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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화폐 노리는 위안화, 일대일로는 그 수단


일대일로는 위안화 국제화, 해외투자 확대와 함께 차이나머니의 국제화를 상징한다. 중국은 개혁 개방 이후 40년 동안 경제 건설을 위한 해외 자본 유치에 주력했다. 최근 중국 자본의 국제화는 경제구조 고도화를 위한 해외 자원과 첨단기술 확보, 시장 개척, 과잉산업 문제 해소 등 다목적 포석을 두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는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흔들어 금융제국 미국의 영향력 줄이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기술 에너지 인프라에 투자하는 1억 1300만달러의 펀드를 창설하기로 하고 △일대일로의 투명성 및 공정성 제고와 빚 상환 과정의 국제질서 편입을 통해 일대일로 견제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은 위안화 국제화의 장애물이자 촉매제 역할을 하는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 부장(장관)은 23일 몽골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타당성 연구 9월 개시 발표에서 "일대일로는 중국이 세계에 제공한 국제 공공재"라며 "무슨 ‘마셜플랜(Marshall Plan)’ 같은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중국 안팎에서는 일대일로를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넘치는 과잉생산 시설에 숨통을 트이게 하고 달러의 해외 유통을 촉진시킨 마셜플랜에 비유해왔다. 지난 4월 시 주석도 보아오(博鰲)포럼 이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일대일로는 마셜플랜도 아니고, 중국의 음모도 아니며, 인류운명 공동체 구축을 위한 국제협력의 새로운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 국가에 상환 불가능한 거액의 자금을 빌려주고 인프라 운영권을 차지하고 있다"(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 3월 개발원조 전문 싱크탱크인 글로벌개발센터(CGD)는 일대일로 협력국 68국 가운데 23국이 대(對)중국 부채로 취약해졌고, 이 가운데 파키스탄·라오스·키르기스스탄·몽골 등 8국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일대일로가 제도권 금융보다 문턱은 낮지만 상환을 못할 경우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하는 사채업자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한 미국의 대중 강경파를 대표하는 인물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장의 중국관(觀)이 대표적이다.

그는 저서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에서 "중국은 수표책을 흔들며 막대한 자금을 저금리로 대출한 뒤 천연자원 독점 사용권과 현지 시장 개방을 얻어낸다"며 중국의 식민주의라고 비판했다.

나바로는 중국인들이 수단에서 석유를 중국산 송유관으로 뿜어 올리고, 중국이 세운 항구로 운반해 중국산 탱커에 선적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중국에 신식민주의를 경고한 마하티르 총리가 ECRL의 시공을 중국교통건설이 맡고, 사업비의 85%를 중국수출입은행에서 빌려오는 구조를 문제 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대일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요구하는 건 미국과 말레이시아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수입관세 부과 문제로 채택이 무산됐지만 지난 6월 주요 7개국(G7)이 정상회의에서 당초 내놓을 예정이었던 성명안에는 "저소득국가의 부채 증가를 감안, 저소득 채무국 뿐 아니라 신흥 채권국과 민간 채권자들의 더 높은 부채 투명성을 요구한다"며 "신흥 채권자들을 포함시키려는 파리클럽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적시했다.

환구시보는 채무탕감은 국제적 관례와 중국의 대외원조정책에 따라 극빈국을 대상으로 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한국 등 파리클럽에 속한 22개국은 채무국이 공적 채무를 정상적으로 상환할 수 없으면 채무를 재조정해주는 시스템을 갖춘 반면, 중국은 파리클럽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지난 7월 중국-유럽 정상회의가 채택한 공동성명에도 "일대일로와 유럽의 이니셔티브를 지속적으로 연계한다"면서도 "협력은 시장규칙과 투명원칙에 근거해 모든 투자자들에게 조달을 개방하고 공정경쟁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또 "국제표준과 수혜국의 법률을 따르고 수혜국의 정책과 나라상황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4월 중국 주재 유럽연합(EU) 28국 대사 중 헝가리 대사를 제외한 27명이 연명(連名) 성명서를 내 "일대일로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중국 기업들만 이익을 독점할 뿐, 유럽 기업은 동등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지적한 것과 맥이 닿는다.

나바로는 "중국이 아프리카 전 대륙을 식민화하려고 한다"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프리카와의 밀착 행보를 과시하고 있다. 내달 3~4일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베이징 정상회의를 연다. 왕이 국무위원은 22일 이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더욱 긴밀한 중국-아프리카 운명 공동체 구축을 위한 베이징 선언이 채택될 예정이라며 2006년 베이징 정상회의, 2015년 요하네스버그 정상회의에 이어 또 한번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향후 3년의 과제를 담은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 베이징 액션 플랜(2019~2021)도 채택된다.

중국은 일대일로 제창한 지 5년만에 80여개 국가와 국제기구와 관련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까지 2년 연속 감소했던 일대일로 국가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올들어 7월까지 전년 동기 보다 11.8% 증가한 85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자금난을 겪는 신흥국들이 구조조정 등의 조건을 다는 국제통화기금(IMF)보다 중국 자본을 선호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교역국에 다시 오른 중국의 전체 교역액 가운데 일대일로 국가와의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26.5%로 0.8% 포인트 상승했다.

또 중국은 2017년 말 기준 일대일로 관련 국가에 75개 대외경제협력단지(공단)를 조성했으며 입주기업이 3500여개사에 달해 현지 세수를 22억달러, 일자리를 21만개 창출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중국은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달러의 신뢰도가 떨어진 2009년부터 위안화 국제화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무역결제에 이어 해외투자와 외자유치에 위안화를 직접 사용하고, 자본시장 개방과 금리 개혁 등을 통해 위안화 국제화의 기틀을 다져왔다. 하지만 위안화 국제화는 달러 기축통화 자리를 대체하기 보다는 달러 주도의 현재 국제통화시스템을 다극체제로 만드는 쪽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지적이다. 패권국의 금융권력 분산에 나서는 신흥강대국의 행보다.

