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차스닥에 상장한 러스왕(乐视网 Letv)은 2015년 한때 주가가 179위안까지 상승했다. 시가총액 역시 1000억 위안을 넘어서며 중국 신성장 산업의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러스왕의 모기업인 러에코(LeEco⋅러스왕⋅乐视网)는 동영상 사이트에서 스마트폰, 영화 제작, 전기차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러에코는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전기차 생산을 목적으로 한 패러데이퓨처를 설립했다. 지난해 7월에는 2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평판TV 제조업체인 비지오를 인수했다. 8월에는 200억 위안을 투자해서 저장성에 슈퍼카 생산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이다. 러에코의 자동차 사업부문이 미국 협력업체에 5000만 달러에 달하는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 것이 밝혀지면서 자금 문제가 불거졌다. 뒤이어 당장 상환해야 할 채무만 100억 위안에 달한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고, 러스왕은 거래소에서 거래 정지됐다. 1월13일 러스왕은 롱촹중국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168억 위안을 투자하기로 했다는 공시를 발표하고 나서야 거래가 재개됐다. 급한 불은 껐지만, 러스왕의 미래는 미지수다. 이번 자금 수혈도 전기차 부문을 제외하고 현금 창출 능력이 있는 사업 부문에만 이루어졌다. 자웨팅은 엘론 머스크를 모방하면서 애플과 테슬라 같은 혁신기업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중국 주식시장의 거품이 꺼지자 자금위기에 빠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재들이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다.
‘중국판 넷플릭스’ ‘중국의 테슬라 킬러’등으로 불리며 급성장해온 러에코의 창업자 자웨팅(贾跃亭)이 6일 저녁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한 다음날 일간지 신징바오(新京报)는 '러에코 자웨팅 시대와 고별'이라는 기사제목을 썼다. 지난 5월21일 러에코 최고경영자(CEO)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한지 한달여만에 회장직도 내놓은 것이다.
2004년 창업한 러에코를 2010년 중국판 코스닥인 창업판에 상장시킨 자웨팅이 상장사의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6일 오전 성명을 통해 “모든 책임을 지고 회사가 지고 있는 부채를 갚아나겠다”고 밝힌 지 반나절만에 나온 소식이다.
자웨팅이 투자한 미국 전기차 업체 패러데이퓨처(FF)가 납품대금을 주지 못해 공장 건설을 중단했다는 소식이 나온 작년 10월부터 불거진 자금난은 한 달뒤 11월 자웨팅이 사업확장을 중단하고 연봉 1위안(약 169원)만 받겠다고 선언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자웨팅의 장강(长江)상학원 동문들과 부동산 개발업체 룽촹(融创)중국 등이 돈을 대는 등 ‘백기사’로 나섰지만 3일 자웨팅 부부와 러에코 계열 3사가 보유한 12억 3700만위안(약 2090억원)의 자산이 법원에 압류되고, 4일엔 자웨팅과 그가 사실상 소유한 러에코지주회사가 보유한 러에코 주식 5억 1900만주 역시 동결되는 등 자금난이 한계 수준에 이르렀다. 자웨팅은 지배주주로서의 지위는 유지하지만 러에코에 대한 영향력은 예전만큼 못될 것으로 관측된다.
자웨팅은 1973년 중국 산시성 린펀의 시앙펜현 출신이다. 대학에서 세무학을 전공한 그는 안정적인 삶을 살기 원했던 부모의 뜻에 따라 1995년 산시성의 세무 공무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모험을 즐기는 자 회장은 1년 만에 부모 몰래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후 석탄업, 통신설비업 등에서 돈과 경험을 얻은 그는 콘텐츠=공짜’라는 중국인들의 인식을 역이용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러스왕을 설립, 2015년 중국 증시 A주 주식 부자 1위에 올랐다. 자웨팅은 검은 티에 청바지를 입어'중국의 (스티브)잡스'로 불리며, 2015년 스마트폰 제품 발표회에서 “애플을 해치우겠다”고 호언하는 등 거침없는 야심을 숨기지 않아왔지만, 결국 무분별한 사업확장에 따른 부채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중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여겨지는 기업부채 증가의 피해자가 된 러에코의 쇠퇴 배경으로 ▲생태계로 포장된 문어발 경영 ▲오너 고집이 키운 리스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너무 돈을 많이 태운 것 등이 꼽힌다.
