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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나가떨어지는 중국의 스타트업

14억 내수시장을 무기로 빠르게 규모를 키운 중국 스타트업 (신생 벤처기업)들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직원이 수천 명이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후에도 재무상태가 불안한 경우가 많다. 최근 4~5년간 화려하게 등장한 중국 스타트업들이 수익성을 외면한 채 몸집만 부풀리다 흔적 없이 사라진 사례가 많다. 그 과정에서 투자자는 물론 소비자들의 피해도 컸다.

2016년 초만 해도 러스왕(乐视网·LeTV)은 ‘중국판 넷플릭스’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이 회사는 2004년 자웨팅(贾跃亭) 전 회장이 31세 나이에 세운 중국의 대표적 IT 기업이다. 콘텐츠 스트리밍 사업으로 시작해 자동차·스마트폰·영화 음악 콘텐츠·스포츠·인터넷 금융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승승장구했다.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며 회사이름도 러에코(LeEco)로 바꾸었다. 그러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문제였다. 자금난에 시달리다 결국 스타 최고경영자가 퇴진했고, 당국의 재무조사 등 악재에 시달리다 상장 폐지 수순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디디추싱(滴滴出行)이 중국의 차량공유 애플리케이션 시장점유율 90% 정도를 차지한 절대 강자지만 2016년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이다오(易到)는 2010년 5월 중국 1호 차량공유 앱이다. 디디추싱과 우버에 밀려 고전하던 이다오에 2015년 10월 러스왕이 7억 달러(약 8502억원)라는 거액을 투자했다. 디디추싱을 잡으려는 이다오의 주요 전략은 파격적 할인이다. 충전한 금액의 2배를 주는 방식으로 사용자들은 끌어당겼다. 5000위안(약 85만원)어치의 선불카드를 사면 60인치 대형 러스TV를 줬다. 2016년 4월 일일 호출건수가 60만 번을 돌파했고, 23억 위안(약 3949억원)의 충전이 쌓였다. 그러나 러스왕이 그해 11월부터 자금위기를 맞으면서 이다오 역시 도미노로 쓰러졌다. 대금을 받지 못한 운전자들이 이용자들의 호출을 받지 않았고, 충전한 금액도 무용지물이 됐다.

중국 최대 공유 자전거 업체이던 오포(ofo)도 수익성을 등한시하고 몸집만 불리다가 쓰러졌다. 2015년 6월에 서비스를 시작해 250개 넘는 도시로 확장했고, 한국을 포함한 20개 국가에 진출했다. 그러나 수익구조를 찾지 못해 고객이 낸 선불금과 보증금을 가져다 썼고, 결국 자금난으로 이어져 99~199위안의 보증금을 떼인 이용자가 1000만 명을 넘는다.

최근 3800억원대의 매출 부풀리기 회계조작으로 문제가 된 루이싱도 무섭게 몸집을 키워온 회사다. 2017년 10월 중국 베이징에 첫 점포를 내고 본격적인 커피 체인점 사업에 뛰어든 루이싱은 3개월 만에 13개 도시로 영업을 확대했다. 500만 잔의 커피 판매, 130만 명의 회원을 모았다. 사업 초반부터 스타벅스를 경쟁상대로 지목하고 중국 안팎에서 대형 투자를 유치하면서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다. 지난 1월 기준 중국 내 매장수는 4910개로 스타벅스를 제쳤다. 일일 평균 7개씩 매장이 늘어난 셈이다. 2021년 말까지 점포를 1만 개로 늘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루이싱은 매장에서조차 현금 거래를 완전히 없애고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만 주문을 받았다. 앱을 통해 80~90% 할인쿠폰을 수시로 뿌렸다. 6위안(1000원) 정도의 배송비를 내면 30분 이내에 배달을 해줬다. 콧대 높은 스타벅스도 루이싱의 기세에 밀려 2018년 11월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픽업 매장 중심으로 매장 면적을 최소화하고, 100% 온라인으로만 주문을 받아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의 커피를 제공하는 한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 편리성을 높인다는 사업 모델은 매력적으로 보였지만 수익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루이싱은 2018년 16억1900만 위안(약 28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해 9000만 잔의 커피를 팔았는데 커피 한잔을 팔 때마다 평균 18위안(약 3100원)의 손해를 봤다는 계산이 나온다. 외형을 무리하게 늘리는 과정에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공짜 티켓' 등 과도한 프로모션도 독이 됐고, 결국 회계장부에 손을 대고 매출을 부풀려 투자금을 유치해 사업을 확장시킨 것이다. 기업 신뢰에 치명적인 대형 회계부정 사건까지 터진 루이싱이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진다. 미국에서 집단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리고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시장참여자들이 루이싱커피를 계속 지켜봤는데, 루이싱커피가 여기저기서 자금을 조달해 돌려막기를 하다가 코로나19 사태를 만났다. 돈이 돌지 않고 무리하게 확장했던 가맹점의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돌려막기로 장부를 조작해 왔던 것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루이싱커피는 분기마다 1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내고 있는데, '아름다운'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 투자를 받아 기반을 쌓아가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왔을 때 버틸 수 있는 현금이 없다. 오히려 돌려막아야 할 빚이 넘치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쓰러지는 기업이 루이싱이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3위 전자상거래업체 핀둬둬와 중국 전기차 제조 스타트업 웨이라이(蔚来·NIO)가 유력한 ‘다음 타자’로 지목된다. 두 업체는 앞선 사례처럼 수년째 투자금을 소모하면서 기업 덩치를 키웠고,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증시에 상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5년 설립된 핀둬둬는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 대신 중국의 중소도시를 공략했다. 친구와 함께 공동구매를 할수록 가격을 할인해주는 정책을 내세워 이용자를 늘렸다. 하지만 지난해 적자 규모는 85억4000만 위안(약 1조4600억원)에 달한다. 할인을 유지하기 위해 100억 위안의 보조금을 남발했는데, 중저가에 집중된 소비 구조 자체가 수익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중국판 테슬라로 불리던 웨이라이는 텐센트·징둥닷컴·샤오미 등 중국 기업체의 거대 자본을 유치하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자체 기술개발이 늦어지는데다 테슬라 모델3와의 경쟁에서 뒤지면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16년엔 25억7300만 위안(약 442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손실 규모가 112억 위안(약 1조9264억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느슨한 중국의 기업 관리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계속 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