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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먹는 와규는 모두 강시육

베이징 지하철 10호선 솽징역 인근 한 고급음식점에서는 일본 고베산 와규(Wagyu Beef, 神户牛肉)1인분에 178위안(3만2000원)을 받는다. 베이징 물가를 감안할 때 평범한 직장인이 사 먹기에는 불가능한 가격대다.



하지만 이 비싼 소고기가 정말 고베산 와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중국은 광우병 문제 때문에 2001년 이후 일본산 소고기 수입을 전면금지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베산 와규로 이름 붙은 메뉴가 베이징 내 음식점에 공공연하게 나도는 것일까.

바로 밀수다. 먹을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중국인의 식습관을 노리고 일본산 소고기가 버젓이 밀수를 통해 유통되는 것이다.

일본산 소고기가 중국으로 밀수되는 과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3월 중국 해관에 13톤의 일본산 소고기를 밀수하다 적발된 용의자에 따르면 일본산 소고기는 적어도 3개국을 거쳐 중국으로 밀반입된다. 맨 처음 일본에서 캄보디아로 공수된 소고기는 캄보디아에서 겉포장이 뜯긴 채 태국으로 옮겨진다. 이 소고기는 태국에서 과일을 수출하는 컨테이너에 섞여 라오스로 이동한다. 본격적인 밀수는 이때부터다. 라오스에서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 중국 남부 윈난성 시솽반나항구로 들어온 소고기는 윈난성 성도인 쿤밍을 거친 후에야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로 공수된다.

007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복잡한 밀반입이 횡행하는 이유는 엄청난 수익성 때문이다. 일본산 소고기의 원가는 1kg당 300위안(5만4000원) 정도지만 3개국을 거쳐 중국으로 밀반입되는 순간 가격이 3000위안으로 뛴다. 일부 도매상은 5000위안을 받고 음식점에 넘기기도 한다. 그나마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만큼 일본산 와규는 중국산 소고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을 인정받는다. 사실 중국산 소고기가 맛이 없는 이유가 있다. 중국에는 아직 일정규모를 갖추고 전문적으로 소를 사육하는 농가가 많지 않다. 소를 사육하는 것이 돈벌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소 사육두수가 50두 이상인 농가비중이 전국적으로 27%에 그친다. 농민들이 더 나은 돈벌이를 찾아 도시로 이동하는 것도 소 사육농가를 위축시킨다.

전문적으로 소를 키우지 않다 보니 고급 육질을 만드는 노하우가 없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육질에 신경 쓰기보다는 이해타산에 맞춘 주먹구구식 사육이 대부분이다. 중국 사육농가에 한국이나 일본 같은 쾌적한 사육시설이나 고급육을 위한 사료관리 같은 비법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 무리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소고기 밀수가 판을 친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중국으로 정식 통관을 거쳐 수입된 소고기는 연간 40만톤 규모인 반면 밀수를 통해 들어온 소고기는 연간 300만톤에 달한다. 그해 전세계 국가에서 해외로 수출한 소고기가 890만톤으로 추산되므로 중국인이 전세계 수출 소고기의 30% 이상을 먹어치운 셈이다.

소고기뿐만이 아니다. 닭고기와 돼지고기 등도 공공연하게 밀수를 통해 중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신화망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 해관이 단 한번의 집중단속으로 중국 14개 성에서 적발한 소고기 밀수조직만 21개에 달한다. 이 한번의 단속으로 압수당한 밀수 냉동육은 10만톤이 넘는다.

그나마 값비싼 일본산 와규 밀수는 양반이다. 워낙 냉동육 밀수가 성행하다 보니 심각한 먹거리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중국 전역을 깜짝 놀래킨 이른바 ‘강시육’ 사건이 대표적이다. 강시육이란 유통기간이 지나치게 오래된 냉동육을 말하는 신조어다. 오죽했으면 치링허우족발(七零后猪蹄)이나 바링허우 닭날개(八零后鸡翅)라는 별명을 얻었을까. 치링허우나 바링허우란 70년대 출생자나 80년대 출생자, 즉 중국의 젊은 층을 일컫는 말인데 냉동육 포장지의 생산년도가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법밀수된 고기들은 소리 소문 없이 중국의 노천 야시장이나 대중식당에서 버젓이 쓰인다. 일부 냉동육은 가공식품 공장으로 유입돼 간장이나 매운 조미료와 곁들여져 통조림의 원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이렇게 유통되는 불량육을 소비자가 분간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 냉동육이 정식 검역을 거치지 않고 들어오기 때문에 조류독감이나 광우병 창궐 국가에서 밀반입됐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불량 냉동육이 판치는 이유는 무엇보다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밀수를 통해 인도나 브라질에서 들여오는 소고기는 한근에 20위안 정도로 중국산 소고기 평균가격의 절반 정도다. 따라서 밀수조직들은 베트남이나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을 거쳐 엄청난 규모의 냉동육 밀수를 감행한다.

현재 중국이 소고기 수입을 정식으로 허용한 나라는 우크라이나와 아르헨티나, 코스타리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단 6개국뿐이다. 광우병 파동 문제로 일본산 소고기는 2001년, 미국산 소고기는 2003년, 브라질산 소고기는 2012년부터 각각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중국인의 소고기 소비는 갈수록 늘고 있다. 2012년 기준 중국인의 소고기 소비량은 1인당 5.6kg으로 매년 500g씩 증가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의 소고기 소비는 더욱 가파른 모습이다. 만약 중국인의 소고기 소비량이 전세계 평균 수준인 1인당 9.1kg에 도달한다면 중국의 연간 소고기 수요는 1200만톤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소고기 생산량은 지금보다 2배 이상 늘어야 한다. 사육기술의 선진화 없이는 달성 자체가 불가능한 규모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소고기 소비 증가속도에 비해 소고기 사육산업은 발전 자체가 힘든 상황”이라며 “중국도 일본이나 한국처럼 고급육 중심의 사육산업 선진화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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