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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이 하늘이다

내 밥그릇을 깨뜨리지 마오

"중국인은 다리가 네 개 달린 것은 책상 외에는 다 먹고, 물에서 헤엄치는 것은 배를 빼곤 다 먹고,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 외에는 다 먹는다.(中国人腿的除了桌子不吃,水里游的除了船不吃,天上飛的除了飞机不吃)"라는 말이 세계만방에 널리 알려질 만큼 중국인들은 뱀, 개구리, 살쾡이, 물방개, 지네, 바퀴벌레 따위의 폭넓은 재료를 사용해 세계 제일의 요리를 창출해낸다. 이처럼 광범위한 음식 재료야말로 어쩌면 중국 인구가 세계 인구의 1/5 이상을 차지한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옛날 사람들의 가장 큰 사망원인 두 가지, 즉 기아와 질병 가운데 적어도 기아는 중국인의 사망 원인에 해당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중국인이 굶어서 죽는다면 인류 생존의 한계를 초월하는 극심한 기근 상태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특히 동․식물학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 원인에 대해 린 위탕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중국의 학자는 물고기를 보고는 즉각 이놈을 먹으면 어떤 맛이 날까 하고 생각하거나, 혹은 먹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냉정하고도 무감각하게 그 물고기를 관찰할 수 없다. 중국인은 고슴도치를 보면 당장 그 요리법과 중독되지 않게 먹는 법을 연구한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가만히 고슴도치를 보고 있을 수 없다.

실제로 타이완의 국립 타이베이 동물원에는 철창 속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는 동물들의 고기 맛이 쓰여 있는 안내판이 적지 않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돼지와 하마를 반씩 닮은 '돼지하마'라는 희귀동물을 넣어둔 창살 앞에는 "이 동물의 육질은 비계층이 얇고 살코기가 연해 돼지고기보다 훨씬 맛이 있다. 토인들이 마구 잡아먹는 바람에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라고 적혀 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입안에 저절로 군침이 도는 것이 동물원이 아니라 식용 야생동물 시장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중국인들은 음식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크고 작은 중국음식점은 중국 본토의 200여 만 개 업소를 포함, 모두 246만 여 개다. 세계인구 2,500명당 중국식당 하나 꼴이다. 결국 중국식당 1개가 각각 2,500명씩을 먹거리로 통치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 세계 남성의 5대 행복은 무엇일까? 우스갯소리로 맛있는 중국요리를 먹으며, 미국 집에 살고, 자동차는 독일제를 몰고, 아내는 일본 여자를, 정부(情婦)는 프랑스 여자를 두고 사는 것이리라…….

마치 먹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중국인이 먹는 데 쏟는 관심과 정열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국인은 배만 부르면 만족할 수 있다고 한다. 고로 중국인은 배만 부르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 즉 음식은 겁내지 않으나 입에서 나오는 것, 즉 말은 겁낸다. 따라서 그들의 음식은 위생, 비위생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먹는 것이 하늘이다

서양문화는 현세와 내세가 대립하는 세계를 창조했다. 인도문화는 차안(이승)과 피안(저승)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중국문화에서는 현세와 이승만 있을 뿐, 내세와 피안 따위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감성을 뺀 이성이 없고, 육체를 떠난 영혼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생활, 그중에서도 먹는 문화는 중국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며 최고의 핵심이다. 중국문화를 창시한 위대한 선열들도 먹는 것을 논했다. 공자는 백반에 싱싱한 물고기 회를 매우 즐겼다고 『논어』를 비롯한 사서삼경에도 자주 언급되어 있다.

노자도 '성인은 배(腹)를 위해야 하며 눈(眼)을 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즉 성인은 백성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백성들을 요란한 정신세계에 미혹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인생의 목적은 배불리 먹기 위한 것'이라는 노자의 사상은 중국 전체 언어 시스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국에서 '일'과 '밥벌이'는 동의어다. '일을 많이 했다'는 '밥을 배불리 먹었다'로, '일자리를 바꾸었다'는 '다른 구유통으로 뛰어들었다(跳槽)'로, '실업'은 '밥그릇을 잃었다(丟失饭碗)'로 쓰인다. 공사판 인부들이 가장 겁내는 일은 십장으로부터 '또다시 게으름 피우면 네 밥그릇을 깨뜨려버리겠다.'라는 꾸중을 듣는 것이다.
중국인에게 하늘은 지고무상(至高無上)한 개념이다. 중국의 성인들은 '도의 큰 흐름은 하늘에서 흘러나온다.'라고 가르치는데, 이 말은 좀 현학적이다. 그런데 유사이래 남녀노소 상하귀천 구별 없이 중국인이라면 만장일치로 수긍하는 문구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곧 '民以食爲天󰡑(사람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이다. 일단 잘 먹는 것을 일과 인생의 최대의 목표로 삼았기에 중국인들은 돈이 생기기만 하면 입을 섭섭하게 하지 않는다.

