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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바이주(白酒) 모든 것

6000년 역사의 중국은 넓은 영토와 다양한 기후답게 황주·과일주·약주 등 여러 종류의 술이 발달했다. 일찍이 송(宋)나라 시절부터 포도주와 맥주를 즐겼다는 설도 있다. 중국에선 5000여 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주종 중에서도 바이주(白酒, 곡물로 밑술을 빚거나 발효해 만든 중국 전통 증류주)를 최고로 꼽는다. 여러 곡물을 섞어 수십 가지 맛을 내는 것이 ‘화(华)’의 정수를 담았단 평가부터, 문화 용광로인 중국의 모습을 빼닮았다는 설명도 있다. 한국에서 ‘빼갈’이나 ‘고량(高粱)주’라고 부르기도 하는 술이다. 이 중에서도 ‘홍군의 술’로 불리는 마오타이(茅台)와 장쩌민 전 중국주석이 사랑한 우량예(五粮液), 그리고 원나라 시절의 주조법을 계승한 수정방(水井坊)을 3대 명주로 친다.


세 술은 각각의 특색이 있어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다. 단 맛과 감칠 맛에선 마오타이가, 혀 끝의 담백함에선 우량예가, 진한 향과 깊은 맛에서는 수정방이 앞선다. 이 가운데 수정방은 산뜻한 맛이 최근 트렌드와 잘 맞아 떨어져 바이주 애호가 사이에서 호감도가 급상승 중이다. 뱃속을 울릴 정도로 맛이 진하고 높은 알코올 도수가 몸을 따뜻하게 해줘 매운 중국 요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요즘 전국적인 중식 열풍도 수정방의 인기를 거든다.

수정방은 지난 600년 간 명맥이 끊겼다가 14세기 원나라 때 지어진 대규모 양조장 유적이 1998년 발견되면서 양조법이 복원됐다. 유적에서 배양균(효모)이 살아있는 채로 발견된 덕분이다. 중국 국무원은 2001년 이 양조장을 ‘전국중점문물 보호단위(문화재보호구역)’로 선정했고, 2013년에는 유적 위에 박물관을 세웠다. 수정방은 이곳의 수원을 다시 살려 지하수를 끌어올렸고 2000년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수정방은 수정방박물관에서 10%만 생산하며 청두 인근의 두 생산기지에서 나머지 90%를 만든다. 옛 방식을 그대로 살려 포장을 제외한 모든 과정이 1600여 명의 장인의 손을 거친다.

수정방은 5가지 곡물의 배합과 효모, 숙성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재료는 전체에서 36%가 들어가는 수수다. 한국에서 말하는 고량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수수의 한 종류다.

수정방은 쓰촨 지역에서 생산한 엄선된 수수와 쌀(22%)과 찹쌀(18%)·밀(16%)·옥수수(8%)·엿기름을 적당히 섞어 술지게미와 함께 찐다. 이를 1.5m 깊이의 흙구덩이에 넣고 90일 간 발효시키면 모래가루 같은 술이 나온다. 흙구덩이에서 술을 꺼내 찜통에 넣고 다시 찌고, 이를 증류해 액체 술을 받아낸다. 술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대략 6m² 크기의 증류기에서 술을 뽑아도 두꺼운 빨대 크기의 관을 통해 졸졸 흐르는 정도다. 한 통을 다 쪄도 한 항아리를 채우지 못한다. 증류하고 남은 술지게미는 말렸다가 다시 곡물과 함께 쪄 흙구덩이에 파묻는다. 술지게미를 햇빛에 바싹 말리기 위해 이 공장의 천정은 개폐식이다. 술의 맛은 구덩이의 어느 깊이에서 파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구덩이의 아래 쪽에서 파낸 술이 도수가 높고 맛이 좋으며, 비싸게 팔린다.

기온이 35도를 넘으면 술지게미가 상할 수 있고 술이 시큼해질 수 있어 구덩이에 온도계를 꽂고 세심하게 관리한다. 처음 생산된 원액은 63~64도로 농도가 짙은데, 이 술을 커다란 항아리에 넣어 4~5년 간 숙성시킨 후 다른 도수의 원액과 섞어 맛과 향을 내면(블렌딩) 완성품이 나온다.

수정방은 흙구덩이에서 90일마다 술을 파내고 블렌딩을 하기 때문에 와인처럼 몇 년 산인지, 위스키처럼 몇 년 숙성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눈으로 투명도와 점도를 살피고, 잔을 기울여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법은 서양 술과 비슷하다. 여기에 추가로 입과 목, 뱃속의 느낌, 그리고 마음의 울림을 읽는 것이 수정방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한다. 수정방 박물관의 시음 코너에서 총 6가지 수정방을 맛볼 수 있었다. 이 중에는 원액도 포함돼 있었다. 손가락 한마디 만한 작은 잔을 45도 기울여 향을 맡으면 새콤달콤한 향이 진하게 난다. 술잔을 들이키면 입안에 폭죽 터지 듯 청량감이 번지고, 이내 입안이 뜨거워진다.

불덩이 같은 술은 위로 내려가서야 잠잠해진다. 바로 또 한잔 들이킬 수 있을 정도로 뒤끝이 없고, 입천정의 고소한 맛은 오랫동안 남는다. 향은 진하지만 혀끝도 가볍다. 뜨겁고 시원한 모순된 맛이 동시에 든다. [춘추전국이야기]를 쓴 공원국 작가는 “탁 터지는 맛과 향 때문에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바이주 중 수정방의 가장 인기가 높다”며 “입안의 폭발이 금세 가라앉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정방을 비롯한 바이주는 오래 숙성할수록 맛과 향이 진하고 도수가 높다. 38도 이하는 향이 옅기 때문에 중국에선 30도 이상만을 바이주로 인정한다. 마오타이 등 장향은 최고 도수가 53도 내외, 수정방 등 농향은 최고 도수가 61도 내외다.

중국 후한 시대 유비가 촉한(蜀漢)의 수도로 세운 청두는 중국 제일의 바이주 생산지다. 습도가 높고 365일 중 300일의 흐리고 눅눅한 날씨가 효모의 번식을 돕는다. 물이 깨끗하고 영양분이 많아 맑고 질 좋은 술을 얻을 수 있다. 이 지역 물은 당나라 시인인 설도(薛濤)가 황실에 진상하던 색종이를 만들 때 쓰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쓰촨에선 바이주를 만들기 좋은 환경 덕에 수정방·우량예 등 수많은 명주가 탄생했다. 바이주는 향과 숙성도·배합 등에 따라 크게 농(濃)향·장(醬)향·청(淸)향·미(米)향 등으로 나뉜다.

농향은 곡물의 단 향이 강한 술이고, 장향은 누룩의 향이 짙은 술이다. 청향은 담백하고 맑은, 미향은 쌀의 향이 진한 술이다. 중국에서 유통되는 80%의 바이주가 농향과 장향이다. 수정방은 대표적인 농향 술이고, 마오타이는 장향의 대표 선수다. 술을 만들기 위해 찐 곡식과 누룩·술지게미의 냄새가 섞인 농향이다. 처음엔 고린내로 느껴지지만 이를 숙성시켜 술을 내면 파인애플이나 사과향처럼 맑은 향이 풍긴다. 양고기의 지방이 누린내를 내지만, 기름기를 빼고 숙성시키면 특유의 향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