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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8개월째 옥살이, GKL 카지노직원

작년 6월 중국 공안 당국은 베이징과 상하이, 창저우 등에서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업체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와 파라다이스 직원 13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8개월째 현지 구치소에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의 체포 배경에 대해선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반부패 정책 때문이라는 얘기만 나올 뿐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많은 중국인이 세계 곳곳에서 도박을 즐기고 있지만, 중국 법엔 도박과 도박 알선 행위가 모두 불법이다. 중국은 환전이나 해외 송금 등 외환관리법 규정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까다롭다. 그렇다면 하룻밤에 수억원씩 잃고 따는 중국 '큰손'들은 어떻게 해외에서 카지노를 할 수 있을까. 바로 현지에서 활동하는 에이전트(Agent·전문 모집인) 덕분이다. 카지노 기업들은 '불법'이란 굴레 때문에 해외에서 직접 손님을 데려오지 않는다. 그래서 불법 시비가 생길 수 있는 '궂은일'은 에이전트들이 맡는다.

가령 한국 카지노에 가서 1억원 정도의 게임을 하려는 '왕 서방'이 있다 치자. 왕 서방은 한국 카지노와 관계가 있는 중국 현지 에이전트에게 1억원을 입금해주고 한국엔 맨몸으로 온다. 에이전트는 카지노에 왕 서방이 1억원을 입금했다고 알려준다. 왕 서방은 카지노에서 1억원어치 칩을 받아 게임을 하고 중국으로 돌아가서 에이전트와 따로 정산을 한다. 게임에서 5000만원을 땄다면 1억5000만원을 에이전트에게서 받고, 5000만원을 잃었다면 5000만원만 받는 식이다. 이때 발생하는 환전(換錢) 차익이 에이전트의 주요 수입원이 된다. 샌즈그룹, MGM 등 세계 최대 카지노 기업은 물론 그랜드코리아레저, 파라다이스 등 한국 카지노 업체에도 이런 에이전트들이 있다.

일부 에이전트는 카지노 업체와 정식 계약을 맺고 일하지만, 상당수 에이전트는 정식 계약을 맺지 않고 활동하기도 한다. 카지노 업체 입장에선 사건이 벌어지면 "저 에이전트는 우리 회사와 관련 없다"고 밝힐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에이전트들이 탈선하는 경우다. 손님에게 돈 빌려주고 비싼 이자를 요구하는 고리(高利)대금업을 하기도 하고 손님에게 비싼 접대와 향응을 약속하기도 한다. 에이전트가 손님에게 빌려주는 돈을 업계에선 '꽁지돈'이라고 한다. 이번에 불거진 사건도 중국 에이전트의 과도한 영업 활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제권 밖에 있는 현지 에이전트 활동으로 함께 수사를 받게 된 한국 카지노 업체 입장에선 매우 억울한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지노 업계에 따르면, 이 사건 수사는 허베이성 창저우시 공안에서 시작됐다. 창저우는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180㎞ 떨어진 인구 700만명가량의 도시이다. 그런데 수년 전 창저우시 공무원들이 한국으로 카지노 관광을 왔다고 한다. 이들은 일종의 에이전트 역할을 하는 H사를 통해 한국에 왔고 돈을 잃자 H사에서 거액을 빌렸다고 한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중국에 돌아가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H사에서 빚 독촉이 오자, 일부 공무원들은 시 공금을 빼돌려 빚을 해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무원들의 공금 횡령이 들통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H사를 통해 돈을 빌린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일각에선 창저우시 일부 공무원들과 꽁지돈을 썼던 일부 손님들이 화풀이 차원에서 H사를 공안에 제보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중국 공안은 오랜 기간 H사를 내사했고 그랜드코리아레저 등 한국 카지노 업체와 관련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작년 6월 본격 수사에 나선다. 일종의 기획 수사였던 셈이다.

