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중국 기업에서 발생한 회사채 채무불이행(디폴트)이 올 들어 급증하고 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중국 회사채 디폴트 금액이 512억위안(약 8조6000억원)으로, 작년 전체 디폴트 규모인 175억위안의 3배에 이른다. 이 같은 추세라면 중국 기업 디폴트 규모는 금액 기준으로 사상 최대였던 2016년의 539억위안을 훨씬 뛰어넘을 전망이다.
중국 기업들의 잇단 디폴트는 그동안 과도한 부채에 의존해 성장해 온 중국 기업들의 성장세가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중국의 기업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70% 수준으로 100% 안팎인 한국 미국 일본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중국 기업들 부채가 급증하자 중국 정부가 그동안 누적된 부채를 줄이기 위한 정책에 나서면서 한계기업들 돈줄이 막히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부채 축소(디레버리징)에 우선순위를 둔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2016년 디레버리징을 위한 세부 지침을 발표했다. 지난 4월에도 시 주석은 "금융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부채를 줄여 나가야 한다"며 "지방정부와 기업들은 가능한 한 빨리 부채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부채 감축에 대한 시급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돈줄 죄기에 나선 미국과 중국의 통화정책으로 중국 기업의 줄도산 사태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당국의 부동산 안정화 조치나 기업대출 규제 등 디레버리징 정책으로 중국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이전보다 힘들어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앞으로 1년간 만기가 돌아오는 중국 기업과 지방정부 부채는 8조2000억위안에 이른다.
지난달 중국의 소비·투자·생산지표가 일제히 둔화한 것도 기업 디폴트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루이 쿠이즈시 옥스퍼드이코노믹스 대표는 "광범위한 성장 속도 저하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중국 경제는 올해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6.5%에 못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2022년까지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의 안정화를 가져오려면 매년 기업들의 투자 증가율이 5%포인트씩 낮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수년간 GDP 성장률은 1%포인트씩 빠지게 되고 결국 중국의 실질성장률은 4.5%로 잠재성장률 5.5%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당국의 과도한 디레버리징 정책으로 '돈 가뭄'에 시달린 기업들이 하나 둘씩 디폴트에 빠지면서 금융시장 전반에 위축을 초래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과 무역전쟁이 고조되면서 중국 금융 시장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26일 전고점 대비 20% 넘게 빠지면서 베어마켓(약세장)에 진입한 상하이주가지수는 27일에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처럼 중국 금융 시장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되자 중국 당국은 돈줄을 풀기 시작했다. 인민은행은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다음달 5일부터 0.5%포인트 인하한다고 지난 24일 발표했다. 올 들어 세 번째 인하다. 인민은행은 이번 지준율 인하로 자금 7000억위안이 시중에 풀리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기업 디폴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무역전쟁에 따른 충격까지 고려한 대책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인민은행이 무역 갈등에 시달리는 중국의 충격 완화를 위해 위안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인민은행이 위안화 가치를 하락시켜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비롯된 수출 경쟁력 약화를 상쇄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중국 상품 수출가격이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
위안화 가치는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지미 주 풀러튼마켓 수석전략가는 "9월 말까지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최대 6.61%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기업의 부도율이 급증하면서 중국 경제에 대한 경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 시장에서 주가가 급락하고 위안화 가치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중국 경제 내부적으로는 그동안 과도한 부채에 의존해 성장한 것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대외수출이 어려워지면서 이중고에 처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 경제의 어려움은 동남아시아·중남미 신흥국의 경제 위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세계 경제에 막대한 파급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GDP가 12조달러로 전 세계 경제에서 15%를 차지해 미국에 이어 세계 경제 규모 2위 자리를 공고하게 지키고 있다. 이에 중국 경제의 어려움이 전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경제가 둔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미국은 무역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00억달러(약 54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고율 관세 부과를 승인하고 15일(현지시간) 부과 대상 목록을 발표할 계획이다. 특히 관세 부과 품목에 중국 정부가 집중적으로 육성 중인 첨단산업 제품이 대거 포함돼 차세대 먹거리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경기둔화에 무역전쟁 우려까지 커지면서 인민은행은 시중에 대거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날 인민은행이 역환매조건부채권(역RP)과 담보보완대출(PSL) 등 공개시장조작 방법으로 공급한 유동성 규모는 1505억위안(약 25조6500억원)에 달한다. 역RP 금리도 동결하고 위안화 기준환율은 0.54% 절하했다. 