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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조 2025’ 정조준한 미국의 속내

3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간 500억달러에 이르는 1,300여개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폭탄을 부과하는 것을 예고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번 조치로 중국이 무역이라고 주장하며 수많은 미국 기업의 지적 재산권을 훔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배우게 될 것이라면서 이번 대중 관세 부과는 미국에 판매하는 중국산 기술 제품이 주요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의회에서 이미 이번 관세조치에 해당되는 중국산 제품에 항공분야, 철도 현대화, 신재생 에너지 차량, 첨단기술 제품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고 이날 공개된 USTR 보고서는 중국 정부의 기술 이전과 지재권 정책은 ‘중국 제조 2025’와 같은 산업계획에 제시된 첨단기술 분야에서 경제 리더십를 확보하겠다는 의도의 일부라고 적시하며, 기술이전과 지재권 관련 중국 정부의 행위와 정책 그리고 관행이 미국 기업과 노동자를 해치고, 미국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위협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이 시진핑의 혁신 대국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제조 2025는 중국이 제조업에서도 혁신 대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만든 정책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당 총서기로 재선출된 작년 10월 19차 당대회에서 2035년까지 혁신형 국가의 앞자리를 차지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혁신형 국가 조기 건설을 위해 과학기술 강국, 품질강국, 항공우주 강국, 인터넷 강국, 교통강국, 디지털 강국, 지능사회 건설에 강략한 지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USTR 보고서는 지난해 3월 주중국 유럽엽합(EU) 상회보고서가 낸 “중국 제조 2025: 시장의 힘에 앞선 산업정책”보고서를 인용하며 최근 수년간 중국으로부터 ‘중국 제조 2025’ 관련 산업에 속한 외국기업에 대한 전례없는 투자 물결이 형성됐다며 문제는 이런 투자들 상당수가 외국기업은 중국에서 동등하게 투자할 수 없는 분야에 있다고 불공정 문제르 지적했다.

EU상회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 제조 2025의 불공정 사례로 전기차를 생산하는 외국 자동차 회사들이 중국으로부터 단기간 내 생산과 판매를 허가받는 조건으로 중국 제휴사에 배터리 기술을 이전토록 압박을 받는 것을 꼽았다.

USTR는 ‘중국 제조 2025’의 국산화율 목표 제시도 문제로 지적했다 2025년까지 신에너지자동차 시장의 80%를 토종이 점유하도록 목표를 정한 것이나 중국산 에너지 장비가 2020년까지 내수시장의 90%를 차지도록 목표를 설정한 것 등을 사례로 들었다.

특히 중국의 사이버 침략과 사이버 절도는 이같은 산업정책 목표와 동조하고 있다는 게 USTR의 진단이다. 미국 기업의 컴퓨터망에 대한 침범이 과학기술 선진화, 군사 현대화, 경제 개발 등 중국의 전략적인 발전목표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중국 제조 2025’의 불공정 문제는 제기된 지 오래된 이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작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국회)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중국 제조 2025 정책을 향유하는 데 있어 내자기업과 외자기업에 동등한 대우를 부여할 것”이라고 밝힌 건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해서다.

중국 제조 2025 정책을 통해 시행되는 각종 지원조치를 외국기업도 누릴 수 있다는 의미로 첨단 제조업 육성책이 불공정 시비에 휘말리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외국기업들의 우려는 잦아들지 않았고, 중국은 오히려 중국 제조 2025 정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리 총리는 올해 정부업무보고에서 중국 제조 2025 국가급 시범구 창설을 약속했다.

또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제출해 전인대에서 통과된 올해 중국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계획 보고에는 ‘중국 제조 2025’ 산업발전기금을 만든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미국 문제 삼고 있는 또 하나의 ‘중국 제조 2025’ 지원 펀드가 생기는 것이다.

USTR 보고서에서 중국당국이 ‘중국 제조 2025’ 로드맵에 적시된 첨단산업을 지원하는 기금 3개를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고 지적했다. 200억위안의 초기자금으로 결성된 선진제조산업투자펀드, 400억위안으로 시작한 국가전략 신흥산업투자가이드펀드, 중국 국가개발은행과 공업신식화부가 손잡고 만든 3000억위안 규모의 ‘중국 제조 2025’ 전략 협력 펀드가 그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최첨단 분야를 지배하려는 중국의 야망에 대응하기 위한 것”(뉴욕타임스)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미국의 속내와 맥이 닿는다.