중국이 달러 기축통화 흔들기에 나서는 건 대북 제재 등에서 확인되는 미국의 금융무기화에 대항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 달러 결제시스템에서 배제되면 어느 나라 어느 기업도 생존하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민간 지불결제시스템인 칩스(CHIPS⋅Clearing House Interbank Payment System)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운영하는 페드와이어(Fedwire)를 통해 달러화를 결제하고 있다. 칩스는 국제결제, 페드와이어는 국내 결제에 주로 이용되고 있다. 칩스의 경우 2015년 기준 하루 평균 1조5000억달러 규모를 결제했다.

이들 시스템에 접근이 차단되면 달러를 이용한 국제거래도 차단된다. 미국이 달러 기축통화를 내세워 금융봉쇄를 할 수 있는 배경이다. 중국이 2015년부터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 운영에 들어가고 이를 확대하는데 박차를 가하는 것도 미국의 금융봉쇄에 대응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중국이 미국의 GPS에 대응할 위성합법시스템 구축을 위한 북두위성(北斗衛星)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는 것도 CIPS 구축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특히 미국의 제재를 받는 등 반미(反美)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식으로 위안화 국제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11월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에 공개적으로 거부의사를 표명한 게 대표적이다. 이란중앙은행은 자체 환율 고시 사이트에 지난 21일 대표적인 외화로 미국 달러화를 내리고 위안화를 게시했다.

중국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게 한 일등공신인 오일달러를 모방해 원유 교역 결제통화로서 위안화 위상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지난 3월 상하이에서 위안화로 원유 선물 거래를 개시했다. 미국이 2012년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개시했을 때도 중국은 달러가 아니라 위안화로 이란에서 원유 수입을 계속했다.

중국은 상대국의 금융위기 차단에 도움을 줄 통화 교환협정(스와프) 외교도 정치적인 연대를 강화해 위안화 국제화에도 나서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12월 한국과 1800억위안 규모의 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것을 시작으로 통화스와프 체결국가를 40여개로 늘렸다.

마하티르 총리의 방중 기간중인 지난 20일 말레이시아와 3년 만기의 1800억위안 규모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데 이어 경제위기를 겪는 아르헨티나와 40억달러 규모 통화스와프를 추진중이고, 일본과는 2013년 만료된 틍화스와프를 종전의 10배인 300억달러 규모로 재개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196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프랑스 중앙은행이 체결한 최초의 중앙은행간 통화 스와프 체결 이후 이를 지키지 못한 사례는 한 차례도 없다.

위안화 국제화에 힘입어 위안화를 자국의 외환보유액에 편입한 나라는 60여개국으로 늘었고, 무역결제에서 위안화를 쓰는 국가도 28개에 달한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6월말 기준 위안화의 전세계 지불 결제 비중은 1.81%로 5위에 올랐지만 미국 달러화(39.35%)에 크게 못미친다.

중국 언론들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한 미국과 15%에 이르는 중국과의 경제규모 차이에 비해 지불통화 사용비중 격차가 더 크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상품 수출입 가운데 위안화 결제 비중은 12%에 그친다는 통계도 있다. 위안화 국제화의 갈길이 멀다는 얘기다.

미중 무역전쟁은 위안화 국제화에 양면적인 효과를 미친다. 위안화가 국제통화로 격상되려면 꾸준한 가치 상승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해외에서 이를 보유하려는 수요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중국의 무역흑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이는 위안화 절하요인이 된다. 중국으로부터 자본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부추길 수 있다. 미국이 금리인상 주기에 진입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위안화 가치는 23일 달러당 6.88위안으로 마감해 최근 고점을 기록한 4월 18일(6.2743위안)에 비해 9.7% 떨어진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22~23일 워싱턴에서의 미중 무역협상이 개시되기 직전인 20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통화를 조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10월 미국 재무부의 반기 보고서에 위안화를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환율조작국이라는 낙인은 해당 통화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국제화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표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전략이 되레 구조적으로 위안화 국제화에 도움을 준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국가외환리국장과 인민은행 부총재를 지낸 후샤오롄(胡晓炼)중국 수출입은행 동사장(이사장)은 지난 11일 중국 금융 40인 포럼에서 미국 달러화가 미국으로 회귀하는 추세가 있다며 이를 이용해 위안화 국제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후 이사장은 과거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를 내보내고, 자본수지 흑자로 달러를 회귀시켰지만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 달러의 국제 순환에 변화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감세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수익을 개선시키고 이는 세수 기반 확대로 이어져 미국의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다. 감세는 해외로 나간 자본의 회귀도 촉진한다. 또 미중 무역전쟁으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줄어들 수 있다.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은 달러의 미국으로의 회귀를 재촉한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금리인상 주기 초반 2년은 뚜렷한 달러의 회귀가 나타났다. 때문에 금리인상과 함께 달러의 글로벌 유동성 긴축은 계속될 것이다."

후 이사장은 이같은 이유로 해외에서 유통되는 달러는 줄어들겠지만 반면 중국은 젊은층의 부채 비율 상승에 따른 저축률 하락으로 향후 경상수지가 계속 대규모 흑자를 내는 국면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의 감춰진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정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재정압박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무역전쟁에 의한 무역흑자 축소도 예상된다. 서비스무역 적자도 선진국과의 수준 격차로 반전이 힘들다는 게 후 이사장의 지적이다. 중국의 경상흑자가 줄어들 요인이 널려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올 상반기 283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냈다. 상반기에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은 20년만에 처음이다. 경상적자는 위안화의 해외유통을 늘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