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맞아 중국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4조위안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 하지만 대다수 과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국영기업들에 돌아갔다. 반면 민영기업은 아무리 우량해도 일시적인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채 문 닫는 사례가 잇따랐다. 국영기업은 잘나가고 민영기업은 퇴조하는 ‘국진민퇴’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당국의 외면을 받았던 민영기업들이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 공산당 18기3중전회(제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국영기업 주식을 사도록 권유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비효율의 대명사로 꼽히는 국영기업에 민간의 활력과 힘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다. 예컨대 대표적인 석유업체인 시노켐은 주식을 30%까지 민간에 팔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당국의 적극적인 의지와 달리 민영기업가들은 시큰둥하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당국이 필요할 때는 손을 내밀었다가 상황이 바뀌면 범죄자, 사기꾼 취급을 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가 있어서 더욱 그렇다.
란스리(兰世立) 전 둥싱(东星)항공 회장은 한때 20억위안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후베이성 최고 부자였다. 그는 2005년, 후베이성 우한(武汉)에 중국 첫 민간 항공사인 둥싱항공을 세웠다. 여행사로 시작해 호텔까지 진출해 항공사를 세우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보잉과 에어버스를 오가며 흥정을 벌이면서 10대의 여객기를 싸게 빌릴 수 있었다. 2006년 5월 우한~상하이 노선에 첫 취항을 했다. 하지만 국제 금융위기가 결정타였다. 승객은 줄고 기름값은 오르면서 둥싱항공은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었다. 그는 미국 정부처럼 후베이성 정부나 우한시 정부가 도와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우한시 부시장이 앞장서서 회사를 파산시킨 뒤 자산을 가로채고 회사 자체는 국영 중국국제항공으로 넘겨버렸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란스리 전 회장 본인은 세금 5000만위안을 내지 않았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2010년 4월 1심 재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고 지난해 8월 풀려난 뒤 당국에 억울함을 줄기차게 호소하고 있다.
중국의 구추쥔(顾雏军) 그린쿨 그룹 창업자는 한때 잘나가던 자수성가형 기업인이었다. ‘그린쿨’이라는 이름의 자동차 냉각수를 개발해 미국과 영국에서 번 1억7000만달러를 종잣돈으로 들고 중국 남부 광둥성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국영기업 상장사 5개를 사들이면서 짭짤하게 재미를 봤다. 인수·합병(M&A)의 귀재, 중국의 소로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1년, 누적 적자가 20억위안에 이르러 파산위기를 맞았던 국영 커룽(科龙)전기를 인수해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불행이 갑자기 닥쳤다. 2005년 7월,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커룽전기가 그린쿨에 2억7000만달러를 불법으로 제공해 분식회계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흙 속에서 진주를 캐던 유망 사업가가 졸지에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그는 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은 뒤 2012년 9월 풀려났다. 7년 감옥에 있는 동안 전 재산은 사라졌다. 그는 출옥 직후 명예회복을 위해 뛰고 있다. 그는 당시 증권감독위원회 부주석(우리나라 금융감독원 부원장격)으로 있다가 지금은 국영 석유업체인 페트로 차이나 감사로 간 판푸춘을 비롯해 고위 간부 3명이 가짜 서류를 만들어 공안부 간부를 뇌물로 매수해 자신을 감옥에 넣고 전 재산을 가로챘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판푸춘 감사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저우융캉(周永康) 당시 중앙정법위원회 서기 지원을 받아 자신이 억울하게 당했다는 것이다.
기업인이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잘나가던 민영기업가들이 어이없이 낙마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중국 최고의 부자였던 황광위 전 궈메이 회장은 내부자 거래 혐의가 드러나 징역 1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을 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내 여론도 민영기업인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인 편은 아니다. 하지만 구추쥔 사건이나 란스리 사건에서 보듯이 그들의 주장대로 고위 관리들이 가짜 서류를 만들고 적극 개입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고위 간부들이 민영기업들을 먹잇감으로 여기고 기회를 엿보다가 서류를 가짜로 만들어 기업인은 감옥으로 보내고, 재산을 가로채는 행태를 보였다는 점이다.
사업가와 사기꾼. 당국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중국 민영기업인의 영원한 숙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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