▲생태계로 포장된 문어발 경영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시작한 러에코는 스포츠중계 영화 금융 차량호출 등 서비스는 물론 스마트폰 TV 자동차 등 하드웨어 영역에서도 다원화의 길을 걸어왔다. 러에코는 이를 생태계 전략으로 묘사했다. 무관한 영역 진출이 아니기 때문에 문어발 경영은 아니다는 게 러에코의 설명이었다.
샤오미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의 내로라 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도 내세우는 생태계 전략을 떠오르게 한다. 문제는 문어발 경영이든 생태계 전략이든 재무능력 범위내에서 추진하는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실패의 쓴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러에코는 2016년 6월 스마트폰업체 쿨패드를 인수하고 7월엔 미국의 2위 TV업체 비지오를 20억달러에 사들이기로 합의할만큼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쿨패드는 작년말 채용한 예비 신입사원 260명에 대해 올 5월부터 보상금을 주면서까지 채용계약 해지에 나서 논란을 빚었다.
한 때 중국 스마트폰시장에서 3위까지 올랐던 쿨패드는 1분기 점유율 11위에 머물렀다. 차오상(招商)은행이 러에코에 대출한 쿨패드 인수 자금에 대해 이자를 받지 못하자 상하이법원에 자산동결을 요청했고, 법원이 최근 이를 받아들였다. 러에코는 앞서 4월 비지오 인수를 스스로 취하했다.
러에코는 지난해 스마트폰 협력업체에 대한 납품대금 결제가 연체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금난설을 부추겼다.
▲오너 고집이 키운 리스크
러에코 자금난의 또 다른 원천은 자동차 사업이다. 전기자동차 사업을 위해 투입한 자금은 많은데 결실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자웨팅이 투자한 미국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FF의 공장 건설이 멈춘 네바다주 의 댄 슈와르츠 재정국장이 “러에코는 폰지사기(Ponzi scheme)”라고 폄하할 정도였다.
자웨팅은 스마트폰이 주도해온 인터넷 플랫폼의 자리를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전기차가 주도할 것으로 보고 승부를 걸어왔다. 전기자동차 생산 판매는 물론 애프터서비스(AS) 충전과 차량호출 보험 등 관련서비스까지 염두해두고 있다.
문제는 러에코의 자동차 사업을 자웨팅 개인의 고집으로 밀어부쳤다는데 있다. 자웨팅은 전기차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처음 꺼냈던 2013년 임직원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 연구개발에서부터 양산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300억~400억위안(약 5조700억~6조 7600억원)이 자금조달이 문제였다. 러에코의 시총은 612억위안(약 10조 3428억원)에 달한다.
자 회장은 2014년 들어 해외에서 절반을 보낼만큼 자리를 비웠다. 미국에 주로 머문 그는 현지조사를 통해 자동차 사업 진출을 결정했다. 2015년 4월 케이맨군도에 패러데이퓨처(FF)글로벌을 등록하고 글로벌 본부를 미국 실리콘밸리에 세우는 것으로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본사에서 직접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기가 여의치 않자 내놓은 궁여지책이었다.
FF글로벌은 2016년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6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전기차 콘셉트카를 내놓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FF는 미국 공장 건설에 나서는 한켠 올초 CES에 양산형 전기차를 출품했다. 자웨팅은 또 러에코자동차를 통해 중국에서도 전기차 사업을 시작했다. 2016년 4월 전기차 러시(LeSee) 컨셉트 모델을 공개한데 이어 12월엔 저장성에서 전기차 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2018년까지 연간 40만대 규모의 전기차 양산을 위해 120억위안(약 2조 280억원)을 투입하기로했지만 관계사인 FF의 미국 공장 건설 중단처럼 자금난으로 진척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끊이지 않아왔다.
