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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차이나 엑소더스 행렬에 놀란 중국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무역전쟁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인해 생산업체들이 공장을 중국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최대 자전거 제조업체 자이언트는 지난해 미국발 주문 생산공장을 중국에서 대만으로 옮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 소식 때문이다. 지난해 말 중국 공장 6곳 중 1곳은 문을 닫았고, 대신 문을 연 대만 공장은 2교대로 운영한다. 지난해 7월 헝가리에 새 공장 건설 소식을 발표한 이 업체는 동남아도 눈여겨보고 있다. 보니 투 자이언트 회장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25% 관세 계획 발표를 듣고 심각하게 고민하다 지난해 '메이드 인 차이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자이언트의 지난해 매출은 602억 대만달러(약 2조2600억원)에 달한다.

글로벌 생산업체의 '중국 이탈'이 무역전쟁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인다. 외국 기업들의 ‘중국 이탈’을 부추긴 데는 인건비 상승도 한몫하고 있다. 주중미국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50개 회원업체의 약 40%가 중국 이외 지역에 생산 이전을 이미 했거나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급격한 인건비 상승으로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를 대체재로 찾는 기업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요 공장이 밀집한 중국 광둥성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2008년 4.12위안(703원)에서 지난해 14.4위안(2460원)으로 3배 넘게 올랐다. 말레이시아의 지난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5.05링깃(약 1425원)에 불과하다.

반도체업체 인텔은 지난 16일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공급망을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세계 최대 의류·장난감 아웃소싱 업체 리앤펑도 중국을 벗어나 생산지를 다각화하겠다고 전했다. 스펜서 펑 최고경영자(CEO)는 "기업들은 생산 효율성이 높았기 때문에 중국 한곳에서 모두 생산을 해온 것"이라며 "무역전쟁은 (여태껏 해온) 글로벌 생산전략을 돌아보고, 중국 이외 지역으로 다원화하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산 아이폰이 추가 관세 리스트에 오르면서 애플도 ‘차이나 엑소더스’에 가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닛케이아시안리뷰는 19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이 생산량의 약 15~30%를 중국에서 동남아시아 등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부품 공급사들에 생산의 15~30%를 중국에서 동남아 등으로 옮겼을 때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평가할 것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대상 협력사에는 아이폰의 최대 위탁 생산기업인 대만 폭스콘 등이 포함됐다. 한 소식통은 이전 후보지로 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국뿐만 아니라 멕시코와 인도도 포함돼 있으며 이 중 인도와 베트남이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최적지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지만 애플은 중국 생산 및 투자를 이어가며 저항했다. 애플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을 외면할 수 없고 중국 내 반미 감정이 거세져 자칫 불매 운동에 시달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추가 관세 위협을 할 때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애플 제품의 가격이 오르면 미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며 백악관에 관세 면제를 요청해왔다. 하지만 무역전쟁이 해를 넘기며 장기화하자 애플이 생산 이전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3,250억달러 규모의 대중(對中) 추가 관세 리스트에 아이폰이 포함되면서 애플의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 매체에 애플이 지난해 말 약 30명의 분석팀을 꾸려 부품 공급업체들과 관련 사안을 논의 중이며 이전 후보지의 인센티브를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류양웨이 폭스콘 반도체 부문 대표는 최근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애플이 생산라인을 중국 밖으로 이전하도록 요구한다면 폭스콘은 애플의 이런 요구에 완전히 대처할 능력이 있다”면서 생산 이전에 동참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한나 앤더슨 JP모건자산운용 글로벌시장전략가는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업들은 무역 분쟁 훨씬 이전부터 생산지를 중국에서 옮기기 시작해왔다"며 "높은 관세가 원래 있던 계획을 앞당겼을 수 있지만, 이를 전혀 생각지 못한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기업들이 완전히 중국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제 로펌 베이커 맥켄지 홍콩지부의 무역법 전문가 존 카울리는 "업체들이 중국에서 모든 제조공정을 없애기보다 중국 밖에서 '원산지 부여 공정'을 거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에서는 부품을 제조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이 부품들로 '실질적 변형'을 거쳐 완성품을 만든다는 뜻이다. 원산지판정 기준에 따라 물품이 두 개 이상의 국가에서 생산된 경우, 원산지는 실질적 변형이 이루어진 국가가 된다. 이는 관세를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종종 사용하는 수법이다.
이 방식을 쓰면 기업들이 세계 2위 소비시장인 중국에 거점을 유지할 수 있다. 리첸 홍콩중문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 소비재 시장은 성장세에 있고,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는 미중 무역분쟁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기업들의 차이나 엑소더스 행렬에 놀란 중국은 리커창 총리가 직접 나섰다. 외신에 따르면 리 총리는 2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19개 기업의 CEO들을 만나 “우리는 오래 지속해온 개혁·개방 의지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에 점점 더 많은 해외투자가 이뤄지는 것을 환영한다”며 “시장 친화적이고 국제화한 기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국적 기업들이) 훨씬 더 많은 분야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한을 완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참석한 다국적 기업들에는 화학기업 다우, 배송업체 UPS, 제약회사 화이자, 복합 제조업체 하니웰, 자동차업체 폭스바겐, 통신장비업체 노키아, 광산업체 리오틴토 등이 포함됐다. 리 총리는 이번에 모인 기업들이 40년 전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과정에서 투자했으며 기술 이전과 자본, 아이디어 제공을 통해 중국 시장에서 상업적 이익을 거둔 곳이라고 소개했다. 또 “중국과 수십 년간 ‘윈윈(win-win) 협력관계’를 성취해온 곳들”이라고 강조했다.

리 총리는 “현재 국제 경제 여건과 통상의 불확실성 속에 우리는 다국적 기업들이 글로벌 산업 사슬의 관점에서 현안을 고려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투자를 위한 거대한 시장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글로벌 통상과 경제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