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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혁신 성장의 배경, 보조금과 비관세장벽의 불공정 경기장


올해 40주년을 맞이한 중국 개혁개방이 고성장으로 이어진 배경에는 도시화로 대표되는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있었다. "중국의 경제 기적은 19세기 유럽처럼 농촌인구의 도시 이동이 만든 결과"(문명 비평가 기소르망)라는 얘기와 맥이 닿는다. 값싼 노동력이 도시에 흘러들며 ‘세계의 공장’을 만든 주역이 된 것이다.

중국은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2008년초 친 근로자 성향의 노동계약법을 발효시켰다. 친기업 성향이 강했던 노동정책의 대전환이다. 이는 임금상승으로 이어졌고, 때마침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로 중국의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서 중국 위기론이 흘러나왔다. 중국은 4조위안의 경기부양 자금을 쏟아부으며 경기회복에 성공했지만 부채 증가와 과잉공급이라는 악재를 안게 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디레버리징과 과잉공급 해소로 대표되는 공급측 개혁과 함께 2015년 중국 제조 2025를 통해 혁신에 역점을 둔 신성장동력 확보에 속도를 냈다. 일본이 1978년 2차 오일쇼크 당시 ‘불황산업 안정 임시조치법’으로 과잉산업 구조조정에 나서는 한편 ‘특정 기계산업 진흥 임시조치법’을 통해 마이크로전자 컴퓨터 등에 연구비 보조와 조세 금융을 우대하는 기술집약형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한 것과 같은 산업구조의 대전환기에 진입한 것이다.

중국은 혁신 기업을 대표하는 화웨이(华为)와 BOE(京东方)의 국내외 현장을 시 주석이 시찰할 만큼 중앙정부의 지지를 숨기지 않았다. 시 주석은 2015년 10월 영국 방문 때 그래핀을 발견한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들이 있는 맨체스터대학과 화웨이가 제휴한 그래핀 실험실을 참관했다. 그래핀은 배터리의 고속충전과 수명 연장을 가능케하는 신소재일 뿐 아니라 접는 디스플레이에도 사용할 수 있다.

시 주석은 2016년 1월 충칭 시찰 때 BOE 공장에 가서 "혁신을 최우선 순위에 두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5G 양자통신과 핵융합 등에서 선두가 되기 위한 기술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지난 6월 확정된 5G 이동통신 1단계 표준의 3분의 1을 차지했다"(중국 경제일보)는 보도도 나왔다.

올들어 7월까지 첨단기술 제조업과 전략신흥산업의 부가가치 규모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이 11.6%와 8.6%로 공업 평균 증가율을 각각 5%포인트, 2%포인트 웃돈 것은 신⋅구 성장동력의 전환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게 중국 당국의 설명이다.

BOE는 중국 상장사 가운데 정부 보조금을 가장 받는 기업으로 알려져있다. 2001년부터 2015년까지 75억위안의 누계 적자를 기록한 이 회사는 2006년 9200만위안을 시작으로 매년 정부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엔 정부보조금이 26억2000만위안에 달하는 등 지금까지 60억위안을 보조받았다. 2016년 19억1500만위안에서 지난해 1억900만위안으로 감소한 BOE에 대한 정부보조금은 올들어 다시 늘고 있다. BOE는 올 1월 63억위안의 부채탕감을 받았고, 2월엔 한국의 산업은행 격인 중국 국가개발은행과 향후 5년간 1500억위안 규모의 전략적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BOE는 한국의 하이디스를 인수하고, 매출의 7%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등의 혁신 노력을 해왔다고 강조한다. 지난 5월 BOE 충칭공장을 안내한 직원은 지난해 미국에서 1413건의 특허를 획득해 전년의 40위에서 21위로 19계단 상승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BOE는 ‘보조금 왕’으로 불릴 만큼 정부보조금 덕을 봤다는 비판을 면키 힘들다는 지적이다. 류주웨이(刘姝威) 중앙재경대 중국기업연구중심 주임은 미국이 지난 3월 중국산 수입제품에 대한 관세폭탄을 예고하면서 이를 위한 근거로 내세운 301조사 보고서에 BOE가 등장한다고 전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기술 따라잡기와 기술개발의 도약을 위해 중국 기업들이 해외투자를 통해 핵심기술을 인수하는 것은 놀랄 일도 거부할 일도 아니지만 문제는 (중국)정부가 일부 지지하고 인도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BOE의 약진으로 대표되는 중국 토종 LCD 업계의 성장은 수입 대체로 이어졌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에 따르면 올들어 7월까지 중국이 수입한 LCD는 12억6000만개로 전년 동기 대비 3.4% 감소했다. 수입액으로는 152억 달러로 10.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적자에 허덕이던 BOE는 지난해 전년보다 301.99% 급증한 75억6800만위안의 순이익을 냈다. 사상 최고 실적이다. 매출은 36.15% 증가한 938억위안에 달했다.

