝안(雄安)신구 개발계획을 발표한 이후 스산사오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헤어졌던 여자친구에게 다시 사귀자는 연락이 왔고, 고위층 자제들의 결혼을 주선하는 ‘뚜쟁이’들도 접근해 오고 있다. 스산사오는 베이징 유력지 신경보에 “신분 상승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느냐”며 “드넓은 우리 집 미나리꽝에 앞으로 뭐가 들어설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슝현 옆 동네인 안신(安新)현에 사는 청년 장윈하이는 2003년 별생각 없이 슝현과 안신현의 앞 글자를 따 ‘슝안닷컴’(xiongan.com)이라는 도메인을 등록했다. 이후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신구 개발계획과 함께 돈방석에 앉았다. 슝안닷컴 도메인을 188만 위안(약 3억 1200만원)에 판 것이다.
슝안신구가 완공되면 베이징이나 상하이처럼 신규 차량 제한을 위해 번호판 추첨제가 도입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차량 번호판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번호판을 미리 사 놓으면 나중에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슝안신구가 대체 뭐기에 온 중국 대륙이 들썩일까.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경제특구(7개)·개발구(219개)·기술산업개발구(145개)·자유무역구(11개)·신구(18개) 등 수많은 특구를 건설했다. 슝안신구는 19번째 국가급 신구여서 그리 새로운 게 아니다. 그러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천년대계’ 프로젝트가 여기에 담겨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중국 국무원이 지난 1일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슝현·안신현·룽청(容城)현 세 지역을 묶는 슝안신구는 처음엔 100㎢ 면적으로 시작해 홍콩의 2배, 서울의 3.5배인 2000㎢까지 확대될 계획이다. 베이징의 경제 기능을 분산해 지역내총생산(GRDP)이 베이징의 1%에 불과한 이곳을 성공적으로 개발한다면 지역 균형발전과 함께 대도시 인구 과밀화와 스모그까지 완화할 수 있다.
국무원은 발표문에서 슝안신구가 ‘시진핑의 도시’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슝안신구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 내놓은 중대하고 역사적인 전략적 선택으로 국가의 천년대계이자 국가 대사”라고 선언한 것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슝안이 성공하면 시진핑의 유산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 주석의 의지는 곧바로 기업을 움직였다. 시노펙, 알리바바, 동방항공 등 중국 대표 기업 40여곳은 이곳으로 본부나 사업부를 이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롄퉁 등 3대 이동통신사는 슝안에 5세대(5G) 통신망을 최초로 깔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10년 후 슝안신구의 인구가 670만명에 이르고 누적 투자액이 2조 4000억 위안(약 4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성공한 특구는 선전과 상하이 푸둥지구다. 선전특구는 덩샤오핑(邓小平)이 시작했고, 푸둥신구는 장쩌민(江泽民)이 주도했다. 작은 어촌이었던 선전은 개혁·개방의 시작점이 된 이후 단시간에 중국 4대 도시로 컸고 지금은 전 세계 창업의 메카로 부상했다. 선전시 GRDP는 1979년 1억 7900만 위안에서 지난해 1조 9500억 위안(약 324조원)으로 1만배가 됐다. 상하이의 시골 마을 푸둥신구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금융도시가 됐다. 1990년 푸둥의 GRDP는 60억 위안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8732억 위안(약 145조 822억원)으로 약 144배가 됐다.
시 주석의 야심은 슝안신구를 선전과 푸둥을 뛰어넘는 21세기형 친환경·생태·스마트도시로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 주석은 치밀하게 계획하고 과감하게 실행했다. 최근 신화통신은 국가 기밀이었던 슝안신구 추진 과정을 공개했다.
징진지(京津冀) 지역 협력과 베이징 비수도 기능 이전의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04년이었다. 그해 2월 12일 베이징 남부에 위치한 랑팡시에서 징진지 지역 대표들이 모여 협력을 강화하는 ‘랑팡공식’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 10년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강한 리더십이 없었고 3개 지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대반전은 시 주석 집권 이후인 2014년 2월 26일 일어났다. 시 주석이 직접 좌담회를 주최하고 “베이징의 도시병을 해결하지 못하면 중국의 미래도 없다”며 ‘2·26 담화’를 발표한 것이다. 이후 14개월 만인 2015년 4월 30일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징진지 발전을 위한 ‘징진지 협력발전 규획 요강’을 공개했다. 요강에는 ‘하나의 핵(一核, 베이징), 두 개의 도시(双城, 베이징·톈진), 세 개의 축(三轴, 베이징~톈진, 베이징~바오딩~스자좡, 베이징~탕산~친황다오), 4개의 구(四区, 동부연안발전구, 남부기능확대구, 서북부생태함양구, 중부핵심기능구)’의 징진지 도시권의 기본 틀이 제시됐다. 슝안신구의 밑그림이 이때 그려졌다.
