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퇀파(团派)의 마지막 희망


이번 13기 전인대 인선에서 공청단파의 마지막 보루 루하오(陸昊·51) 자연자원부 부장의 전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루하오 부장은 지방에서 베이징으로 화려하게 컴백하면서 후춘화·천민얼 류링허우(60后·1960년 이후 출생자) 세대를 잇는 차차기 주자로 급부상한 상태다.


2013년 5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이 당시 헤이룽장 성장이던 루하오 성장 특집을 내보낸다. 당 중앙 기관지가 그것도 해외에 특정 개인에 대한 능력과 리더십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인민일보는 아예 그를 '중국 정계의 다크호스'라 부르며 집중 조명했다. 이후 루하오는 '차세대 중국 권력의 샛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루하오는 될성부른 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학창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고향 시안(西安)의 제85중학 1학년 때 반장을 맡아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한다. 당시 루의 담임이던 구밍친(顾铭琴)은 ‘몸이 아플 때 루하오에게 반을 이끌게 하면 안심이 됐다’고 사람들에게 털어놓으며, 루하오가 무슨 일을 하자고 외치면 급우들이 모두 따르는 ‘일호백응(一呼百應)’의 기세가 있었다고 말한다.

큰 키는 아니었지만 학교 배구팀 주장으로 3년 내내 활약하기도 했다. 이 같은 탁월한 리더십 덕택에 루하오는 3학년인 18세 때 공산당에 가입해 문화혁명 이후 시안이 배출한 ‘최초의 고교생 당원’이 된다. 동시에 시안시의 유일한 고교생 공청단 위원으로도 선발된다. 지금도 루하오는 "내가 우리 집안의 제1 공산당원"이라며 당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한다.

고교 3학년 때 이과에서 문과로 바꾼 루하오는 우수학생 특별전형을 통해 베이징대 경제관리학원에 진학,학업에 매진한다. 2학년 때는 베이징대 학생회 활동에 참여해 그해 베이징대에서 문혁 이후 직선으로 선출한 첫 번째 학생회 주석에 오른다. 베이징대 학생회 상무 대표위원회 회장으로 활약했던 리커창 총리와 비슷한 행보다. 루하오는 뛰어난 춤 솜씨로 ‘무림고수(舞林高手)’라는 애칭을 듣는데 이는 역시 베이징대 재학 시절 준수한 외모와 탁월한 댄스 실력으로 유명했던 후진타오 주석을 연상시킨다.

학업을 통해 이론 수준을 갖추면 현장으로 보내 리더십 연마토록 하는 게 중국 지도자 선발의 필수 과정으로 루하오 역시 졸업후 매년 적자를 내는 직원 5000명의 국유기업인 베이징 칭허(淸河) 면방직 공장에 배치된다. 그는 밑바닥을 배우는 동시에 대학원에도 진학하고,28세 때인 95년 루하오는 회사의 최연소 공장장이 되어, 회사를 흑자로 돌려놓는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98년도 베이징시 10대 우수 청년’으로 선정된다. 현장 대처 능력을 보면서 업무 능력과 리더의 자질을 엿보는 검증 작업은 마치 70년대 말~80년대 초의 쑨다광(孙大光) 지질광산부 부장이 당시 간쑤(甘肃)성 지질역학원으로 일하던 원자바오 총리를 발탁할 때와 유사하다.

물론 검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 루하오는 이번엔 창조적 사고와 행동을 시험받기 위해 32살에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베이징의 중관춘(中关村) 과학기술원 관리 위원회 부주임으로 임명된다. 최연소 국장급 간부가 된 루하오는 여기서도 중관춘 내 최초의 외상(外商)·개인 합자기업 설립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 당 간부들의 인정을 받는다.

두 차례 검증 작업을 무사히 통과한 루하오는 2002년 3월 지방인 창장(长江) 싼샤(三峽)총공사로 떠난다. 이른바 ‘괘직단련(挂职锻炼)’. 지방으로 내려가 너른 세상을 이해하고 민초들의 삶의 현장을 살피는 교육을 받는 것으로 이런 괘직단련은 중국 지도자들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이어 35세인 2003년, 루하오는 베이징시 부시장이 돼 최연소 차관급 관료가 된다. 그가 맡게 된 분야는 공업과 안전생산, 국유자산 감독 관리, 정보화 방면 등이었다. 때맞춰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현대자동차 관계자들과 긴밀하게 교류하는 등 외국인들과 만나며 국제적인 안목을 키우고, 중국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며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 시기였다.

