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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인민의 중국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80년대 대표적인 금서가 이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인과의 대화'다. 이 책들은 대한민국이 유신 독재 아래 숨도 못 쉬던 시절 감히 생각도 못했던 혁명에 성공했던 베트남과 중국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중국 인민은 자기 힘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공화국을 세웠다.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수천 년간 인민을 착취해온 악질적인 지주와 탐관오리들을 시원하게 응징했다. 그들은 원주민과 흑인을 말살하고 차별한 미국과 유럽의 백인과는 달리 소수민족을 오히려 우대한다고도 했다. 그때는 문화대혁명마저 불치병에 가까운 인간의 탐욕을 집단 교육을 통해 통제하려는 대실험쯤으로 이해하며 좋게 봤다.

홍군이 장제스 군대에 패해 대장정을 한 기록을 볼 때마다 나는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1934년 10월15일부터 후이안에서 옌안까지 1년여 동안 하루에 30㎞씩 1만여㎞를 그들은 도망쳤다. 떠날 때는 10만명이 넘었지만 도착했을 때는 겨우 8000명에 지나지 않았다. 죽음까지도 평등해서 마오쩌둥의 두 아이와 동생마저 생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수많은 농촌 출신 소년·소녀병들이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나무에 기대선 채로 죽어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이 정의가 넘치는 새로운 공화국 건설의 토대가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이 꿈꾼 새나라가 어떤 모습일지는 그들의 행동에서 그려볼 수 있다. 적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죽어가면서도 그들은 피란을 떠난 농민들이 남기고 간 쌀 한 톨, 닭 한 마리 약탈하지 않았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최소한만, 그것도 반드시 차용증서를 남기고 나서야 손을 댔다. 그들은 농가 대문을 떼어내 침대 대신 쓴 다음 떠날 때는 완벽하게 되돌려놓았다. 정복자가 아니라 인민이란 바다를 헤엄치는 진정성 넘치는 물고기가 바로 그들이었다. 결국 바다는 큰 파도를 일으켜 서방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 막강한 장제스 군대라는 초호화 유람선을 뒤집어엎고 말았다.


중국은 인민 제일주의 혁명정신을 전 세계로 전파하려는 것 같았다. 냉전의 진원지인 양극단, 미국이나 소련 그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외세 배격과 인권 옹호를 주장하는 비동맹회의의 맏형을 자처해 전 세계 진보 지식인의 갈채를 받았다. 중국은 이 행성 곳곳에서 신음하는 약자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제국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대국이 출현한 것만 같았다.

프랑스의 석학이자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에 따르면 예전에 젊은이들이 중국에 환상을 품게 된 것은 전 세계 진보 지식인들이 순진하게도 중국 공산당의 선전에 속아 넘어간 탓이다. 그들이 쓴 엉터리 책을 읽고 젊은이들은 중국 공산당을 정의의 화신처럼 떠받들게 됐다고 기 소르망은 개탄했다. 기 소르망은 진보 지식인들이 서구 사회에 들이댔던 것과 같은 엄정한 잣대를 중국에도 적용했다면 중국의 일그러진 모습이 진작 드러났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 혁명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기 소르망의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거부감이 있었지만, 10년여가 지난 지금은 그가 근거 없는 얘기를 한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 배치에 찬성하지 않지만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보며 기가 막혔다. 정부 간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선의를 가지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민간인까지 위협하는 중국 당국의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거리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한국인 협박이 당국의 의사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강변하지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짓이다. 중국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트위터도 모두 막아버린 나라 아니던가. 중국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고는 어떤 폭력적인 언사도 온·오프라인 상에서 유통될 수 없다.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혐한 행위는 중국 당국의 명령 혹은 묵인·방조에 따른 결과이다. 나쁘게 본다면 이번 일을 트집 잡아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나 민간인의 재산을 약탈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도 충분한 짓이다. 한국의 인민은 인민이 아니란 얘기일까. 중국 정부가 홍군의 전통을 이었다는 걸 차마 믿기 힘들다.