이듬해 3월 24일 시 주석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개최하고 슝현·안신현·룽청현을 잇는 트라이앵글 지역을 신구 개발지로 최종 결정한 뒤 슝안신구라고 명명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수도 베이징은 지금 역사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며 “대도시병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슝안신구를 선전과 상하이 푸둥을 잇는 제3의 계획도시로 성공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이후에도 슝안신구 계획을 공개하지 않은 채 은밀하게 계획 선포 이후 전광석화처럼 진행할 부동산 투기 금지 대책, 이주 대책, 호적 동결 등의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시 주석은 선전에서 잔뼈가 굵은 쉬친(許勤) 선전시 당서기를 허베이성 부서기 겸 대리성장으로 내정하고 선전 개발 경험을 슝안에 접목시키라는 특명을 내렸다.
올해 2월 23일 시 주석은 슝안신구를 처음 방문해 “예전에 허베이성에서 일할 때 꼭 한번 오고 싶었는데 이제야 오게 됐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1982년부터 4년 동안 허베이성 정딩(正定)현 당 부서기와 서기를 지냈다. 시 주석이 30여년 전 권좌에 올랐다면 베이징을 대체할 새 수도를 건설하겠다고 결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슝안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시 주석이 천명한 생태·환경도시라는 슬로건과 달리 벌써부터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중국의 한 환경단체는 지난달 18일 슝안신구에서 100㎞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축구장 46개 넓이의 거대한 ‘썩은 호수’ 두 개를 발견해 폭로했다. 슝안신구 한가운데 자리잡은 중국 북부 최대 습지인 바이양호 오염 문제는 더 심각하다. 현재 주변 20만∼30만명의 인구도 감당하지 못해 오염에 시달리고 있는 바이양호 일대에 인구 650만명의 신도시가 들어서면 ‘환경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선전과 푸둥지구를 건설할 때와 달리 중국의 경제·사회적 여건이 크게 변한 것도 슝안의 불확실성을 높인다. 중국은 더이상 국가가 하루아침에 원주민의 주거권을 박탈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며, 자본도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실제로 중국이 최근 10년간 야심 차게 추진한 국가 신구와 특구는 대부분 실패했다. 허베이성 차오페이뎬신구는 아예 유령도시가 됐다.
SCMP는 “선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홍콩 자본이 선전으로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라며 “슝안신구는 오히려 고립될 우려가 있다”고 예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부의 힘이 아무리 커도 시장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신도시 건설은 실패할 것”이라면서 “공산당 권력만큼 성장한 시장 권력이 시 주석의 뜻대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2일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시 주석은 최근 쉬쾅디(徐匡迪·79) 전 상하이시장에게 슝안신구 개발 책임을 맡겼다.
쉬 전 시장은 현재 징진지(京津冀) 협동발전전문가자문위원회 조장이자 중국공정원 주석단 명예주석의 직위를 갖고 있는데 시 주석에 의해 슝안신구 사무 수석고문으로 지명됐다.
SCMP는 시 주석이 쉬 전 시장에게 슝안신구 개발책임을 맡긴 것이 부처와 지방 당국의 기득권에서 자유로운 목소리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관측했다. 쉬 전 시장은 1995∼2001년 상하이시장을 역임한 뒤 지방 권력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쉬 전 시장이 2001년 말 파리 출장 때 해임을 급작스럽게 통보받은 것을 두고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의 측근이자 자신의 정적인 황쥐(黄菊) 당시 상하이 서기에 밀린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한때 부총리 물망에 올랐던 쉬 전 시장은 이후 중국공정원 원장으로 선임됐다가 2010년 물러났으며 2013년에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协) 부주석도 퇴직했다.
쉬 전 시장이 상하이의 낙후된 푸둥(浦东) 지역을 금융 허브로 변신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점도 슝안신구 개발을 맡게 된 이유로 관측된다. 시 주석은 중앙으로 진출하기 전인 2007년 상하이시 서기 재직 당시 1990년대 상하이의 미래를 내다본 쉬 전 시장의 선견지명에 감탄한 적 있었다는 말도 나온다. 쉬 전 시장은 1990년대 푸둥국제공항 건설 계획을 승인할 때 당시 상하이에 필요한 수요보다 훨씬 크게 짓기로 결정하는 등 혜안을 보였다.
그는 당시 대형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상하이가 아기와 같으며 점점 더 커질 것"이라며 "옷이 미래에 맞도록 크게 만들지 않으면 계속해서 옷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구젠광(雇建光) 상하이 자오퉁(交通)대 공공정책연구소 주임은 "쉬 전 시장 재임 시절 푸둥이 큰 변화를 겪었다"며 "쉬 전 시장이 푸둥의 발전에 엄청나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쉬 전 시장은 재임시 상하이 주민의 1인당 주거 공간을 50% 가까이 증가시키고 교통 기반시설을 개선하는 등 민생 개선에도 힘썼다. 그는 황푸(黄浦)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신설하고 악취가 나는 우쑹(吴松)강도 정화했다.
쉬 전 시장과 근무한 저우한민(周汉民) 상하이 정협 부주석은 "쉬 전 시장이 현명하고 강직한 인물이며 항상 미래에 대해 열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쉬 전 시장은 여전히 상하이 주민들로부터 관료주의적이지 않고 경제에 정통했으며 영어가 유창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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