USTR는 중국의 미국에 대한 투자가 과거엔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는 그린필드 투자 위주였지만 2005년 이후 기술 흡수를 위한 인수합병(M&A) 방식으로 바뀌면서 규모도 크게 늘었다고 지적했다. 2000년만 해도 그린필드 투자가 중국의 대미 투자의 99.6%를 차지했지만 2010~2016년엔 7.6%로 위축됐다.

USTR는 특히 미국에 투자가 급증한 분야로 7개 업종을 지목했다. 자동차 항공 전자 정보기술 에너지 바이오 산업기계(로봇 등)등이 그것이다. 미국 재무부가 60일이내 다른 부처 등과 협력해 마련할 중국의 투자에 대한 제한 조치에 들어갈 분야로 유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USTR에 따르면 중국의 미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투자는 2014년 이전 최대 연간 투자액이 2010년의 4억 7400만달러였다. 2009~2013년 연평균 투자액이 2억 1400만달러에 그쳤지만 2014년 7억 7100만달러, 2015년 9억 1500만달러, 2016년 10억달러로 급증했다.

항공도 2010년 이전엔 중국의 미국에 대한 투자가 전무했지만 2010년 500만달러, 2011년 4억 100만달러로 늘었고, 2012년 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6600만달러의 투자가 이뤄졌다.

전자에서도 2009~2014년 중국의 연평균 미국 투자는 4900만달러였지만 2015년에 전년의 6배 수준인 3억 4900만달러, 2016년엔 전년의 12배로 증가한 42억달러에 달했다.

정보기술 분야 중국의 미국 투자는 2009~2013년 연평균 3억 1200만달러에 달했지만 2014년 59억달러로 정점을 찍고 2015년 13억달러로 줄어든 뒤 2016년 33억달러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

USTR는 기술 따라잡기와 기술개발의 도약을 위해 중국 기업들이 해외투자를 통해 핵심기술을 인수하는 것은 놀랄 일도 거부할 일도 아니지만 문제는 정부가 일부 지지하고 인도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USTR는 중국이 정부 자금과 매우 불투명한 투자네트워크를 통해 해외 첨단기술 인수에 나서고 있다며 공정 경쟁의 원칙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정부 주도 경제시스템이 유럽과 미국에 있는 시장경제의 개방성을 착취하고 있다는 게 USTR의 주장이다.

중국의 USTR는 중국의 아펙스테크놀로지가 한때 자사를 특허 침해로 제소한 미국의 컴퓨터 프린터업체를 인수하기 위해 정부 지원 펀드의 도움을 받은 것을 사례로 들고 중국의 반도체 펀드와 국유 투자회사 등 각종 정부지원 기금들을 적시했다. 적시된 곳에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 양산을 추진중인 칭화유니그룹도 들어갔다.

미국은 1974년 통상법 301조의 특별판을 근거로 매년 미국 지재권에 대한 해외에서의 침해행위를 조사한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이번에 보고서를 내놓은 조사는 301조 조치를 염두해두고 특정국만을 상대로한 첫번째 지재권 조사로 작년 8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개시됐다.

중국의 기술이전과 지재권 및 혁신과 관련한 중국의 행위, 정책, 관행 등이 합리적인지, 정당한지,차별적인 지 그리고 미국 기업에 부담을 지우거나 제한하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였다.

이 조사 결과를 근거로 미국이 관세폭탄과 투자제한을 예고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공격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일부에서는 연 3750억 달러라고도 하는데, 우리는 지금 5040억 달러의 대중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이는 미국의 연간 총무역적자 8000억 달러의 절반이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는 이미 통제를 벗어났다. 이를 개선해야 한다. 무역법 301조에 따른 이번 조치를 통해서 대중 무역적자를 1000억 달러 줄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이번 조치는 "많은 조치 중에서 첫 번째"라고 거듭 강조해, 앞으로 대중 무역 관련 조치가 잇따를 것을 예고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도 “미국의 기술과 지재권을 강요하고 심지어 훔치려는 중국의 국가차원의 노력에 대해 중국과 수년간 대화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중국의 불공정한 시장 왜곡행위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전례없는 불공정한 교역 관행들이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우리의 동맹과 파트너들에 심각한 도전”이라고도 했다. 반중(反中) 동맹 결성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중국의 기술이전 관련 불공정 관행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라고 지시한 것 역시 반중 동맹을 염두해둔 포석이다.

