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상방 문화는 명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에서는 재화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상인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그러나 상인들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사농공상(士農工商)의 맨 마지막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제도의 사각 지대에 놓였고, 다양한 외부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이에 상인들은 지연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강력한 집단을 형성해 스스로를 지키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정보를 공유하고 자금을 대주는 등의 상부상조를 통해 이익을 최대화 시켜나갔다.
이때부터 산시(山西)방과 후이저우(徽州)방을 필두로 차오저우(潮州)·산시(陕西)·닝보(宁波)·산둥(山东)·푸젠(福建)·둥팅(洞庭)·장유(江右)·룽유(龙游)방 등 이른바 10대 상방이 중국의 돈줄을 움켜잡고 경제계를 주름잡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상방도 진화했다. 구두수선, 솜 타는 일로 시작, 주식·부동산·자원 투자를 통해 중국의 최고 상인 집단이 된 원저우 상방이 등장했다. 강력한 네트워크와 체계적인 상부상조 시스템으로 유명한 원저우(温州) 상인들은 중국의 유태인으로 불린다. 중국 민영병원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의료 마피아 '푸텐(莆田)상방', 전자상거래와 물류를 중심으로 성장한 항저우(杭州)상방도 있다.
상방을 보면 중국의 경제 흐름이 보인다. 그렇다면 지난 10년 중국에서 가장 '핫'한 상방은 어디일까? 바로 차오산(潮汕) 상방이다.
‘차오산’은 중국 광둥(广东)성의 연해도시 산터우(汕头)시, 차오저우(潮州)시, 제양(揭阳)시를 통칭하는 말이다. 중화권 최고 갑부 리카싱 회장과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도 모두 이 지역 출신 기업인이다.
막강한 재력과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중국 상인단체 ‘차오산(潮汕) 상방’이 기존 절강성 원저우(温州), 푸톈(莆田) 등지의 전설적인 상인들을 따돌리고 중국 재계를 주름잡고 있다. 부동산이나 제조업으로 부를 축적한 원저우, 푸톈 상인들과 달리 차오산 상인들은 인터넷, 첨단 기술 등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미래 먹거리를 장악해나가고 있다.
차오산 상방은 재력과 경영 수완은 물론 강한 의리와 단결력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이들은 중국 사회 곳곳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차오산 상방 출신 대표 기업인 리카싱 칭쿵그룹 회장, 마화텅 텐센트 회장의 재산만 총 70조원이 넘는다.
차오산 상방 소속 기업인으로는 ‘대부’격인 차오저우시 출신의 리카싱(李嘉诚) 청쿵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리카싱은 1999년부터 무려 15년 연속으로 포브스 선정 중화권 최고의 갑부에 꼽힌 바 있다. 지난해 기준 재산 규모는 347억달러(약 39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전 마윈 알리바바 회장을 제치고 중국 1위 갑부가 된 마화텅(马化腾) 텐센트 회장도 산터우시 출신의 차오산 상방이다. 텐센트의 주가가 올들어 70%가까이 치솟으면서 마회장의 자산가치도 약 41조원으로 늘어났다. 전형적인 신비주의 기업인인 마화텅은 좀처럼 공식석상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밖에 셰궈민(谢国民) 태국 CP그룹 회장, 쑤쉬밍(苏旭明) 태국 창(Chang) 맥주그룹 회장, 차이둥칭(蔡东青) 알파애니메이션 창업주, 류롼슝(刘銮雄) 화인치업(华人置业) 회장, 황광위(黄光裕) 궈메이(国美)그룹 회장, 왕쥔위(王俊煜) 완더우자(豌豆莢) 창립자 등도 모두 차오산 출신의 기업인이다.
지난 2002년에는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을 필두로 홍콩 차오산 클럽(香港潮属社团) 총회가 출범했다. 최근 열린 제8회 회장 취임식에는 리카싱, 량전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을 비롯해 홍콩 주재 중앙인민정부 연락 판공실(중련판) 주임, 홍콩 주재 외교부 특파원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전(深圳)에서도 ‘차오산파’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마싱톈(马兴田) 캉메이(康美)제약 회장, 라이하이민(赖海民) 훙룽위안(鸿荣源)그룹 회장, 리마오수이(李茂水) 하이안(海岸)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연을 중시하는 선전 지역 차오산 상인들은 강력한 상호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난 30여년간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회원간 투자, 대출 업무까지 담당하는 은행 역할의 조직도 따로 있다. 선전 차오산 상회 가입비는 5000~50만위안 등 개인별로 다르다고 한다.
차오산 클럽의 끈끈함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중국 바오넝 그룹은 초대형 부동산 기업인 완커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 여론은 자본을 앞세워 상대 기업을 먹어치우려는 바오넝 그룹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 천량셴 광둥성 산터우시 시위원회 서기를 비롯한 수많은 차오산 상방 출신 기업들이 대거 바오넝 그룹 본사를 방문, 바오넝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며 화제가 됐다. 바오넝 그룹의 수장 야오전화 회장에 차오산 상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차오산 상방이 원저우 상방, 푸톈 상방과 다른 점은 한 업종에만 우르르 몰리지 않고 각양각색의 업계에 포진해있다는 점이다. 특히 차오산 출신 기업인들은 금융, 비즈니스 모델, 하이테크 기술 R&D(연구개발) 분야에서 다른 상방들을 압도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IT 전자의 중심 선전 화창베이(华强北)에 차오산 상인들이 대거 포진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발, 의류 등 소규모 사업에 주로 종사하며 전국에 물건을 팔아 한때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렸던 원저우 상인들은 산업 구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의 상방문화는 수백년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상방도 등장했다. 이들은 단체 채팅방에서 고급 정보를 공유하고 투자까지 연결해주는 강력한 이너서클을 만들고 있다. "중국 비즈니스 성공 여부가 어떤 위챗 채팅방에 들어가 있냐에 달렸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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