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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을 자본가의 당으로 만든 삼개대표


2018년 현재 중국공산당 당원의 수는 거의 9천만 명에 달한다. 중국의 인구가 2016년을 기준으로 14억 명을 약간 상회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구 약 15명 당 1명이 공산당원인 셈이다. 그리고 이들은 중국 사회의 기본적인 중추를 구성하고 있다. 이제 중국공산당은 숭고한 이론적 토양과 투철한 혁명의식으로 무장된 소규모의 혁명가 집단이 아니라, 경제적 부를 지켜나가는 민생의 정당으로 바뀌고 있다. ‘삼개대표’ 이론이 가져온 변화다.


중국 공산당은 물론 중앙정부의 비중 있는 정책 발표 문건에는 거의 언제나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바로 ‘지도 사상’이다. 발표하는 결정이나 정책, 의견이 만들어진 가장 기초적인 사상적 기초를 밝히는 이 부분에는 예외 없이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毛泽东) 사상, 덩샤오핑(邓小平) 이론, 그리고 따옴표를 붙이는 “3개대표(三个代表)”가 들어가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중국의 헌법 서언에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과 함께 그 순서를 지키며 들어가 있다.

이 이론은 2000년 2월 25일 장쩌민이 광둥(广东)성의 마오밍(茂名)시를 현지시찰하는 자리에서 처음 언급한 것인데, 그 이후 이론가들에 의해 정교화되어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다음 공식화된 것이다.

공산주의를 처음으로 주창한 마르크스, 인류 최초로 공산주의 혁명을 완수한 레닌, 중국 혁명의 아버지 마오쩌둥, 개혁개방을 통해 현대 중국을 만든 덩샤오핑의 이름은 우리 머릿속에 선명한데, 주창한 사람의 이름 없이 언제나 나오는 ‘삼개대표’는 과연 어떤 것이고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가지고 있을까?

이 사상에 의하면 중국공산당은 1) 선진사회 생산력의 발전 요구를 대표하고 2) 선진문화 전진 방향을 대표해야 하며 3) 광범위한 인민의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산력의 발전’은 경제발전을 의미하며, ‘문화 전진’은 문화적 발전을, 그리고 ‘인민의 기본 이익’이란 정치적 통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언뜻 보면 중국공산당이 가졌던 기본 입장과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공산당이 경제발전에 힘쓰겠다는 것이고, 선진 문화 창조에 적극 나선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전에도 항상 주장했던 내용이다. 그런데 이 삼개대표 이론의 핵심은 세번 째 즉, '공산당이 광범위한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는데 있다.

중국 공산당은 자본가의 착취와 압제로부터 노동자, 농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설립된 당이다. '광범위한 인민의 이익'은 곧 노동자 농민에 국한되지 않고 더 폭넓은 계층의 이익도 대변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이 이익을 대변해주겠다고 나선 새로운 계층은 누굴까?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에는 다섯 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이 국기를 처음으로 도안한 쩡리앤송(曾联松)에 의하면, 그중 가장 큰 별은 공산당을 상징하며, 나머지 작은 네 개의 별은 각각 노동자, 농민, 소규모 자산계급, 그리고 민족자산가 계급을 나타낸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이 노동자, 농민, 소기업가, 민족자산가를 대변한다는 의미다.

삼개대표는 여기에 별(계층) 하나를 더 넣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다름 아닌 '개혁 개방이후 돈을 번 현대 자산계급'이다. 떼 돈 번 사람, 자본가, 기업가라고 해도 좋다. 중국 공산당이 타도의 대상이었던 자본가의 이익도 보듬겠다는 선언이다.

오랜 세월 동안 국민당과 군벌들에 의한 핍박과 공격, 그리고 항일전쟁과 국공 내정을 거친 후 대륙을 차지한 공산당의 입장에서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은 한편으로 기쁜 일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아선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민들에게 당장의 먹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고민의 시작이었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공산당 지도부는 2가지의 노선을 취했다. 마오쩌둥으로 대표되는 일파에서는 철저한 중앙집권적 통제경제를 통해 인민 경제의 발전을 추진했다. 대약진운동이 대표적인 경우다. 한편 류샤오치(刘少奇)와 덩샤오핑 등 실용 파는 시장경제적 요소의 도입을 통한 경제부흥을 추진했다. 특히 류샤오치는 자산계급의 적극적인 동참을 위해 각지의 공장들을 방문해 자본가들을 격려하고, 심지어는 ‘자산계급이 노동자들을 착취하지만 반면 이 착취 덕분에 노동자들이 밥을 먹는다’라는 ‘착취유공론’까지 들먹일 정도였다.

두 세력 간의 논쟁은 파국으로 끝났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닥치면서 류샤오치, 덩샤오핑 등 실용파들은 찾아보기도 힘들 만큼 처절하게 숙청 당하고, 자산계급들은 ‘계급의 적’ ‘인민의 적’이라는 이유로 백주대낮에 거리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벌어진 것이다.

마오쩌둥의 죽음과 그 뒤를 이은 사인방의 체포, 그리고 화궈펑 시대와 덩샤오핑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은 개혁과 개방을 위한 길로 나아갔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민의 적’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자산계급, 즉 부르주아들을 공산당에 입당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져 갔지만, 자산계급은 언제나 공산당과 괴리된 채 살아가고 있었고, 이에 따라 중국공산당 또한 사회의 실질적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는, 대중과 유리된 정당이 되어 가고 있었다. 장쩌민이 ‘삼개대표’ 사상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자산계급을 ‘예전에는 동맹이 아니었으나 실질적으로 공산당의 통치에 해를 주지는 않을 계급’으로 규정하면서 중국공산당은 다시 대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