하지만 USTR이 밝힌 향후 일정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여지는 남겨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내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대상 초안 리스트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이미 1300여개 관세폭탄 대상 품목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USTR는 수일내 이를 공표한 후 30일간의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 리스트를 확정할 계획이다.

최종 대상이 확정되는 4월까지 협상이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 카드와 함께 대만여행법 서명과 고위관료 대만 파견 등의 대만카드, 5월 안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 등의 북핵 카드를 모두 함께 협상 테이블에 놓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협상 테이블에 모든 칩을 다 올려놓고 협상이 시작될 수 있도록 상대를 수세로 모는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라인스 프리버스 전 백악관 비서실장)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500억 달러 규모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중국이 즉각적인 보복 조치에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23일 오전 공식 성명을 통해 미국산 제품에 30억 달러(약 3조2400억원)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 120개 품목에 9억770만 달러의 관세를 부과하는데, 대상 품목은 미국산 과일, 말린 과일, 견과류, 포도주, 화기삼(미국 인삼), 강관 등이다. 관세율은 15% 수준이다.

또 돈육 및 가공품, 재활용 알루미늄 등 8개 품목에 대해 19억9200만 달러(관세율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의 발표 이후 중국이 6시간여 만에 보복 조치를 내놓은 것은 이미 내부적으로 대응책이 수립돼 있다는 의미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과의 무역 보상 협의가 정해진 시간 내에 완료되지 않으면 우리도 관세 부과 조치를 실행할 것"이라며 "이후 WTO 규정에 따라 필요한 후속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양국의 협력만이 올바른 선택이며 중국은 대화와 협상을 문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며 무역전쟁으로 치닫는 상황을 피하자고 촉구했다.



-미국과 중국이 정말 무역전쟁을 치를까.

“한마디로 답한다면 그럴 확률은 상당히 낮다. 벌써 시진핑 주석이 보아오 포럼에서 트럼프에 화답했다. 시장개방도 더 하고, 지적소유권 보호도 강화하고, 구조조정도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봐라 먹혀들지 않느냐'고 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끝난 것은 물론 아니다. 시진핑이 이런 소리 한 게 처음도 아니다. 작년 다보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미­중이 심각한 무역전쟁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두 나라의 경제적 의존이 아주 깊다는 점이다. 거시적으로 볼 때 미국과 중국은 상호 가장 중요한 교역상대국이다. 미국의 제1 수입국이 중국이고, 중국의 제1 수출국이 미국이다. 또 중국은 미국의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이다. 무역전쟁을 하면 서로가 막대한 손해를 본다는 걸 양쪽 모두 잘 알고 있다. 트럼프가 비즈니스 출신에 협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충돌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처음부터 봤다.“

-전쟁까지는 아닐지라도 갈등은 고조되지 않겠는가.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가 약 4천억 달러 규모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주로 중국을 겨냥해서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자국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방향은 옳지 않다. 무역적자라는 것은 사실 미국 스스로의 국내 저축과 투자의 차이에서 오는 거시경제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미국 사람들이 자기들이 버는 것보다 소비를 더 많이 하면서 결국 외국에서 돈을 빌려와야하고, 물건을 더 들여와야 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다. 그런데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통해 혜택을 보는 소비 계층과 근로자들은 미국 전역에 확산돼 있고, 세계화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산업은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다.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주 등 소위 ‘러스트 벨트’(Rust Belt.제조업의 중심지였으나 불황을 맞은 미 북부와 중서부 지역)인데 여기가 트럼프 당선에 가장 기여를 한 곳들이라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이 철강 알루미늄 같은 전통 산업 못지않게 신경쓰는 것이 지적재산권 아닌가.

“그렇다. 철강, 알루미늄은 국내정치용 성격이 강하지만, 미국의 진짜 주 관심사는 첨단산업을 좌우할 기술을 보호하는 일이다. 미국은 중국이 AI(인공지능) 같은 4차 산업분야에서 이미 미국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갖고 있고, 여기에는 중국이 미국의 첨단 기술을 마구잡이로 낚아채 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중국이 자국에 진출하는 미국 기업들에 첨단 기술 이전을 강요한다든가, 아니면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아예 인수해 버리든지, 또는 기술을 도용하는 행위가 만연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의 위상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보고 중국 관련 무역 규제에 안보 측면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번 무역 마찰도 패권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도전과 이에 대한 기존 패권국인 미국의 응전이 부닥치고 있는 것인가.