전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고,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완화 종료를 선포하면서 긴축 움직임을 보인 것과는 정반대 행보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웨이야오 연구원은 "중국 정부의 부채감축 정책의 효과는 매우 분명하며, 인민은행은 점차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기울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막대한 국가부채를 줄이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이 경기 둔화를 불러왔으며, 이 때문에 인민은행이 긴축 대신 금리 인하 등 경기 부양에 나설 것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BI는 "중국이 돈을 더 많이 풀면 더욱 위험해진다"면서 "중국의 국유기업(SOE)과 금융시장에는 아직 누적된 부채가 많고, 신흥기업과 산업은 아직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역전쟁이 발발하면 미중 양국 모두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였지만, 상대적으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강한 중국이 무역전쟁의 후폭풍을 미국보다 더 잘 견딜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지속되면서 재무적 건전성이 부족한 중국 기업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급증하고, 중국의 경제부처 내에서 서로 비난전에 나서는 등 중국 경제가 비틀거리는 조짐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양국간 관세폭탄 부과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보다 화폐전쟁 등 금융분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정책을 비판하는 와중에 "중국 통화는 급락하고(dropping like a rock) 있다"며 달러 강세가 "우리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비판하는 것에서 나아가 한창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통화 방향성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왔다.
최근 미국 경제가 상승국면에 접어들고 미국 정부의 무역적자 감축 방침에 달러 가치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지만, 위안화의 가치는 중국 경제성장 둔화에 따라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자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가 19일 한때 근 1년 만에 최고치인 95.652까지 오르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위안화 가치가 출렁이고 중국의 성장속도도 둔화되면서 기업건전성에 약점을 가진 중국 기업들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올해 중국에서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 규모가 9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의 보고서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중국 채권액이 4조3000억 위안(약 718조4000억 원)으로, 만기 전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풋옵션’ 채권까지 고려하면 최대 5조3000억 위안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들어 중국 기업들의 디폴트 규모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올 상반기 중국 기업이 갚지 못한 공모채권은 165억 위안 규모로, 디폴트 규모가 사상 최대였던 2016년 207억 위안의 80% 수준에 달한다. 중국 기업의 채무불이행 규모가 사상 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중국 기업들은 2015∼2016년 금리가 최저점에 다가서자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은행 시스템 밖의 '그림자 금융'을 이용해 공격적으로 자금을 차입했지만 중국 정부가 2016년부터 부채 축소 정책을 펴나가고 그림자 금융 단속에 나서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런 가운데 2016년 4.5% 수준이던 1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올해는 7% 수준으로 급등했다.
이처럼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 경제의 하방압력이 커지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시 주석이 덩샤오핑 이래로 존중돼 왔던 '도광양회'(韬光养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키우자) 전략을 사실상 폐기하고 '중국몽'(中国梦)을 앞세워 패권적 전략으로 나서면서 이번 무역전쟁을 키웠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리잔수(栗战书)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자오커즈(赵克志)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 등 시 주석의 최측근들이 최근 시 주석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고위급 간부들에게 강조한 것은 역설적으로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런 소문들이 지난해 19차 당대회 이후 공고화된 시 주석의 1인체제를 흔들 정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동안 대중적 인기 속에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해왔던 시 주석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중국 지도부의 비밀회의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무역전쟁을 핵심 의제로 다룰 것이라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홍콩 매체들이 20일 보도했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중국의 전·현직 수뇌부들이 7월 말∼8월 초 휴가를 겸해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80㎞ 떨어진 허베이(河北) 성 친황다오(秦皇岛)의 베이다이허라는 휴양지에 모여 국정을 논의하는 비공식 회의로 올해에는 시 주석의 아프리카 순방일정이 끝나는 8월 초부터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시 주석의 권위에 눌려온 장쩌민등 정치적 정적들이 이번 무역전쟁을 기회로 발언권을 높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의 경제엔진이 식는 것은 세계 경제에도 큰 부담이다. 중국 경제가 최근까지 무역 마찰, 유럽 경기 둔화, 국제유가 상승, 신흥국 경제 위기 등 많은 위험요인으로부터 세계 경제를 지키는 완충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원 출신이자 컨설팅회사 옥스퍼드이코노믹스 연구원인 루이스 쿠이즈는 "중국의 경기 둔화는 세계 경제에 도전 과제가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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