1989년 6월 4일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의 일이다. 성이 호우(侯)라는 중국의 민주투사가 100명이 넘는 내외신 기자들을 불러놓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가 매우 장엄한 표정으로 󰡒애국학생들의 민주화 요구사항을 정부가 수용하도록 촉구하는 의미에서 나는 마침내 자기희생이라는 최후의 중대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선언하자 회견장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 순간 한 베이징 주재 일본 특파원은 그 민주투사가 당장 할복자살이라도 하지 않을까 해서 심장이 멎을 정도로 긴장했다 한다. 곧이어 그가 '나는 앞으로 24시간 동안의 단식을 결행할 것을 세계만방에 선포한다.'라며 대미를 맺자 장내 분위기는 한순간 실소를 참는 신음소리로 가득한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그렇지만 중국 본토와 화교 출신 기자들은 하나같이 일그러진 얼굴로 '무려 24시간 동안이나 단식을 하는 장거(壯擧)' 앞에서도 웃는 외국의 동업자들에게 '인정머리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경멸의 표정을 날려보내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대개 우리 나라 사람보다 인내성이 강한 편이라고 할 수 있으나 배고픔만은 잘 참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중국인들은 한두 끼 굶는 것을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여긴다. 우리 나라 유명인사들이 억울한 경우를 당하면 '닷새는 물론 열흘, 스무 날 동안 밥 굶기를 밥먹듯 한다'는 사실에 중국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경외감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사형수에게 제공되는 요리

중국어로 호텔이나 여관을 가리켜 판디엔(飯店) 또는 지우디엔(酒店)이라고 한다. 이것도 원래는 음식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인에게 식당은 서양인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식당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고 갈등을 원만히 해결해주는 곳이다. 낯선 사람끼리도 원탁의 식탁에서 배갈 한 병을 반주 삼아 몇 가지 요리를 같이 먹고 나면 어느새 오랜 친구같이 친근한 사이로 변한다. 중국의 식당은 종종 도저히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성사시키고 원한이 깊어 전혀 화해할 수 없는 원수지간도 단숨에 벗으로 바꿔버리는 이적을 행한다. 서양사회 교회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형제도에 관해 중국이 지금까지 지켜온 전통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사형을 규정한 범죄조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형집행 전 사형수에게 진수성찬을 베풀어 포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전통은 오늘날 중국대륙은 물론 타이완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은 '세상에 어느 정신나간 사형수가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고 제아무리 굶주렸다 하더라도, 곧 닥쳐올 죽음을 눈앞에 두고 무슨 식욕이 나서 젓가락을 들 것인가?'라고 일소에 붙여버리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국대륙에서는 사행집행 전날 밤에, 타이완에서는 사행집행 당일 새벽에 성찬이 베풀어지는데, 사형수들은 대개가 저승에서 배고파 헤매는, 가장 불쌍한 귀신인 아귀(餓鬼)가 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포식하려 한다. 중국대륙에서는 고량주와 돼지갈비와 오리알이, 타이완에서는 오가피주와 송화단(달걀을 발효시킨 것)이 사형수들에게 사랑받는 메뉴다. 이들 두 나라의 사형수들이 모두 다 알을 먹고 황천을 건너려는 이유는 중국인 특유의 세속적 윤회관과 관련이 있다.

중국인들은 유언마저 먹는 타령을 늘어놓다 숨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가까운 중국친구와 항일전쟁을 소재로 한 인기 TV 연속극을 보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연속극의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 적군의 총탄을 맞고 죽게 되는 우리의 젊고 잘생기고 용감한 남자 주인공이 최후의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맺는 유언의 맨 끝부분.
'고향에 돌아가서 늙으신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팔보채 한 그릇만 먹고 죽었으면 정말 여한이 없겠는데…… 꼴깍.'
저절로 터져나오는 폭소를 한참 동안 그대로 방치하다가 옆자리의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싶어 중국친구를 바라보았는데. 웬걸, 불혹이 넘은 그가 손수건을 꺼내들고 두 볼에 굴러 떨어지는 닭똥만한 눈물을 연방 찍어내며 흐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때 얼마나 민망했던지…….

중국인은 더욱 맛있는 것을, 더욱 많이 먹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한다. 중국인들은 종교와 신념, 또는 학설을 위해 불 속에 뛰어들지 않는다. 이것은 경제건설을 제일로 삼는 오늘날 중국의 국가목표와 합치하는 것으로 중국 현대화 건설에 매우 유리한 점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과도하게 먹는 데만 신경쓰면 존엄과 자유 등 인간의 참다운 의의에 대해 소홀하게 되는 법이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사장이 직원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은 해고당하는 것보다 참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장은 인권침해자로 지탄을 받거나 심한 경우에 형사고발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사장이 직원에게 어떠한 심한 욕설을 퍼붓고 인격을 모독하더라도 밥그릇만 빼앗지 않으면 아무런 탈이 없다. 그러다가 불가피하게 그 직원을 해고하게 되면 그는 반드시 거센 저항에 부딪힌다.

