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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에 단교당한 카타르

걸프가 심상찮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7개국이 카타르와 단교를 전격 선언했다. 카타르 국왕의 이란 옹호 발언 때문이었다. 카타르 측이 가짜뉴스라고 즉각 반박했음에도 이란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사우디로서는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형제 국가끼리 웬 단교인가 싶지만 사우디와 카타르의 뿌리 깊은 상호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슬람 수니파 아랍국 카타르(Qatar)는 길게 튀어나온 반도 지형 때문에 ‘걸프의 송곳’으로 불린다. 길이가 짧은 인도식 칼 카타르(katar)와 발음이 비슷해 ‘걸프의 단도’라는 별명도 지녔다. 인근 산유국들이 ‘큰형’ 사우디의 위성국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개혁·개방에도 적극적이다. 1971년 영국 보호령에서 독립할 때부터 아랍에미리트(UAE) 7개 부족의 연합국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섰다.

이런 독자 행보 탓에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마찰을 자주 빚었다. 같은 수니파 국가이면서도 2011년 리비아 내전 때 이슬람주의 민병대를 지원하며 사우디와 대리전을 치렀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실용외교를 펼치는 과정에서 사우디와의 갈등은 더 커졌다. 카타르의 친(親) 이란 정책은 결국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7개국의 외교단절을 불렀다.

아라비아 반도 6개 왕국(GCC) 중 카타르는 별종이었다. 특히 맏형을 자임하는 사우디의 눈에는 삐딱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달은 1995년 6월에 났다. 당시 카타르 왕세자 하마드가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 칼리파 국왕을 쫓아냈다. 비슷한 전력이 있는 오만을 제외한 GCC 국가들은 발칵 뒤집혔다. 감히 아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몰아낼 수 있느냐며 흥분했다. 승계 문제에 민감한 사우디가 앞장서서 비난했다. 하지만 전방위 압박에도 하마드는 결국 왕위에 올랐다. 이후 적극적 가스 개발과 경제 개혁을 통해 카타르는 중동에서 일인당 국민소득 최고 국가로 도약했다. 나아가 하마드 국왕은 4년 전, 서른세 살짜리 젊은 왕자 타밈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젊은 카타르 시대를 선언했다. 파격적이었다. 선왕이 죽어야만 왕위가 계승되는 노쇠한 이웃 왕국들엔 카타르의 행보가 불편했다.

이제 사우디에 고분고분하던 옛 카타르는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카타르 왕실이 세운 알자지라 방송이 눈엣가시였다. 알자지라는 영국의 BBC를 지향하며 해외 민완 기자들을 스카우트했고, 보도 금기를 해제했다. 사우디 등 인근 왕실의 부패와 스캔들이 전파를 탔다. 속보와 탐사보도로 알자지라는 금세 아랍 최고의 신뢰받는 방송이 되었다. 그러나 구중궁궐에서 약점을 숨겨왔던 인근 왕정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소유주 카타르 왕실에 대한 불만이 점증한 이유다.

한편 사우디 동쪽에 비쭉 솟아나온 반도국가 카타르는 자신을 마뜩잖아하는 사우디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추구하던 일본처럼 카타르도 걸프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세계를 겨냥하며 각종 행사 유치에 나섰다. 2006년 아시안게임, 2012년 기후변화당사국회의를 개최했으며, 2022 월드컵을 열게 된다.

카타르의 역내 외교는 종횡무진이었다. 먼저 미국과 긴밀한 협력을 맺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반미 감정으로 인해 사우디 다란과 담맘 주둔을 거부당한 미 공군을 자국 우데이드 기지로 받아주었다. 미 중부군 현지사령부도 유치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파격적이랄 만큼 가까웠다. 얼핏 보면 서방 친화적 국가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왕실은 힘의 판도가 이슬람으로 수렴되고 있음에 주목했다. 향후 위험이 될 이슬람 요소를 근절할 수 없다면 차라리 친구가 되려는 전략으로 나섰다. 왕실은 이슬람 급진주의 보호를 자임했다. 이집트 출신 유수프 카라다위 등 급진주의자들의 망명을 받아주었고, 특히 걸프 왕정 타도에 나선 무슬림형제단을 지원했다. 인근 왕국들은 카타르에 분노했다. 주변의 반발에 아랑곳하지 않는 카타르는 역내 급진 세력인 하마스, 헤즈볼라와 탈레반을 지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에 공공연히 이란의 평화적 핵개발 권리를 지지한다는 발언도 던지곤 했다. 한마디로 카타르 외교는 튀었다. 여타 GCC 왕국들과는 달리 좌충우돌하면서 다른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이 사태의 배경에는 미국의 중동정책 변화도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사우디 방문에서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목하자 전임 오바마 대통령과 소원했던 사우디가 기다렸다는 듯이 중동 주도권 되찾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도 달갑지는 않은 상황이다. 카타르의 고립은 군사·외교적으로 손실이기 때문이다. 미국 공군기지가 있는 카타르는 미국 주도의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필수적인 동맹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돌발 사태가 아니다. 카타르에 대한 사우디의 구원(舊怨)이 반영된 사건이다. 역내 최대 위협인 이란이 부상하는 마당에 밉상 카타르가 이란을 공개적으로 편들자 손보기에 나선 것이다. 카타르는 기로에 섰다.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이 고립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요행히 잘 해결된다 해도 카타르의 도발적 외교 전략에 변화가 없는 한,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걸프의 반항아 카타르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일까? 아니면 역내 균형과 안정을 해치는 훼방꾼일까?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우리도 편할 수 없다. 한국의 원유 최다 수입국은 사우디이고 그 다음이 이란이다. 카타르에서는 가장 많은 액화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다. 이 와중에 UAE에서 이라크와 친선경기를 치르고 카타르로 이동해야 하는 월드컵 대표팀의 발도 묶였다. 마침 3차 중동전쟁 50주년이어서 더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