현금 보조만이 중국 혁신을 위한 정부의 보조는 아니다. 삼성SDI와 LG화학이 중국 합작공장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자동차를 보조금 대상에 빼버린 게 대표적이다. 작년까지 3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가 팔린 중국시장에서 당국이 쌓은 ‘기술 만리장성’ 덕분에 중국 CATL은 출하량이 세계 1위에 올라설 만큼 급성장했다.

중국 반독점 당국이 삼성전자 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3사에 대한 불공정 관행 조사에 나선 것도 올 하반기중 시생산에 들어가는 칭화유니 등 중국 토종 메모리 반도체 회사에 대한 이들 선발기업의 견제를 막기 위해서라는 관측이다.

미국은 유럽연합(EU), 일본 등과 함께 24일 워싱턴에서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서 중국의 산업보조금 및 강제 기술이전 등을 공동으로 제소하는 방안 등을 협의했다.

미국 투자컨설팅 회사인 매크로스트래티지의 데이비드 골드만 사장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은 중국으로 하여금 저부가가치 조립 산업을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로 이전하도록 하고, 자원을 첨단산업의 돌파구 마련에 집중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중국 기술혁신 견제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되레 중국의 혁신의지를 부추길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장을 주고 기술을 받는 종전의 시장환기술 같은 정책보다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힘을 쏟을 것이라는 얘기다. 시 주석이 "핵심기술이란 국보는 반드시 스스로 일으켜세워야 한다"며 "과거 외부의 봉쇄 속에서 자력갱생으로 양탄일성(兩彈一星)을 창조했다"고 강조한 게 이를 뒷받침한다.

양탄일성은 마오쩌둥 지시로 1964년 원자폭탄 실험, 1967년 수소폭탄 실험, 1970년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것을 일컫는다. 시 주석은 "(양탄일성은)역량을 집중해 큰 일을 처리하는 사회주의 제도의 우위를 발휘한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과학기술 연구는 그렇게 스스로에 기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백악관 관리들이 탐독한 것으로 전해진 아서 래퍼 교수의 ‘중국의 대몰락’ 보고서는 중국의 번영이 리스크에 처해 있고, 중국 경제가 미국의 관세폭탄에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증시가 미국보다 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중국 기업의 부채수준이 높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 24일 2729.43으로 마감해 올들어 장중 최고치를 찍은 1월 29일에 비해 23.9% 하락해 기술적으로 약세장(베어마켓)에 진입했다. 중국 증시의 부진으로 은행대출을 줄이고, 자본시장을 키우려는 중국의 금융정책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전통적인 산업 육성에 적합한 은행 대출과 달리 불확실성이 큰 혁신산업의 자금줄은 증시가 적합하다는 평을 듣는다. 혁신 경제를 위해 자본시장을 키운다는 중국 당국자들의 설명은 그래서 나온다. 미중 무역전쟁에 불확실성을 느낀 투자자들이 늘면서 증시가 위축될수록 혁신을 위한 자금줄이 타격을 입게 된다.

미중 무역전쟁은 또 디레버리징의 후유증을 키워 중국 당국이 부채감축 속도조절에 나서도록 했다는 지적이다. 골드만 사장은 중국에서 정부 부채와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46%와 47%에 그치지만 기업부채는 163%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은 지난해 향후 3년간 치룰 3대 전투로 환경보호, 탈빈곤과 함께 금융리스크 억제를 지정하고 디레버리징에 속도를 내왔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중국 민간 비금융부문 부채 비중이 지난해 3월 GDP 대비 211.1%까지 상승했다가 작년말 208.7%로 하락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채권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늘고, 파산하는 사례까지 잇따랐다.

중국 최대 민영 에너지기업인 화신(华新)에너지공사(CEFC)의 자회사인 상하이화신국제가 지난 20일 디폴트 상태에 빠진 게 대표적이다. 같은 날 직원 5000명을 둔 중국 대형 가구업체인 청펑(诚丰)이 법원으로부터 청산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앞서 7월엔 상장사인 융타이(永泰)에너지가 114억위안 규모의 디폴트를 발생시켰다. 중국 당국은 다시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대출을 늘리는 식으로 부채감축 속도 조절에 나섰다.

문제는 부채가 다시 늘면서 당국의 공언과는 달리 좀비기업이 회생할 여지가 커져 장기적인 부채리스크를 키울 것이라는 데 있다. 당장의 위기를 막기 위한 유동성 확대는 거품 확대로 이어져 붕괴 리스크를 키운다.

관영 신화통신은 최근 일본이 미국의 엔화 절상 요구를 수용한 플라자합의 탓에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다며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준다고 강조했다. 위안화 환율이 조작됐다며 절상 압박을 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의식한 주장이다.

하지만 플라자합의 자체보다 엔화절상 탓에 생존하기 힘들게 됐다는 일본 제조업계의 하소연을 인정한 일본당국이 유동성을 과도하게 푼 게 결국 거품 붕괴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특히 "중국의 경기둔화가 뚜렷해질 경우 트럼프 정부가 무역전쟁 수위를 높이고 맹공에 나설 것"(뉴욕타임스)으로 관측된다. 무역전쟁 충격을 덜기 위해 유동성을 늘려야 하는 요인이 더 생기고, 이는 부채 리스크를 키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