하지만 수사는 큰 진전이 없었다고 한다. H사와 한국 카지노 업체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가 쉽지 않은 데다 H사에서 경리를 담당하는 여직원이 각종 자료를 들고 도피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직원이 오랜 기간 잠적하고 수사에서 큰 성과가 나오지 않자 카지노 업계에선 조만간 수사가 끝나고 억류된 직원들이 모두 풀려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하지만 잠적 두 달 만인 작년 8월 이 여직원은 톈진에서 붙잡혔다. 폭발 사고로 톈진이 쑥대밭이 된 직후 이 여직원은 부모에게 무사함을 전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있던 자신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하다 공안에 위치가 적발됐다고 한다. 여직원이 검거되자 공안 수사는 다시 가동됐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 사건으로 중국 구치소에 있는 카지노 업체 직원은 모두 13명이다. 이 중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이자 공기업인 그랜드코리아레저 직원이 7명으로 가장 많다. 공기업 직원들이 외국 수사기관에 장기간 억류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랜드코리아레저 직원 외에도 호텔과 카지노 사업을 하는 파라다이스 직원 6명도 베이징과 상하이 구치소에 구금돼 있다. 파라다이스의 경우 H사와는 거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져 이번 수사가 한국 카지노 기업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반부패 정책 추진 차원에서 수사가 확대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카지노 업계 관계자는 "시진핑 주석의 부패 추방 정책으로 카지노 도시 마카오의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면서 "형평성 차원에서 한국 카지노 기업을 수사한 게 아니냐 관측이 있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 사법 시스템이 한국과 다른 점도 구속된 직원 가족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피의자가 구속되면 아무리 길어도 20일 안에 기소를 해서 재판에 넘겨야 하지만, 중국 공안은 8개월째 이들을 가둬 놓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형이 확정되기 전까진 가족 면회조차 금지되고 변호사도 수사 기록을 열람한 뒤 외부에 누설할 수 없는 조항에 묶여 수사 진행 상황을 공개하지 못하는 등 중국 공안의 수사는 언제나 베일 속에 있다.

그랜드코리아레저는 법무법인 화우에 이 사건을 맡겼고, 검사 재직 시절 국제검사협회 부회장을 지낸 김준규 전 검찰총장 등이 자문을 맡고 있다. 김 전 총장은 검찰에서 보기 드문 '국제통'으로 알려져 있다. 화우는 중국 현지의 유명 로펌과 손잡고 이 사건에 대응하고 있다.

파라다이스 측은 오랜 기간 법률 자문 등을 맡아 왔던 중국 현지 로펌을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규 전 총장은 "H사 활동에 문제가 있었지 카지노 업체들이 직접 중국에서 손님을 유치했다는 증거들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기약 없이 공기업 직원을 포함한 한국인을 무더기 구금하는 것은 부당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수사가 장기화되자 그랜드코리아레저와 파라다이스 주변엔 '해결사'를 자처하는 인사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시진핑 주석의 가정교사 출신이다' '중국 공안 최고위 간부가 내 친구다'라는 식으로 업체에 접근해 많은 돈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안 수사가 워낙 예측 불가능하다 보니 그 틈을 노린 중국 법조 브로커까지 한몫 챙기려 든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 카지노 업체들은 정식 계약을 맺지 않은 에이전트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법 영업을 하는 에이전트들이 존재하고 도박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한, 중국 당국이 법의 잣대를 들이댈 때마다 그 피해는 결국 한국 카지노 업체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중국 중앙(CC)TV는 제주도 카지노 업체들의 중국 손님 유인 실태를 고발했다. 한국 카지노 업체들이 10만위안(약 1800만원)의 칩을 교환하면 '전문적인 마사지 서비스' 1회를, 20만위안의 칩을 교환하면 한국 무명 배우나 모델로부터 한 차례 성접대 서비스를, 50만위안의 칩을 교환하면 무명 배우 또는 모델 등이 2박 3일간 24시간 동반하는 서비스가 제공하는 조건을 걸고 중국인들을 유인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손님 유인 행위를 직접 담당하는 사람들은 중국 현지 에이전트인 것으로 전해졌다.

카지노 업계 관계자는 "통상 에이전트들은 VIP 고객 유치를 담당하는데 에이전트 사이에 경쟁이 심해질 경우 어떤 식으로든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VIP 손님 중심의 도박 사업보다는 쇼나 이벤트, 외식사업 등을 통한 대중 지향의 복합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사업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도박 수입이 전체 매출의 30%에 불과하고 나머지 70% 매출은 다른 문화관광 상품에서 나온다. 그랜드코리아레저는 이번 수사와 중국 당국의 카지노 금지 조치 여파 등으로 1년 전보다 매출이 10%가량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