중국 경제건설의 관점에서도 사람들이 먹는 데에만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문제이다. 자금과 재화가 입으로 들어가 배설물이 되어버리는 것보다는, 확대재생산에 투입되어 현대화건설에 유리하게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그러지 않으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반점과 주점이 교회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신에, 부패와 부정의 온상으로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흘 동안 먹는 코스 요리


중국요리, 나아가서 세계요리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만한췐시(滿漢全席)다. 청나라는 북방의 만주족이 베이징에 들어와서 세운 왕조이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만주족의 독자적인 문화는 희박해지고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어 갔다.
미식가였던 6대 황제 건륭은 각지를 순회할 때 그 지방의 요리를 음미했을 뿐 아니라 요리사를 반드시 베이징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그 요리사 가운데 양저우(揚洲) 사람인 요리사가 만주족이 좋아하는 사슴과 곰 등 야생짐승들의 고기와, 양저우 사람들이 좋아하는 어패류와 야채와 산해진미를 함께 배합해 만든 것이 바로 만한췐시다. 천하의 진귀한 재료를 망라해 최고의 조리기술로 맛과 영양의 극치를 추구한 걸작 만한췐시는 그후 궁중요리로 흡수되었다.
청나라 시대 만한췐시는 상어 지느러미, 제비집, 곰의 발바닥, 낙타의 혹, 원숭이 골, 코끼리 코, 원숭이 입술, 표범의 태, 백조, 공작, 거북, 대나무벌레, 해삼 등 중국 전지역에서 모아온 진귀한 재료로 만든 324종이나 되는 메뉴를 사흘 동안 먹는 코스였다.
요리를 먹는 사이사이에는 탕과 면이 때를 맞추어 나오고 간식과 요리의 배열이 알맞게 짜여져 있어 맛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자연스럽게 배를 불릴 수 있었다. 술과 차도 최고급 명품으로 구미를 당기고 소화를 촉진해 식사 후에도 속이 편안하게 했다.
1925년에 궁중요리를 표방하는 고급음식점 '팡산(房膳)'은 베이징 쯔진청(紫禁城) 근처에 문을 열고 영업을 계속하면서 만한췐시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팡산이 문을 열면서 원래 324종류의 메뉴를 108종류로 간소화하고 식사시간도 사흘에서 하루로 단축했다. 중국인의 미각과 식욕추구에 대한 정열, 그리고 세계 최대의 자존심을 갖춘 위장에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스파게티, 마카로니는 이탈리아 음식의 대명사다. 서양에서 밀가루를 이용해 각양각색의 국수를 만들어내는 기술로써 이탈리아를 따라잡을 나라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13~15세기 중국땅을 밟았던 마르코 폴로를 비롯한 이탈리아 출신의 선교사들이 갖가지 중국국수와 당면을 귀국선물로 가져갔던 덕분이다.
아이스크림과 셔벗도 중국인, 엄격히 말하자면 몽골족이 맨처음 발명한 것이다. 그들은 원나라 훌라구 황제 때 세계 최초의 아이스크림, 빙유락(氷乳酪)을 탄생시켰다(단, 중국의 한족은 우유를 잘 마시지 않는다. 버터, 치즈, 요구르트 등 각종 유제품을 즐기는 중국 본토의 한족은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농경민족의 오랜 식생활습성보다는, 한족의 소화기관이 원래 유당 분해효소인 락타아제 분비가 원만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도 다양한 전통 중국요리에는 유제품이 없다. 신기한 일이다).
빙유락, 즉 아이스크림은 마르코 폴로에 의해서 처음 이탈리아에 소개되고, 다시 유럽 각국에 전파되었다. 그것을 처음 맛본 유럽인의 반응은 열광 그 자체였다. 이탈리아의 아이스크림 제조법에 관한 설명서가 프랑스 왕실에 우편으로 전달되었을 때, 프랑스 국왕은 이탈리아의 아이스크림 요리사에게 그 제조법이 다른 나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거액의 비밀유지비를 지불했다. 그러나 비밀이 영국으로 새어나가게 되자 프랑스 국왕은 자객을 파견해 그 이탈리아 요리사의 목을 쳐버렸다.
1788년, 미국 뉴욕에서 발행되는 『뉴스 레터』라는 신문에 아이스크림(ICE CREAM)이라는 글자가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그것은 중국 원나라 때의 빙유락을 영어로 직역한 것이다.
중국음식을 먹는 것이 세계 남성의 5대 행복 가운데 하나라면 남성보다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또한 세계 여성의 5대 행복 중의 하나쯤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