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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달은 중국 CEO들의 퇴임, 그들이 물러나는 이유

최근 1-2년 사이 중국 대표 기업 CEO들의 퇴임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충칭천바오(重庆晨报) 보도에 따르면, 중국 기업 수장들의 퇴임은 2018년 말부터 최근 2년 간 집중됐다. 50-60년대생 ‘창업의 전설’들부터 80년대생 ‘젊은 CEO’까지 중국 재계 걸출한 인물들이 기존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8.11/ 장이밍(张一鸣), 진르터우탸오(今日头条) CEO 사임
-2019.3/ 왕웨이(王卫), 순펑익스프레스(顺丰速运) 집행이사 사임, 6개월 후 순펑상마오(顺丰商贸) 이사직 사임
-2019.9/ 마윈(马云), 알리바바 이사회 주석 사임
-2019.12/ 왕촨푸(王传福), 비야디정밀제조(比亚迪精密制造) 이사 등 그룹사 고위직 사임
-2020.4/ 류창둥(刘强东), 징둥스제마오이(京东世纪贸易) 법인대표 등 46개 계열사 주요보직 사임
-2020.7/ 황정(黄峥), 핀둬둬 CEO 사임

7월 1일, 핀둬둬(拼多多) 창업주 황정(黄峥)이 CEO에서 물러나며 충격을 안겼다. 40세라는 젊은 나이도 화제였지만, 회사가 최고 주가를 달릴 때 택한 선택이어서 더욱 이목을 끌었다. 공동구매 쇼핑몰 핀둬둬는 올 들어 주가 최고점을 수차례 경신하며 시가총액이 2.5배로 뛰어올랐다. 지난 6월 말 창업주 황정의 몸값은 마윈을 뛰어넘어 중국 부호 2위에 랭크된 바 있다. 황정은 CEO에서 물러나면서 핀둬둬 지분을 43.3%에서 29.4%로 줄였다. 이로써 1000억 위안(약 17조 원)상당의 자산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중국 매체들은 분석했다. 황정은 CEO 자리를 기존 CTO 천레이(陈磊)에게 물려주고, 향후 회장직은 유지한다.

중국 기업 수장들이 자리에서 물러난 배경에는 개인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마윈의 퇴임에는 중국 당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이 돌았고, 징둥의 류창둥은 2018년 성추문으로 이미지가 실추된 이후 대외적인 활동을 축소하는 분위기다. 핀둬둬 황정의 CEO 퇴임 선언 이후 일각에서는 '먹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처럼 제각각인 배경과 의혹 외에 공통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중국 매체 다중왕(大众网)은 기업 수장들의 이른 퇴임의 목적으로 1)후배 양성, 2)복잡한 업무 탈피, 3)기업의 개인화 방지라는 세가지를 꼽았다. 이 세가지 목적은 어찌 보면 모두 같은 선상에 있는 문제들이다. 칭화대 경영관리학원 닝샹둥(宁向东)교수는 “회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지고 나면, 후임에게 일부 의사결정권을 맡기고 굵직한 일들에 집중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기업으로서는 보다 많은 사람이 책임을 분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창업주의 이미지를 옅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중요한 직무를 내려놓음으로써 개인의 이미지와 회사의 이미지를 분리시키려는 것.

마윈의 경우 우선 후계자로 장융을 지목한 뒤, 외부에서 장융을 알리바바 수장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일정 시간을 거친 뒤에야 이사회 주석직에서 물러났다. 핀둬둬 황정도 CEO 사임을 선언하며, "핀둬둬는 개인의 능력을 과시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개인의 색깔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회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브랜드 전략 전문가 리광더우(李光斗)는 "기업가 개인의 브랜드는 기업 브랜드 형성의 지름길이며, 제품 완판이나 이슈 몰이를 할 수 있지만, 그 이미지가 훼손되는 즉시 기업 전체가 타격을 입는다는 양날의 검과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실상 이들의 퇴임을 '완전한 퇴임'이라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이를 두고 중국 매체에서는 '반퇴임 모드(半退隐模式)'라고 표현한다. 퇴임은 했지만,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라는 의미에서다.

실제로 퇴임 후에도 사내에서 여전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가가 많다. 주요보직에서 물러났지만 징둥 내 류창둥의 발언권은 여전히 강력하다. 현재 징둥그룹 지분 15.4%를 소유, 제2대 주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윈도 알리바바 회장과 의사회 주석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알리바바의 움직임에는 장융보다는 '마윈'이라는 이름이 거론된다. 지분 보유 현황을 살펴보면(7월 9일 작성일 기준), 마윈은 개인 주주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지분(6.2%)의 소유자다.(7월 13일,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마윈의 지분이 4.8%까지 줄어든 것으로 업데이트 됨.) 그는 알리바바의 최대주주는 아니지만, 영구파트너(永久合伙人)로서 알리바바에 대한 통제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마윈의 '은퇴'는 그가 알리바바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윈의 시대의 작별' 혹은 '세대 교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중국 매체들은 입을 모은다.

중국 재계 전설들의 이른 퇴임은 결국 비즈니스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인 셈이다. 후임을 양성하며 CEO리스크는 낮추되, 자신은 중대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중국 CEO의 이른 퇴임을 복합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