민족주의 감성이 발동해서가 아니라 지금 중국의 모습은 대장정 중에 죽어간 홍군이나 전 세계 젊은이들이 바랐던 미래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제 우리는 이웃의 거인을 보다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국 인민은 자기 의사를 마음껏 표현할 자유를 뺏겼다. 공산당 지도부는 민의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가 아니라 감시자로 변했다. 인민은 1976년 마오쩌둥이 죽은 뒤 2012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권력을 잡기 전까지 체제에 도전하지 않는 한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시진핑은 수억명 중국인이 인터넷에서 낄낄대는 걸 불안해했다. 일제 단속을 위해 수천 개의 센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나 활동가 수백명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혔다. 학교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금지되었다. 뉴욕에 있는 국제 언론감시단체에 따르면 2015년 12월 현재 언론인 49명이 감옥에 있다. 큰 나라 가운데 중국의 언론 통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민은 입이 막혔지만 관의 시진핑 찬양은 점점 ‘발랄’해지고 있다. 정부가 만든 비디오에서 젊은 여성이 포크 스타일로 노래를 부른다. “누군가와 결혼하려면 시 아저씨 같은 사람과 하세요. 모든 일에 잽싸고, 결단력 있고, 양심적인 사람 말입니다.” 중국 관영매체들이 호 아저씨(호찌민)를 본떠 시진핑을 시 아저씨로 부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최근 비디오 중 압권은 시진핑이 벌이는 부패와의 전쟁을 칭송하며 “파리가 됐든, 호랑이가 됐든, 괴물이든, 변종이든 모두 싸워 무찌른다”라고 노래한 것이었다. 지난해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인민일보>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 신문은 베이징에 사는 젊은 외국인 여성들이 시진핑에 대해 ‘슈퍼 카리스마틱하다’ ‘무지 귀엽다’고 말하며 장래 남편이 시진핑을 닮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얼마 전 중국 인민대회에 티베트 대표들은 시진핑 배지를 가슴에 달고 나타났다. 중국의 시진핑 우상화는 러시아의 푸틴 찬양과 견줄 지경이 됐다.

이런 모든 현상은 마오 시절 목격했던 컬트화의 조짐이다. 컬트화가 진행되면 권력은 쓴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중국은 지난해 높은 의료비와 베이징 시의 엉망인 교통, 그리고 나랏돈을 떼먹는 관료를 비난한 IN3라는 힙합그룹의 노래 17곡을 금지했다. 닭의 목을 비트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정보는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고 당연히 정부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힘들게 된다. 최근 몇 달 동안 중국의 주식시장이 요동쳤을 때 중국 정부는 전문가들에게 행복한 표정을 지으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경고를 발한 전문가들은 입을 다물거나 의견을 번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중국 관련 뉴스 가운데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늘어간다.

해마다 이맘때 러시아 최북단의 동시베리아해에서는 원주민인 야쿠트족 수백명이 해빙되기 직전의 얼음 육교를 건너 인근 섬들로 흩어진다. 그들은 그곳에서 다시 얼음이 얼어붙기 전까지 짧으면 6개월, 길면 8개월을 보낸다. 집에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파도가 거칠기로 악명 높은 북극해를 목숨을 걸고 작은 보트로 건너야 한다.

시진핑 우상화는 러시아 푸틴 찬양과 견줄 정도

그들이 북극곰의 먹이가 될 각오를 하고, 해안경비대의 눈을 피해 그곳에 머무는 것은 ‘하얀 금’을 캐기 위해서다. 이곳에 고립돼 3700년 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매머드(맘모스)의 엄니 말이다. 통나무만 한 매머드 엄니는 큰 것이 70㎏에 달하며 6만 달러를 호가한다. 기후변화로 만년빙에 갇혔던 이 매머드의 사체가 속속 모습을 드러내면서 소련 해체 이후 침체를 거듭해온 이곳 경제가 때 아닌 호황을 맞았다. 상아가 국제무역 금지 품목이 되면서 매머드의 엄니는 대체재, 아니 그 이상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 엄니의 90%가 향하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이 엄니에 광둥성 장인이 불상 수백 개를 새겨넣으면 백만 달러짜리 애장품으로 변신한다. 중국 부자들은 수천 년 전부터 상아로 된 조각품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고도성장기에 원 없이 돈을 번 중국의 벼락부자들 사이에서 매머드 조각은 특별한 부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런 사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중국은 육상동물 가운데 가장 크고 똑똑한 코끼리의 밀렵을 부추기는 주범이기도 하다. 2012년 홍콩에서는 6t에 이르는 밀렵 상아가 적발되었다. 환경운동가들이 중국 정부에 코끼리 밀수입을 강력 단속하라고 요구했지만 별 효력이 없다.