41세의 루하오는 정치 역정에 또다시 ‘최연소’ 타이틀을 추가한다. 당시 7200만 공청단의 일인자인 중앙서기처 제1서기에 오르며 최연소 ‘부장(장관)’이 된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루딩이(陆定一, 1906~1996), 중국의 명문 교통대학을 나온 루딩이는 공산 혁명가다. 그러나 문혁 때 주자파로 몰려 혹독한 시련을 겪어 홍위병에 이끌려 자아비판은 물론 13년간 옥살이까지 했다. 어릴 적 루하오는 당시 할아버지의 고통을 지켜보며 "반드시 정치를 해서 다시는 문혁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맹세를 했다.

루하오는 중국 권력의 핵심 파벌인 태자당(太子党,당 혁명 원로나 고위 관료 자녀들의 정치세력)과 공청단파(团派, 공산주의 청년단 고위 간부 출신의 정치세력)에 모두 속한다. 할아버지가 혁명 원로인데다 부총리까지 지낸 거물이다 보니 태자당의 정점에 있는 시 주석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집안배경과 동시에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이끄는 공청단파 핵심이기도 하다.

이후 2013년 헤이룽장(黑龙江)성 성장으로 옮겨 본격적인 지도자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루하오의 헤이룽장에서의 성과는 썩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16년 3월 압록강 지역 탄광업체 룽메이(龙煤)그룹 노동자들의 임금체불 항의시위를 처리하다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체불은 1원도 없다’ 라며 강경한 처리를 주문하다 더욱 격렬해진 현지 노동자들의 항의시위에 결국 공개적으로 잘못을 시인해야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 헤이룽장내 한 스키리조트 사업이 성장과 투자자를 속였다는 폭로가 일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더구나 정치적 배경이었던 공청단이 시주석에 의해 철저히 무시, 탄압받으며 사정은 더욱 좋지않다.
퇀파의 1인자이자 시주석 1기 집권시기 2인자였던 리커창 총리는 이번 인사에서 공청단과 함께 철저히 몰락했다.친이즈(秦宜智) 전 공청단 제1서기가 지난해 국가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 부국장으로 좌천 된 이후 중국 정치권에서 성공의 상징으로 불렸던 공청단 제1서기는 여전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공청단 조직 자체가 와해 상태로 몰리고 있다.

공청단 출신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 부주석은 7상8하(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에 해당되지 않는 67세의 나이임에도 19차 당대회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이런 파벌 배경과 업무 논란에도 불구하고 루하오 부장이 이번 인사에서 가장 젊은 나이에 중앙 요직을 맡게 된 점은 시진핑 이후세대로 루부장이 퇀파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古往今来岁月,龙争虎鬬江山。琵琶一曲世千年,瞬息兴亡过眼”。

