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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추(吃醋)-식초를 먹다.

중국에서는 식초 맛을 쏸(酸)이라 발음한다. 중국어에는 유독 이 '쏸'이라는 글자가 붙은 말이 많다. 예를 들어 신쏸(心酸,마음이 쓰리다, 슬프다)、쏸추(酸楚, 슬프고 괴롭다)、비즈이쏸(鼻子一酸, 코끝이 찡하다)、한쏸(寒酸, 초라하다) 등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사람들의 질투심 내지는 힘든 심정 등을 나타낸다.

츠추(吃醋), 즉 식초를 먹는다는 말은 중국에서 곧 질투를 한다는 뜻으로 통한다. 유래는 당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태종 이세민이 방현령이라는 재상에게 첩을 한명 하사(?) 하려고 했다. 그러나 방현령의 본처가 완강히 첩을 들이는 것을 반대했다. 이에 본처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꾀를 냈다. 식초를 사약으로 속여 거부하면 사약을 마셔라고 보낸 것. 그런데 본처가 이 식초를 주저 없이 마시는 바람에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때부터 식초를 먹다 는 남녀관계에서 제3자의 등장 때문에 생기는 질투심을 뜻하게 됐다는 전언이다.

중국 지도를 보면 중원 대륙의 동북부 중앙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태행산맥(太行山脉)이 있다. 이 태행산맥의 동쪽이 산둥(山东), 그 서쪽이 바로 산시(山西) 지방이다. 산시는 과거 춘추전국시대에는 진(晋)나라가 있었던 자리로 고대 중화민족의 발상지 중 한 곳이다. 지금의 산시성 수도 타이위안 근처에서 당 왕조가 탄생했고, 명나라 때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과거의 위상이 더 높고 찬란했던 지역이라 이 곳 사람들은 중원(中原)의 일원이자 본류(本流) 중국인의 후예라는 자부심과 라오천추(老陈醋)로 대표되는 식초 문화의 발상지라는 또 하나의 자부심이 가득하다.


산서성의 식초 제조 역사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 <상서>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므로 그들의 식초 역사는 대략 3000년 정도는 족히 되는 셈이다. 산시 지역은 ‘식초의 고향(醋乡)’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산시 사람들에게 식초는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었다.

중국에는 남쪽은 달고 북쪽은 시다(南甜北酸) 말이 있다. 남방 사람들은 설탕으로 맛을 내고, 북방 사람들은 식초로 간을 맞췄기 때문일 것이다.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고, 동쪽은 맵고 서쪽은 시다(南甜北咸,东辣西酸)라는 말도 있다. 땅덩어리가 워낙 크다 보니 어디를 기준으로 나누느냐에 따라 북쪽이 되기도, 서쪽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서쪽과 북쪽은 산시성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산시 사람과 식초(醋)의 관계는 마치 스촨의 마라(麻辣), 충칭의 훠궈(火锅)를 연상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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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초가 있으면 쌀겨도 먹을 수 있고, 식초가 없다면 고기도 맛이 없다(有醋可吃糠,无醋肉不香: ), 참기름의 향기는 1리를 가고, 식초의 향기는 10리를 간다(一里香油十里醋 ), 밥통은 버리더라도 식초병은 못 버린다( 宁可丢了饭担子,不敢扔了醋罐子), 전쟁터에도 식초 통은 지참하고, 총은 뺏길지언정 식초 통은 사수한다(打仗也带着醋葫芦,交枪不交醋葫芦: ), 식초가 없으면 밥을 안 먹고, 식초가 없는 식사는 식사도 아니다( 无醋不吃饭,无醋不成席). 산시성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말들이다. 이들이 얼마나 식초를 사랑하고 애용해왔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산시 성에는 현재 100곳이 넘는 식초 생산 공장이 있다. 유명한 칭쉬라오천추(清徐老陈醋) 외에도 링촨위촨라오천추(陵川玉泉老陈醋) 등 많은 브랜드가 있다. 식초의 종류도 다양해서 라오런추(老陈醋)、밍터추(名特醋)、솽추(双醋)、천추(陈醋)、터추(特醋)、진추(晋醋)、웨이추(味醋)、쉰추(熏醋) 등이 있다. 또한 동일 품종 내에서도 사용하는 원료 및 생산 방식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식초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건강 식초, 미용 식초, 다이어트 식초 등 지금도 부단히 업그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타지역과 대비하여 유독 산시성 사람들이 식초를 많이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산시성은 원래 황토고원에 위치하고 기후가 건조하며 기온 차가 크고 물과 흙이 알칼리성을 띈다. 반면 산성을 띄는 식초는 알칼리를 중화시키고 부드럽게 하는 작용을 한다. 식초를 먹으면 인체 속의 산과 알칼리의 평형을 이룰 수 있어서 건강에도 매우 유익하다고 한다.

둘째, 산시성은 석탄이 풍부하고 채굴이 많아 공기 중에 일산화탄소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식초가 이를 없애는 작용을 한다.

셋째, 산시성에는 면으로 만든 음식이 많은데 식초가 면 음식의 소화촉진을 돕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식초를 최적의 조미료로 인식, 천 년을 넘게 식초 위주의 맛내기 식습관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산시성 사람들이 말하는 식초의 효능으로는

첫째, 식초는 음식의 성질과 맛을 바꾼다. 식초가 들어가면 음식은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특히 생선 요리에 식초를 넣으면 가시를 부드럽게 하고 비린내를 약하게 해, 생선 본래의 향이 두드러지게 한다.

둘째, 냉채를 만들 때면 식초는 넣으면 감칠맛이 더해지는 동시에 세균이 번식하지 않도록 해준다.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셋째, 식초는 코와 입속 점막의 감각을 자극, 식욕을 돋움은 물론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한다. 식초는 음식물에 닿아 분자를 잘게 부숴 흡수가 더 잘 되도록 한다.

넷째, 중의학에서는 식초가 비장을 튼튼히 하고 신장을 이롭게 하며 폐와 비장을 튼튼히 함으로써 간염을 치료하고 신장에 이로움을 주고 빈혈을 막아준다고 한다.

이외에도 신진대사 촉진, 피로 회복, 동맥경화 예방, 혈액 속 알칼리와 산성을 조절함으로써 각종 질병을 예방해주고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청나라 건륭황제 때는 후궁들의 어혈(郁血病) 치료를 위해 전국의 명의를 동원, 정곤단(定坤丹)이라는 약을 제조했다고 한다. 이때 20여 가지 한약재를 우려내는데 사용한 것이 바로 산시성의 라오천추였다. 산시 지방 사람들은 몇 천년 전부터 식초에 여러 가지 오묘한 작용이 있음을 알고, 이를 통해 '웰빙'을 누려온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