“‘투기디데스 함정’이란 용어가 있다. 기존 패권국가와 신흥 강대국간에 발생하는 심각한 구조적 갈등을 뜻한다.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패권전쟁을 기술한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에서 유래한 이 말이 요즘은 미국과 중국의 상황에 인용된다. 최근 미 하버드대 그레이엄 엘리슨 교수는 지난 500년간 기존 패권국가와 신흥 세력간 구조적 갈등 관계에서 비롯된 투키디데스 함정이 16차례 있었고 이중 12번이 전면전으로 비화했다고 분석했다. 전면전은 1,2차 세계대전이 대표적이고, 전쟁을 피한 사례는 미국과 영국, 미국과 소련의 대결 등이었다. 이번 17번째 함정인 미국과 중국의 대결도 점차 치열해지고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전쟁으로까지 치달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중국은 14억 인구에 현재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GDP기준으로 15% 정도다. 미국은 24%이다. (구매력 기준으로 하면 중국은 이미 몇 년 전에 미국을 앞선 것으로 추산된다). 늦어도 10년 이내에 중국은 경제규모 면에서 미국을 앞지를 것이다. 세계 속에서 중국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중국은 더욱 자신 있게 자기 갈 길을 가게 될 것이다.

현재 중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란 게 무언가. 결국 아시아 아프리카 60여 개 나라를 중국에 의존적으로 만드는 일 아닌가. 도로 닦아주고, 항만 건설해 주고, 사회간접자본 투자해 주면서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만들겠다는 의도이다. 또한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과는 별개로 중국이 중심이 된 아시아투자개발은행(AIIB)도 창설했다. 등소평 때는 도광양회(韜光養晦)라고 조용히 힘을 키워왔지만, 이제 시진핑은 이른바 ‘신중국몽’을 내세우며 세계 패권국이 될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첨단기술과 무역, 외교와 군사력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갈수록 치열해 질 것이다.”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힘은 어디서 나오나.

“나폴레옹은 200년 전에 이미 중국을 잠자는 사자에 비유하면서 중국이 잠에서 깨면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지난 2천년 동안 거의 항상 세계 GDP의 20% 이상을 차지해 온 최대 경제대국이었다. 단지 아편전쟁(1840~­1842년) 이전 시기부터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 시기까지 약 150년간의 예외 기간이 있었고, 이 시기를 중국인은 ‘수모의 세기’라고 부른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앵거슨 메디슨 교수는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절정에 달했던 1820년대에도 중국의 GDP는 세계 33% 정도였다고 추정했다. 중국은 이런 초강대국이었고 중국인들의 의식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뿌리 깊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중국이 세계 중심의 초강대국이 되는 것은 잃어버린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정상화의 과정으로 인식한다. 중국의 가장 큰 힘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이 같은 국민의 강렬한 염원과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정치지도자들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는 심지가 너무나 강하다.”

-중국인들의 염원? 그것만으로 가능한가.

“얼마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지는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나라”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서양의 국가들이 1주, 한 달 단위로 세상을 본다면 중국은 10년 또는 한 세기 단위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등소평은 ‘수모의 세기’를 거쳐 옛날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에 고개 숙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실사구시 차원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속에 들어와 실력을 키웠다. 이후 중국은 2001년 자유무역의 상징인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가입해 비약적 성장을 이루었다.

이제 중국은 굳이 자신감을 감추지 않는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2~3번씩 만나 본 적이 있다. 정상회의에 배석하거나 키신저, 리콴유(李光耀) 등과 함께 한 자리였다. 볼 때마다 이들의 자신감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특히 2007~2008년 서방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자부심은 더욱 북돋워졌다. 이제 시진핑 시대에 들어와 중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힘을 과시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중국은 장기적인 국가 전략을 갖고 지도자가 바뀌더라도 이걸 이어가면서 단계별로 발전시켜 나가는, 대단히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나라이다.“