北京时间3月19日上午,随着李克强新内阁成员的确定,中共政坛地方大员中最后一个团派的象征——陆昊,被宣布从黑龙江省省长职位上,转任新组建的自然资源部首任部长。自此,在中共政坛中,除了中国国务院总理李克强和副总理胡春华曾有过共青团中央书记处任职经历,在省部级的地方大员中再无团派出身者。团派曾存在于中共政坛的接班人形象也不复存在。 陆昊和秦宜智 五年前的2013年两会,46岁的陆昊和48岁秦宜智,作为当时最年轻的正部级官员以政坛新星的形象被外界看好。 1967年出生的陆昊,拥有深厚“团派”背景(图源:VCG) 曾经的共青团中央第一书记秦宜智(图源:新华社) 1967年在陕西西安出生的陆昊,曾一度被视为团派官员中最亮的新星。2008年5月,时年41岁的陆昊被宣布接任共青团中央书记处第一书记,晋身最年轻的正部级官员。他28岁出任北京国有企业“北京清河制呢厂”一把手,32岁当选最年轻的正厅级干部,35岁担任北京市副市长,41岁成为共青团中央书记处第一书记,晋身最年轻的正部级官员。尤其是中共十八大上成为中央委员,之后又调任黑龙江省长,成为最年轻的地方大员,外界曾对其仕途有诸多想象。 在之前的履历中,陆昊得到的评价是:无论是面对“北京清河制呢厂”面临亏损的局面,还是在首都任职时遇到的各种阻碍,陆昊表现出和他的年纪并不相符的“强悍”,迎难而上一一化解。但是,从共青团中央调任黑龙江以后,陆昊却没有表现出以前的“强悍”。2014年上半年,黑龙江地方经济增速骤降排名沦为倒数第一,当时就有声音认为陆昊缺乏地方主政经验,印证了外界对团派欠缺政治能力和经验的印象。 2016年中国两会期间的龙煤事件,更是成为陆昊仕途的一个转折。当年3月6日,参加中国全国两会的陆昊谈到龙煤集团改革时对媒体表示,“没有少发一个月工资,没有减一分收入”。然而话音刚落,发生数千名龙煤矿工走上街头,抗议龙煤集团拖欠了好几个月薪水。 虽然陆昊专门召开记者会进行说明,但是一方大员被下层蒙蔽终究是失职的一个表现。2017年年底,一份《中国社会保险发展年度报告2016》,将黑龙江养老金“穿底(收不抵支)”的尴尬曝光。2018年年初爆发的“亚布力”事件中,到黑龙江投资的企业家毛振华控诉亚布力滑雪旅游度假区管委会的视频中宣称“他欺负我们省长不会滑雪,没有亲身体验。骗取荣誉还升官发财” ......再一次将陆昊被蒙蔽的尴尬曝光。 同陆昊相比,中共十九大前被调任的秦宜智,更是显示了团派的落寞。秦宜智为1965年生人,曾在地方长期历练,担任过四川省攀枝花市市长、内江市委书记等职,2005年调任西藏政府主席助理,至此仕途看好。到2013年时,秦宜智担任西藏自治区党委常委、政府常务副主席。中共十八大后不久,秦宜智便调入北京,接替陆昊出任共青团中央书记处第一书记。 2017年9月,在中共十九大召开的前夕,秦宜智被发现落选十九大党代表名单,紧接着的“调任”再一次将他推向媒体聚光灯之下——转任中国国家质量监督检验检疫总局副局长。虽然在中共官员等级序列中秦宜智依然是“正部长级”,但鉴于团中央第一书记以往的辉煌仕途走向,这一调整的落差不可谓不大。 无论是陆昊的调任,还是秦宜智的降职,中国政情观察人事普遍认为,这不仅是他们二人仕途走低的象征,也是中共政坛团派时代的结束。 团派式微 2017年9月10月,在秦宜智被调任的同一时间段,中共“中央文献出版社”出版发行了《习近平关于青少年和共青团工作论述摘编》,其中罕见刊登了习近平本人批评共青团的措辞,“空喊口号”、“形同虚设”、“四肢麻痹”,“说科技说不上,说文艺说不通,说工作说不来,说生活说不对路,说来说去就是那几句官话、老话、套话,同广大青年没有共同语言、没有共同爱好,那当然就会话不投机半句多。”“如果青年在前进,而团组织没有与时俱进,不能成为青年的领头羊,反而成了青年的尾巴,那何谈扩大有效覆盖面?跟都跟不上!”习近平措词之严厉,超过外界想象。 众所周知,中共从建党之初历来重视青年工作,从那时候起,共青团就成为中共的前端组织。除了组织青年,共青团亦为中共输送了一大批高级官员。如中共前任总书记胡锦涛、胡耀邦,中国国务院总理李克强、新上任的副总理胡春华等。因此,在中国大陆官场有“团派”之说,从共青团输送高官这一角度来说亦属客观存在。 相关阅读 陆昊执掌的这个中国新部门是干什么的 两会聚焦:陆昊成中国最年轻部长 胡锦涛时代被看好 两会速递:“团派”陆昊进京 任自然资源部部长 但是十八大开始,中共着手群团改革之后,共青团成为党媒的首要批评对象,指出其存在“机关化、行政化、贵族化、娱乐化”现象,表明中南海层面对于共青团官员成为“官老爷”,只会坐在办公室里而脱离群众的情况感到不满,当时作为第一书记的秦宜智自然难辞其咎。“以秦宜智为代表的部分团派官员不接地气的情况,与习近平用人重视基层经验的观念背道而驰,被贬也不足为奇”,有政治观察人士如此表示。 从中共十八大到十九大的第一任期表现来看,外界普遍认为习近平在用人上更重视“地方经验”,“习式用人哲学”最主要的特点可以归纳为12个字,“宰相起于州牧,猛将发于卒伍”,即官员一定要有执政能力。据不完全统计,从1990年在福建任职开始,习近平在多个场合曾5次提及“宰相起于州牧,猛将发于卒伍”。可以看到,对于选拔何种官员的思考,几乎贯穿习近平的仕途,从担任福州市委书记一直到他成为中共总书记。 “整饬团派”是近年来中共政坛的重要事件。从青年政治学院取消大专,到共青团出身的令计划身陷囹圄,再到共青团在互联网的浪潮中频发声招至外界负面评价,包括共青团系统在内的“团派”已经光辉不再。2015年10月30日中纪委巡视组入驻共青团中央,并在4个月的巡视结束后进行严厉的批评,接着中纪委在2016年4月公开批评共青团“机关化、行政化、贵族化、娱乐化”,其后中央办公厅2016年8月印发《共青团中央改革方案》,声言要从4个方面和12个领域着手,彻底整顿改革共青团系统。 所谓“团派”辉煌时代,已经成为过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