창업자의 고집스런 의사결정은 성공하면 혜안이 되지만 실패하면 독단이 된다. 자웨팅은 러에코의 모든 직위를 내려놓으면서도 FF 전기차 양산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자동차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러에코는 이미 ‘007 본드카’로 유명한 아스톤마틴을 비롯헤 베이징자동차 광저우자동차 등과 제휴관계도 맺었다.
하지만 자웨팅은 “창업은 게임이 아니다. 자기 혼자 즐거우면 되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그게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다”라는 신징바오의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됐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너무 돈을 많이 태운 것
자웨팅은 작년 11월 자금난을 인정한 내부 메일에서 “자금을 태워 성장하는 생태계 전략과 고별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무리한 자금 투입을 뒤늦게 인정한 것이다.
러에코는 2010년 선전증권거래소 창업판에 상장한 이후 자금조달 규모를 크게 늘려왔다. 신징바오가 인용한 윈드 통계에 따르면 최근 7년간 러에코가 조달한 자금은 300억위안(약 5조 700억원)으로 이 가운데 31%가 증자 등 직접금융이고 은행 대출 등 간접금융이 69%에 달했다.
은행 대출 자금의 경우 2010년 2억350만위안(약 397억원)에서 2014년 26억 6000만위안(약 4495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2015년 90억 4700만위안(약 1조 5289억원)으로 급증했다. 2015년은 러에코와 자웨팅이 쿨패드 지분투자를 시작하고 차량호출업체 이다오용처(易到用車)를 7억달러에 인수하고, 미국의 FF를 설립한 시기다.
자웨팅은 6월28일 러에코 주총에서 “비상장 계열사들의 자금난이 예상을 뛰어넘는다”고 인정했다. 러에코의 상장 자산은 동영상스트리밍 사업에 집중돼있다. 러에코의 자금난 소식이 중국 언론을 통해 증폭되면서 은행들이 자금회수에 나선 것도 자금난을 심화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11월말 기준 러에코의 비상장 계열 부문에서 스마트폰 협력업체들에 연체한 대금만 해도 100억~130억위안(약 1조 6900억~2조 1970억원)으로 추정됐다.
러에코는 계열사 자금 유용설까지 휘말렸다. 러에코가 인수한 뒤 이다오로 이름을 바꾼 이다오용처의 창업자 저우항(周航)은 올 4월 “러에코가 이다오의 자금 13억위안(약 2197억원)을 유용했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러에코 위기의 이면에는 재무리스크 관리의 실패가 있는 것이다.
중국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은 PC 중심에서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 외부 제작 동영상을 단순히 서비스하는 방식에서 자체제작 영화나 드라마, 종합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개인의 라이브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업 영역도 확장하는 추세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아이리서치(艾瑞)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중국의 월단위 동영상 조회 모바일 단말기 수는 9억4500만대, 월단위 시청시간은 177억 시간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1월 대비 각각 20.08%, 27.18% 급증한 수준이다. 올 1월 기준으로는 9억5000만대로 10억대 고지를 향한 질주도 계속되고 있다.
아이치이와 텐센트동영상, 유쿠투더우 애플리케이션(APP)을 이용한 단말기가 각각 4억7400만대, 4억2500만대, 2억8000대로 나란히 1~3위를 차지하며 확실한 1군 진영을 형성했다. 모바일 단말기를 통한 월단위 동영상 시청시간도 아이치이 50억2000만 시간, 텐센트동영상 37억7000만시간, 유쿠투더우 30억2000만 시간으로 전체 시청시간에서 이들 3사의 비중이 70.25%에 육박했다. 4위인 러스동영상 시청시간은 11억7000만 시간으로 1군과의 격차가 컸다.
1월 기준 PC로 동영상을 시청한 네티즌은 총 5억3000만명으로 지난해 1월 대비 증가율이 0.3%에 그쳤다.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의 중심이 PC에서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PC 동영상 시장에서도 3사의 우위는 확실했다. 아이치이, 유쿠투더우, 텐센트동영상의 액티브 유저는 각각 6277만, 5170만, 3095만명으로 역시 1~3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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