중국 정부의 아킬레스건은 티베트이다. 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티베트를 침공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의 귀족·승려·시민을 부당하게 체포하고 고문했다. 탄압에 시달리던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수많은 티베트인이 고향을 등지고 망명길에 올랐다. 중국 국내 언론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언론인이라도 티베트를 취재하려 하면 중국 정부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막았다.

티베트에서는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에도 공안이 소방차를 대기하고 감시한다. 분신을 막기 위해서다. 2008년 대규모 소요가 일어난 이래 승려들을 포함해 123명이 중국 정부의 압제에 항거해 분신했다. 티베트의 중국 인민대회 대표가 시진핑 배지를 가슴에 달 수밖에 없었던 사실이 이 지역의 특수한 사정을 설명한다. 중국에 항거하는 원주민과 순응하는 원주민 사이에, 그리고 이 지역의 부를 점점 잠식해가는 한족 사이에 긴장이 높아간다. 중국의 티베트 점령은 혁명정신에도 비동맹 정신에도 어긋난다. 중국이 결코 소수민족에게 관대하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5월이 되면 티베트 고원지대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이 지역 학생들은 모두 4주간 방학을 받아 산으로 올라간다. 어른들도 가축이나 밭을 돌보는 일을 작파하고 산으로 간다. 아직 늑대가 어슬렁거리고, 번개라도 치면 피할 곳이 없는 벌거벗은 슬로프에서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네 발로 기어 다니면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진화론자는 종종 이 세상을 창조한 지적설계자가 정말 있다면 지나치게 딱정벌레를 좋아하는 매우 뒤틀린 존재일 것이라고 비꼬곤 하는데, 일리가 있다. 이해하기 힘들게도 전체 생물종의 5분의 1이 딱정벌레(35만 종이 넘는다)이며 자연계에서는 엽기적인 일이 너무나 흔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 지적설계자는 혈기 왕성한 곤충과 그 곤충의 뇌에 알을 슬어 미쳐 죽게 하는 기생충을 동시에 만드는 변태 성향을 지녔다. 봄이 되면 티베트의 남녀노소를 산으로 내모는 힘이 바로 자연계의 그런 잔혹한 일면이다.

티베트 초원에 여름이 오면 해질녘 분주히 날아다니는 게 특기인 박쥐나방의 유충에 풍매 곰팡이의 포자가 조용히 내려앉는다. 이 운 나쁜 유충은 아무것도 모르고 우화등선을 꿈꾸며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가 동면하다가 곰팡이의 먹이로 전락해 죽어간다. 봄기운이 따사로워지면 곰팡이가 유충을 양분으로 삼아 몸통을 키워 껍데기를 채우고 나사 모양의 싹을 틔우는데 이를 동충하초라고 부른다. 햇빛을 찾아 흙을 뚫고 나온 부분이 겨우 4~5㎝에 불과해 여간 눈이 좋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다. 여름이 와서 억센 풀들이 초원을 덮어버리면 수확은 끝난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지만 중국만큼 유별나지는 않다)에서는 예로부터 이 동충하초를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해왔다. 암을 낫게 하고 허리 통증을 완화한다고도 알려졌지만, 동충하초를 금보다 비싼 존재로 만든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이 동충하초가 남자의 성 능력을 획기적으로 키워준다고 전해오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이 동충하초를 ‘히말라야의 비아그라’라고 부른다. 2013년 티베트는 동충하초를 50t 생산해 그 대부분을 중국에 팔아 1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티베트 전체 관광 수입의 절반에 달한다. 매년 봄 티베트 전역이 골드러시에 휩싸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 티베트의 동충하초는 중국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일종의 창이기도 하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고도성장이라는 신화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에 불을 지를 수 있다면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상아 탐닉에 대한 미온적 대처에서 볼 수 있듯이 돈이 돌아가는 데 지장이 될 정책은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 중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기후변화로 가뜩이나 취약해진 지구 생태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준다.