-중국이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한계에 부닥치거나 심지어 몰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중국 사회의 심각한 빈부 격차에 따른 양극화와 금융부실의 심화, 정치적 민주화의 과제, 소수 민족 문제 등을 들어 그렇게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저명한 역사학자 폴 케네디도 1990년대 말에 우리 연구원에 와서 행한 강연에서 중국이 내륙과 해안지방의 격차로 분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산당 일당체제와 시장경제 체제가 공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유력했다. 그러나 그런 비관적 전망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위기 때마다 리더십을 잘 발휘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잘 파악하고 적절히 대처하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중국의 고위정책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수준이 대단하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꿰뚫고 있고 아주 국제화돼 있다. 이들은 세계 최고의 석학들과 전문가를 초청해 극진히 대우하면서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화해서 자기들 것으로 만들어 활용한다. 중국에서 4차 산업 관련 벤처기업들이 세계가 놀랄 정도로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노벨상 받은 미 콜롬비아 대학 에드먼드 펠프스 교수다. 3~4년 전 다보스 포럼에서 중국 리커창 총리가 자신의 고문인 그를 옆에 앉혀 두고 “매스 엔터프레누어십(mass entrepreneurship. 대중창업)의 아이디어를 이 교수한테서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은 세계 최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그걸 활용할 줄 아는, 대단히 실용적이고 열린 시스템을 갖고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 기회인가, 도전인가.

“경제는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정치, 외교, 안보, 국방 등 다양한 여건, 특히 우리나라 같이 예민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나라는 지정학적 여건 변화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경제이론에서도 무역이나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지리적 조건으로 본다. 우리 바로 옆에 근접해 있는 나라가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다. 이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고 세계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우리 경제뿐 아니라 국가 생존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사드 문제 때 우리는 그 전조를 보지 않았나. 중국을 잘 알아야 하고 중국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중국은 자신을 천자(天子)의 나라로 여기는 인식이 뿌리 깊고 지금도 여전하다. 천하는 중국 중심의 질서 속에 움직이고 주변 나라들은 중국을 상전으로 모시는 질서에 익숙하다. 자칫 우리가 다시 무력한 중국의 변방 소국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 분명 도전이다.

그러나 도전 못지않게 기회의 측면도 크다. 한국은 베이징, 상하이 등과 비행거리 2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2시간 내에 갈 수 없는 도시와 땅이 중국 안에도 얼마나 많은가. 지리적으로 우리는 중국의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지리적 이점을 잘 살린다면 중국은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빠르게 발전하는 데 따른 급속한 도시화와 중산층의 급증은 우리 기업들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중국에 진출하려는 세계의 기업들을 끌어와야 한다. 교육개혁을 통해 우수한 인력을 키우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늘리며, 시대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이는 비단 중국을 염두에 둬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앞으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을 보고 있으면 속이 탄다. 각 분야의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가 확실하게 중국보다 앞서가는 분야를 확보하지 못하면 중국의 공세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사드 파동 때 중국이 제조업 분야가 아닌 관광산업에 국한한 압박을 가한 것은 우리의 대중국 상품 수출의 70% 이상이 그들의 수출과 내수용 중간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조업에서의 이런 우위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중국의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계획은 2025년까지 중간재나 전략적인 품목들의 국산화를 대폭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우리의 중국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AI나 드론 등의 분야는 이미 중국이 많이 앞섰다. 적어도 경제적 측면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노력으로 중국을 항상 앞서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나.

“우리는 우리 특유의 지정학적 여건 속에서 남다른 국제적 안목으로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에 잘 대응해야 한다. 한마디로 굳건한 한·미동맹 바탕 위에서 주변의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과의 외교·안보 관계도 잘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국내 정책마저도 항상 중국의 눈치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소위 “핀란디제이션(Finlandization. 핀란드화)” 처지를 면치 못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수출의 지나치게 높은 대중국 의존도(약 25%)는 일본, 아세안, 인도,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지역과의 교역을 늘려 상대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또한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스스로 원칙을 지키는 나라로서 후발 개발도상국의 롤모델이 되고 그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개발경험 전수 등의 소프트파워 외교도 강화해야 한다.

현재 우리는 미국과 중국 관계 측면뿐 아니라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 속의 세계사적 큰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다. 정치권은 물론이거니와 국민 모두가 과거에 매몰되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19세기 말-20세기 초반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특히 중국의 변화를 보며 우리 모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