중국 정부는 두둑해진 자국 중산층의 지갑을 이용해 국내 소수민족과 주변국을 길들이는 데 재미를 붙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의학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맹목적인 애정에 기대어 티베트의 동충하초 경기에 불을 질렀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과학적으로는 동충하초가 남성의 성기능을 강화한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랫동안 잊혔던 동충하초의 효능이 다시 주목받게 된 데는 관영 매체의 기여가 컸다. 이들 매체가 즐겨 인용하는,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대형 서점에서 파는 전통 건강요법 책에 따르면 ‘18g의 동충하초에 신선한 태반을 푹 고아서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 먹으면’ 성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다. 이런 ‘광고’에 힘입어 베이징에서는 작은 유리병 하나 분량의 동충하초가 1만 달러에 팔려 나간다. 이 동충하초는 뇌물로서 효능도 탁월하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국민이 유목 전통을 버리고 정주하기를 원한다. 좀처럼 중국에 동화되지 않는 야성을 길들이기 위해서다. 실제로 동충하초 바람이 불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유목 인구가 서서히 줄고 있다. 이 지역에 유입된 막대한 돈은 지역의 가족애, 우정, 인간애를 좀먹고 있다. 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이권을 둘러싼 살인·강도 같은 강력범죄가 빈발한다.

한때 돈벼락을 맞은 티베트 졸부들 사이에는 인도와 네팔에서 수입한 호랑이 가죽을 입는 게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당시인 2002~ 2006년 인도의 호랑이 개체 수가 3600여 마리에서 1411마리로 급감하는 일이 벌어졌다. 2006년 달라이라마가 동충하초를 ‘고원의 위기’라 규정하고 동물 가죽을 벗으라고 호소한 뒤 인도의 호랑이 개체 수는 2226마리로 불어났다. 그러자 중국 정부가 오히려 나서서 티베트인들에게 호랑이 가죽 옷을 입으라고 권하는 이상한 일도 벌어졌다. 중국 정부는 그들이 선전해온 것과 같은, 소수민족의 수호자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이 인간의 얼굴을 한 제국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는 도처에 널렸다. 이 거인이 주변의 힘없는 친구들을 어떻게 다루려 하는지 알고 싶으면 캄보디아를 들여다보면 된다. 캄보디아는 타이와 베트남이라는 이웃 강국 사이에 낀 위태로운 존재이다. 1979년에는 베트남의 침공을 받아 10년이나 그 통치를 받았다. 작은 나라가 흔히 그렇듯이 캄보디아는 애타게 보호자를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호소에 열렬히 답한 나라가 중국이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캄보디아의 훈센 대통령을 스스럼없이 ‘철갑 친구’라 부른다. 중국은 다른 나라의 투자를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캄보디아에 쏟아부었다. 물론 중국이 헛돈을 쓸 리가 없다.

중국은 예로부터 캄보디아에 침을 삼켜왔다. 1970년대 미국이 론놀 정부를 지원할 때 중국은 축출된 왕인 시아누크와 크메르루주를 지원했다. 크메르루주는 1975년 론놀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뒤 국민 200만명을 학살했다. 중국은 크메르루주가 베트남의 침공으로 쫓겨난 뒤에도 그들을 지원했다. 1990년 베트남과 가까웠던 훈센이 권력을 굳히자 그를 아낌없이 밀어줬다. 이 나라 전체 산업투자의 70%를 중국이 도맡았다.

중국은 캄보디아를 미국과 주변국을 견제하는 쐐기로 활용하고 있다. 민주 정부를 구성하라느니, 부정선거를 하지 말라느니, 인권을 보호하라느니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중국의 돈에는 붙지 않는다. 이런 중국의 묻지 마 지원 덕분에 훈센은 야당을 마음대로 탄압하고 절대 권력을 누릴 수 있다. 그 대가로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홍위병을 자처한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남중국해에서 영향력을 확장해가는 중국을 위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내부에서 대리전을 수행한다. 중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내는 것을 방해하고, 분쟁은 국제법이 아닌 이해당사자 간의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중국의 견해를 무조건 지지한다. 캄보디아의 맹활약으로 중국과 거칠게 대립했던 필리핀·베트남 등이 한발 물러서야 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조건 없는 돈이 어디 있겠는가. 사탕수수·고무·곡물·광물 생산에서부터 도로와 수력발전 건설 같은 인프라까지 모두 장악한 중국 기업은 캄보디아에서 땅 369만ha를 소유하고 있다. 이 나라 주요 항구인 시아누크빌 외곽의 고급 리조트, 캄보디아 해안의 20%에 해당하는 길이의 개발권을 손에 넣었다. 캄보디아 시민단체에 따르면 이 지역 어부는 모두 강제로 농부가 되어야 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과신하는 경향이 짙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어째서 북한에 대해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느냐’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마치 중국이 방치하는 바람에 북한이 마음 놓고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투다. 한국 정치인 가운데도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은 당장 핵 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믿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미국과 한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 또한 지나친 해석일까.

할 수만 있다면 중국은 북한도 캄보디아처럼 손바닥에 올려놓고 싶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해온 북한도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지경으로 중국에 기대고 싶을 것이다. 중국의 돈에 민주니 인권이니 하는 거추장스러운 조건이 붙지 않으리라는 점도 충분히 안다. 그럼에도 중국에 완전히 엎어질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좋게 보자면 자주 국가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고, 나쁘게 보자면 결국 김씨 가문, 즉 백두혈통을 보전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여러 차례 김씨 가문을 거칠게 다룬 적이 있다. 1956년 마오쩌둥은 북한 김일성 주석을 ‘봉건시대 제왕보다 못된 멍청이’ ‘이승만과 공모한 배신자’ ‘나치’ ‘파시스트’라고 공공연히 욕했다. 북한 내부의 친중국 엘리트들에게 그를 제거하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을 축출하려는 노력은 실패했고, 시도했던 자들은 모두 중국으로 도망쳤다. 대로한 마오쩌둥은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그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게 하겠다’고 으르렁댔지만 김일성은 반대자에 대한 철저한 숙청으로 화답했다.

중국은 1966년 문화대혁명 기간에도 김일성을 몰아내려고 시도했다. 유명한 4인방 중 한 명이었던 야오원위안은 김일성을 수정주의자라고 낙인찍었다. 중국 대사관은 한발 더 나아갔다. 공식 행사에서 김일성 찬양하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대사관 벽에 자극적인 포스터를 내걸고 “우리는 마음에 드는 북한 법만 지키겠다”라고 선언했다. 북한 당국은 마오쩌둥에게 ‘노망났느냐’고 욕을 퍼부었다.

국경에서도 긴장이 높아졌다. 1967년 북한 국적자가 홍군 국경수비대에게 사살됐는데 송환된 시신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이걸 잘 봐라. 너희도 이렇게 될 거다. 이 ×만한 수정주의자들아.’ 중국은 대형 스피커를 국경에 설치하고 ‘김일성을 쳐부수자’고 선무방송을 한 일도 있고, 엽기적이게도 댐을 세워 북한 쪽으로 홍수를 일으키려 시도한 적도 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북한 김일성 주석은 “중국은 틈만 나면 우릴 괴롭힌다. 그들에겐 기대할 게 없다”라고 푸념하곤 했다고 한다.

북한이 뼈저리게 중국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체험을 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나마 좋은 소식이다. 안 그랬다면 우리가 철수한 금강산에서부터 개성공단까지 중국 기업이 진작에 점령했을 것이다. 북한 자체가 동북아에서 중국의 이익만을 위한 싸움닭으로 전락하고 통일은 멀어졌을 것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한국 정부의 외교 지능지수가 얼마나 낮은지 적시에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티베트·캄보디아의 인민과 북한은 중국이 속없이 한류 드라마나 소비하는 돈벌이 대상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가르쳐준다. 한때나마 유토피아에 접근해가리라 여겼던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몰염치한 ‘쩍벌남’이 돼가는 걸 보는 게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